① 21일=슬리퍼만 남긴 채 해상 실종
21일 낮 실종, 해군 수색 실패
북 어업 단속정이 22일 발견
방독면 쓴 병사 접근, 경위 추궁
상부 명령에 발견 6시간 만에 사살
군, 22일 밤 11시 서욱 장관에 보고
국방부, 23일 “실종” 대북 전통문
서 장관 24일 “시신 그 해역 있을 것”
② 22일=북한 단속정이 발견
그런데 상황은 군경이 샅샅이 찾고 있던 NLL 남쪽이 아니라 북쪽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군 당국은 여러 감시 자산을 통해 다음 날인 22일 오후 3시30분쯤 북한 수산사업소 단속정이 황해도 등산곶 앞바다에서 실종자 이씨를 발견했다는 정황을 입수했다. NLL 북쪽 3~4㎞ 해상에서였다. 이씨는 구명조끼를 입고 한 명 정도가 탈 수 있는 부유물을 의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수산사업소는 북한 인민군 산하 기관이다. 군 관계자는 “북한군 인원은 방독면과 보호의를 입고 실종자를 단속정에서 일정한 거리를 띄워 놓은 뒤 표류 경위를 확인하면서 월북 진술을 들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후 단속정은 실종자와 거리를 유지한 채 그가 다른 곳으로 떠내려가지 않도록 했다.
③ 22일=북한군 총격 후 시신 불태워
서 장관에겐 22일 오후 11시쯤 이 같은 정황이 보고됐다. 군 관계자는 “청와대도 그 시간일 것이다. (청와대) 위기관리센터에도 보고된다”고 밝혔다. 청와대와 국방부 장관이 이 시간에 공무원 이씨가 총격을 받고 시신이 불태워졌을 정황을 보고받았다는 것이다. 사실 서 장관은 이씨가 실종된 당일인 21일부터 실종 사실을 보고받았다. 군에 따르면 서 장관은 22일 (시신을 태웠던) 불빛이 보였다는 점도 알고 있었다.
국방부는 23일 오후 4시15분 유엔사와의 합의를 통해 북한에 대북 전통문을 발송해 실종 사실을 통보하고 답변을 요구했다. 그런데 북한에 전통문을 보낸 시간은 이미 이씨가 총격을 받고 사망한 뒤 시신마저 불태워진 후였다. 즉 군 당국은 한국 국민이 피살된 정황을 이미 알고 있는 상태에서 북한에 전통문을 보내 실종자 행방 확인을 요구했다. 실종 국민을 살리기 위한 대북 경고나 접촉 시도는 없었고, 죽은 이후에야 북한에 사람의 행방을 알리라는 요구를 냈다. 북한은 24일 오후까지도 응대하지 않았다.
⑤ 24일=피살 이틀 후 규탄
군의 공식 규탄은 이씨가 피살된 뒤 이틀, 약 36시간이 흘러간 24일 오전 11시에야 나왔다. 안영호 합참 작전본부장은 이날 입장문을 내 “북한의 만행을 강력히 규탄하고, 이에 대한 북한의 해명과 책임자 처벌을 강력히 촉구한다”며 “아울러 우리 국민을 대상으로 저지른 만행에 따른 모든 책임은 북한에 있음을 엄중히 경고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군은 어떤 개인적 사유였건 북으로 흘러가는 한국 국민을 막지 못했고, 자국민이 죽는 상황을 바라만 봤으며, 피살된 이후에 북한을 상대로 조치를 취했다. 이제 피살된 이는 유해조차 찾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철재·박용한 기자 seaja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