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정호 가톨릭대 의대 교수
예기치 못한 질문에 당황한 채 교수는 “네? 그런 사실 없습니다”라고 서둘러 전화를 끊은 뒤 인터넷을 찾아봤다. 그가 처음 ‘디지털교도소’를 접한 순간이었다. 디지털교도소는 텔레그램 성착취 대화방 ‘n번방’ 사건 이후인 지난 3월 일종의 ‘자경단(自警團)’을 자처하며 만들어진 사이트다. 성범죄자 추정 인물들의 신상을 공개하는 디지털교도소엔 채 교수의 신상과 휴대전화 번호, 그처럼 보이는 인물이 성착취 동영상을 구매하려고 시도한 텔레그램 대화 캡처 화면이 사흘 전부터 게시돼 있었다. 이후 채 교수의 휴대전화엔 각종 욕설이 담긴 카톡과 메시지가 쏟아졌다. “니 교수 맞냐?” “죽을 준비 해” “하나님은 너같은 ××를 자녀로 둔 적 없다. 탈기독교 해” 같은 거였다. 새벽마다 모르는 번호로 휴대전화가 울려댔다. 많을 땐 수백 건에 달했다.
동영상 거래 당시 대화 캡처 화면
폰 기종 다르고 포토샵 흔적까지
“다른 피해자는 죽음 생각했을 것
난 정신과 의사라 버틸 수 있었다”
1, 2 채정호 교수와 그의 변호인단이 밝혀낸 디지털교도소 텔레그램 대화 허위사실 증거 중 일부. 3 디지털교도소를 수사하는 대구지방경찰청이 보낸 공문 캡처. [사진 채정호 교수]
채 교수는 8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인간으로서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 실제 교도소에 갇혀 있는 것 같은 두 달이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6월엔 이미 조주빈의 n번방이 사회의 중심 이슈로 떠올랐던 시점인데 제가 왜 신분을 공개하며 성착취 영상을 구매하려 했겠느냐”고 반문한 뒤 “저는 자살을 막는 정신과 의사라 버텼지만 다른 피해자라면 죽음까지 생각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채 교수는 수사 과정에서 “인격적 살인을 당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 성범죄가 심각한 사회현상이란 것엔 공감하지만 사법 체계를 무시한 사적 복수는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디지털교도소 사이트가 8일 오후부터 접속이 안 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403 Forbidden’이라는 오류 메시지가 뜬다. 디지털교도소 운영진이 사이트를 폐쇄했는지, 다른 이유로 차단된 것인지는 파악되지 않았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