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신논현역의 한 공유오피스. 대부분 직원들은 재택근무 중이던 이날, 오준환 대표가 먼저 나왔다. 그는 안정적인 IT 대기업을 떠나 험난한 '창업의 길'을 택하고 매각을 결정하기까지 7년의 경험을 공개했다.
[한국의 실리콘밸리, 판교]
맛집으로 뭉친 'IT 어벤져스'
- 왜 창업했나.
- 취미가 본업이 됐다. 노명헌 이사와는 미국 시카고대 선후배 사이이자 룸메이트였다. 둘이 맛집 찾아다니는 게 낙이었다. 한국에 돌아와 삼성전자 취업 후 만난 유호석 이사가 카이스트 동기였던 김대웅 이사를 소개해줬는데 이들과도 공통 관심사가 맛집이었다. 맛집을 계기로 넷이 금세 친해졌다. 맛집을 찾아다니지만 말고, '진짜 맛집'을 찾아주는 서비스를 만들어보자고 의기투합했다.
- 안정적이고 유망한 회사를 관두기 쉽지 않았을 텐데.
- 시장성을 봤다. 당시 맛집은 기념일에만 가는 특별한 곳이 아니라, 점차 일상의 트렌드로 변하고 있었다. 셰프들이 한창 미디어에 나오고 쿡방(요리방송)과 먹방이 많아질 때였다. 미국과 일본엔 이미 옐프, 타베로그 등 '국민 앱'이 있었다. 게다가 우리 넷은 서로 전문 분야가 다른 '최적의 창업팀'이었다. 나는 삼성전자에서 구글·페이스북·넷플릭스 등 글로벌 기업과 파트너십을 담당하는 그룹장이었고, 노 이사는 미국 스타트업과 애플 본사에서 데이터 과학자로 커리어를 쌓는 중이었다. 유 이사와 김 이사는 카카오와 네이버에서 서버(백엔드) 개발자, 프론트엔드 개발자로 일하고 있었다. 합이 참 잘 맞았다.
- 지난해 대표를 바꿨는데, 매각을 준비했나.
- 창업 당시엔 제품 개발이 중요해 개발자인 김대웅 이사가 대표를 맡았다. 지난해부턴 투자자 미팅 등 사업 확장이 필요해 이 분야 경험이 있는 내가 대표가 됐다. 사실 4명이 서로 '네가 대표하라'고 미루는 사이다(웃음). 회사의 성장을 위한 선택에는 늘 이견이 없는 편이다.
"여행·숙소·맛집은 한몸" 여기어때 자회사로 제2막
- 여기어때에 매각을 결심한 이유는.
- 지난 7년간 레저·요식업 분야에서 꾸준히 인수 제안이 왔다. 하지만 큰 시너지가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다 올해 초 시작한 투자 라운딩에서 투자자 소프트뱅크벤처스를 통해 여기어때의 인수 제안을 받았다. 맛집과 여행·숙박의 만남이 좋은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 같았고 성장성도 좋아보여 매각을 결정했다.
- 협상 과정은 어땠나.
- 드라마틱하진 않았다. 여기어때 경영진의 비전과 경력이 워낙 좋았고, 무엇보다 회사 분위기와 일하는 방식이 비슷했다. 가령 우리 임직원은 18명 모두 서로 영어 이름을 부르며 수평적으로 일하는데, 여기어때도 똑같았다. 직원들이 쉽게 융화될 수 있을 것 같았다.
- 인수액은 얼만가. 창업자들은 얼마를 벌었나.
- 양사 합의 하에 비공개다. 공동창업자 4명의 지분은 정확히 밝힐 순 없지만 각자 다르다. 일단 대표인 내가 지분이 제일 많다.
- 앞으로의 목표는.
- 여기어때의 자회사로서 숙소와 액티비티, 맛집 간의 연동을 최대치로 끌어올릴 생각이다. 물론 망고플레이트 앱도 계속 운영한다. 미국에서 맛집 찾을 때 구글이 아닌 옐프를 쓰듯, 한국에선 우리가 '국민 앱'이 됐으면 좋겠다.
"국내 스타트업 M&A 많아져야"
- 성공한 M&A라고 생각하나.
- 그렇다. 엑싯은 스타트업 중 정말 극소수만 할 수 있다. 엑싯 자체가 의미가 크다.
- 지난해 배달의민족이 독일계 '딜리버리히어로'에 인수될 때 외국계 회사가 됐다며 비난받았다. 여기어때도 유럽계 사모펀드가 운영하는데 걱정은 없었나.
- 없었다. 일단 우린 그만큼 큰 회사가 아니라서(웃음). 그리고 (배민의) M&A 자체는 분명 좋은 일이다. 이제껏 국내에서 스타트업의 M&A 사례가 너무 없었다. '빅딜'이 나와야 창업 생태계도 발전할 수 있다.
- 지금의 한국 창업 생태계를 평가한다면.
- 과거보다 스타트업을 시작할 수 있는 여건은 정말 좋아졌다. 우리가 창업할 때만 해도 공유오피스가 없어 일할 곳을 찾기 힘들었고, 엑셀러레이터(창업 육성기관)들도 많지 않았다. 정부 지원도 그간 현금성 지원, 팁스(TIPS), 빅데이터 사업 등 훌륭해지고 다양해졌다. 하지만 일정 단계를 넘어가면 고비를 넘긴 스타트업이 부쩍 줄어든다. 미국은 성장단계별 M&A 문화가 잘 잡혀있는데(※2018년 미국 벤처투자 회수의 44.5%가 M&A), 한국은 대기업이나 덩치 큰 벤처기업이 스타트업 인수 자체를 낯설어한다. (큰 기업이) 신사업 진출할 때 시장에서 의미 있는 데이터나 사업모델을 확보한 스타트업을 인수하면 즉각 시너지를 체감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 창업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당부한다면.
- 혼자였으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힘들 때마다 서로 도와가며 일했던 게 원동력이었다. 4명 다 결혼한 뒤에 창업했는데, 갓난아기였던 자녀들이 이젠 초등학생이 됐다. 가족처럼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좋은 동료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창업팀엔 기술자와 사업가가 같이 있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김정민 기자 kim.jungmin4@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