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광복절 다음날이잖아요. 제가 오늘 욱일승천기 그려진 옷을 입고왔다면 역사적 맥락을 모르더라도 절 본 한국인들은 화가 나지 않겠어요?" (멜 왓킨슨)
"샘 오취리가 게시글을 삭제하거나 사과하지 말았어야 해요. (인종차별) 비판의 흔적들도 다 지운 거예요. 또 그가 물러서니 다른 사람들이 평등에 대해 이야기하기 더 어려워졌고요." (브래넌 클리블랜드)
논란은 사진 한 장에서 시작됐습니다. 경기 의정부고등학교 졸업사진 촬영장에서 찍힌 사진인데요. 흑인 분장을 한 고등학생들이 이른바 '관짝소년단'으로 인기를 끈 아프리카 가나 장례식 문화를 패러디한 모습입니다. 얼굴을 검게 칠한 학생들의 사진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삽시간에 퍼졌습니다. 국내 누리꾼 대부분은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였죠.
[밀실]
흑인 6명이 본 샘 오취리 논란
지난 16일 국내에 거주했거나 현재 거주하고 있는 흑인 6명과 이번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그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요.
샘 오취리, 꼭 사과까지 해야 했을까
"샘 오취리가 인종차별을 지적한 뒤에 이를 사과해야 할 정도로 주변의 압력을 받았어요. 그걸 지켜보는 일도 비극이었죠."(브라이언 윌리엄즈)
논란이 거세지자 샘 오취리는 하루 만에 글을 삭제한 뒤 사과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글자가 적힌 옷을 입고서요. 한국에서 6년간 거주한 경험이 있는 브라이언 윌리엄즈(40)는 그의 행동을 보고 ‘비극적’이라 표현했죠.
밀실팀이 만난 6명의 흑인은 샘 오취리가 사과한 것에 공통적으로 안타까움을 표했습니다. 사과로 끝날 게 아니라, 문화적 다름을 말로 풀어가는 과정이 필요했다는 건데요.
한국에서 초등학교 원어민 교사로 6년째 일하고 있는 메리 윌슨(40)은 "다른 문화 이해에 대해 이야기 해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순간이었는데 안타깝다"고 말했고요. 클리블랜드는 “샘 오취리가 게시글을 지우면서 비판의 흔적이 없어졌고, 다른 사람들이 평등에 대해 이야기하기 더 어려워졌다"고 어려움을 토로했습니다.
"인종차별 비판 자격 따지는 건 옳지 못해"
특히 오취리가 과거 한 방송에 출연해 눈을 찢는 모습이 온라인으로 퍼지면서 '그가 인종차별을 지적할 자격이 있느냐'는 비판이 일었습니다. 대개 양눈을 찢는 건 동양인을 비하하는 행위로 인식됩니다. 이에 대해 왓킨슨은 "눈 찢는 것과 블랙페이스, 둘 다 잘못된 행위다. 하지만 그것으로 인종차별에 비판할 자격을 따지는 건 옳지 못 하다"고 말했죠.
흑인을 비하할 의도가 없다해도 상처는 오롯이 그들의 몫입니다. 왓킨슨은 한국을 억압했던 일본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욱일승천기'를 예로 들었습니다. "비하할 의도가 없었더라도 처음 졸업사진을 접했을 때 솔직히 충격적이었다”고 말했죠. 그러면서 "내 문화도, 내 과거도 아니지만 욱일승천기가 박힌 셔츠를 입고 돌아다니진 않을 것”이라며 “비하할 의도가 아니었다해도 그 티셔츠를 본 한국인들은 상처받지 않겠냐”고 답했습니다. '역지사지'를 당부한거죠.
한국서 없어지지 않는 '흑인 희화화'
하지만 흑인을 잘 '모르는' 한국에선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윌슨은 "한국에 들어와서 아직도 코미디 무대나 미디어에서 블랙페이스를 종종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내 피부와 머리는 농담거리도, 개그소재도 될 수 없다"고 이야기했는데요. 염운옥 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연구교수는 "이미 서구 사회에선 블랙페이스가 곧 인종차별이란 사회적 합의가 있는 상황이지만, 한국은 무지에서 비롯되는 차별이 많다”고 설명했습니다.
피부가 하얗게 되는 선크림 발라라?
"한국도 인종차별이 뭔지 알고 있어요. 하지만 흑인에 관한 인종차별은 신경쓰지 않는다는 걸 느껴요. 무지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지치죠. 순간순간 의도적인 건가 싶기도 하고요." (브라이언 윌리엄즈)
국내 인종차별은 무한히 반복돼 왔습니다. 여전히 그들은 '검둥이'로 불립니다. 강원도에서 영어강사로 근무 중인 제시 벤튼(37)은 "길거리에서 흑인이다, 흑형이다, 웬 검둥이냐 등의 인종을 지칭하는 단어를 정말 많이 들어왔다"고 털어놨습니다.
호의처럼 보이는 차별도 있습니다. 왓킨슨은 피부가 하얗게 되는 선크림을 추천받기도 했는데요. 그는 "내 선크림을 바르는데도 한국인 동료가 본인의 선크림이 내 피부를 더 하얗게 만들어 더 아름다워질거라 꼭 쓰라 했다"고 털어놨습니다. '더 하얘지는' 선크림 사용을 끈질기게 요구했다네요.
"혐오 표현, 의도 아닌 결과를 봐야"
「
이번 블랙페이스 논란에서 가장 많이 나온 말입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의도'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인종차별이 아니라고 볼 순 없다고 말합니다. '재미로 한 거지 비하할 의도가 없어보인다.'
」숙명여대 법학부 홍성수 교수는 "어떤 행위가 인종차별적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기준에서 의도는 중요한게 아니"라며 "그 행위가 결과적으로 사회에 주는 영향을 고려해야한다"고 설명했는데요.
"블랙페이스가 인종차별인줄 몰랐다는 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의식 개선을 위한 사회 전반의 노력이 필요할 때"라고 덧붙였습니다.
샘 오취리의 소셜 미디어 글과 인종차별 논란.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밀실은 '중앙일보 밀레니얼 실험실'의 줄임말로 중앙일보의 20대 기자들이 밀도있는 밀착취재를 하는 공간입니다
최연수·윤상언·박건 기자 choi.yeonsu1@joongang.co.kr
영상=백경민·이지수·정유진 인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