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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아예 뽑지 말자고?” 박원순 그 후, 비서들이 입 열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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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전 시장 사건 그 이후, 비서들이 전하고 싶은 말을 영상으로 확인하세요.

[밀실] <제40화> #비서들이 본 박원순 전 시장 사건

22일 서울 중구 한 기자회견장에서 열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폭력 사건 2차 기자회견'에서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변호사가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22일 서울 중구 한 기자회견장에서 열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폭력 사건 2차 기자회견'에서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변호사가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혹시 내가 한 일 중에 기분 나쁜 게 있었으면 지금 이야기해. 나 죽이려 하지 말고…' 어떤 의원 보좌관이 비서에게 그렇게 말했다네요."(국회의원 비서 A씨)

"<김 비서가 왜 그럴까>란 드라마에서도 박민영이 입는 옷이 사람들이 상상하는 전형적인 비서들 차림새죠. 딱 달라붙는 옷차림이요. 유독 비서, 승무원, 간호사 같은 직군에만 그런 이미지로 성적 대상화가 되는 경향이 있잖아요." (대형 로펌의 전직 비서 B씨)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전 비서 성추행 의혹이 불거진 지 2주일이 훌쩍 지났습니다. 피해자는 어렵게 입을 열었습니다. 그를 응원하는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하지만 피해자처럼 비서로 일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착잡합니다.

비서에게 성폭력을 행사한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지난해 1월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속행공판에 출석하며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서에게 성폭력을 행사한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지난해 1월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속행공판에 출석하며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어떻게 지위가 타인의 인권을 빼앗을 수 있습니까?"

성폭력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1심 결심공판에서 무죄를 호소하며 뱉은 말입니다. 하지만 밀실 취재팀이 만난 전·현직 비서 3명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안 전 지사, 오거돈 전 부산시장에 이어 박 전 시장까지 고위공직자가 연루된 성 비위 사건을 지켜본 비서들은 하고 싶은 말이 많았습니다.

 박원순 사건에도 국회에선 ‘수위’ 넘는 농담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주변에 짙은 먹구름이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주변에 짙은 먹구름이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민의의 전당'이라는 국회 안에선 박 전 시장 사건에 대해 어떤 말들이 오갈까요. 국회의원 비서로 3년째 일하는 A씨는 300개 국회의원실의 분위기는 제각각이라고 전했습니다. 비서에게 한결 조심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이를 농담으로 넘기는 의원도 있다고 하네요.

A씨는 "어떤 의원 보좌관이 '내가 지금까지 한 일 중에 기분 나쁜 것이 있었다면 지금 이야기해달라. 나 죽이려고 하지 말고'라며 담당 비서에게 웃으며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박 전 시장 사건을 농담의 소재 정도로 여기는 태도죠.

사건 이후 어떤 남성 보좌관은 여성 비서 앞에서 "이래서 여자들은 뽑으면 안 된다"라고 대놓고 말했다고 합니다. 뿐 만 아니라 박 전 시장의 피해자를 두고 “4년 동안 왜 참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는 이도 있다고 합니다. 2차 가해에 해당하는 행위죠.

박 전 시장 사건 이후 여성 비서를 대하는 '불편한 감정'은 국회만의 일이 아닙니다. 비서직 종사자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엔 최근 "우리 회사에 비서와 카톡을 자제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상사가 박원순 고소인이 썼다고 추정되는 '찌라시' 고소문을 갑자기 아무 말 없이 카톡으로 보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다" 등과 같은 고민을 담은 글이 올라왔습니다.

"나 정도 나이 차 남친 어때?" 일상이 된 성희롱

전, 현직 비서들은 성희롱과 갑질 등이 일상적으로 이뤄진다고 말한다. 중앙포토

전, 현직 비서들은 성희롱과 갑질 등이 일상적으로 이뤄진다고 말한다. 중앙포토

"변호사들이 여성 비서를 보는 시선은 직장 동료가 아닌 여자 '시다바리', 말 잘 듣는 '시다바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어요."

대형 로펌에서 비서로 1년간 일하다 퇴사한 B씨의 이야기입니다. 전직 판ㆍ검사 등 성폭력과 성차별을 금지하는 법률에 누구보다 정통할 법한 변호사 중에도 비서에게 크고 작은 성희롱을 저지르는 이가 꽤 있다고 합니다.

로펌에서 일하는 동안 B씨도 업무 지시를 할 때면 과도하게 곁에 붙어 이야기하는 변호사, 조금이라도 몸에 붙는 정장을 입으면 노골적으로 위아래를 훑어보는 변호사에 난감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비서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업무 중 상사가 본인의 나이를 이야기하면서 "이 정도 나이 차이 나는 남자친구는 어떠냐"고 물어봤다는 경험담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죠.

비서가 겪는 성희롱ㆍ성차별은 직장 내부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거래처 임직원 등 직장 외부인의 관계에서도 빚어질 때가 많죠. A씨는 선거사무실에서 일하다가 "후보가 애인을 잘 뒀네", "캠프에서 전화 받는 젊은 여자면 다 의원의 애인", "젊은 여자 비서는 다 보고 즐기려 두는 것" 등등 성희롱이나 성차별이 담긴 다양한 전화를 끊임없이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비서직 종사자들은 회사의 공식 업무 외에 상사의 개인적인 심부름을 하도록 강요받는 일도 많다고 호소했습니다. 법무법인의 비서 생활 4년 차인 C씨는 상사의 자녀들을 학원에 데려다주는 일을 요구받기도 했다고 털어놨습니다.

가해자 안 되게 '펜스룰' "자기모순에 불과"

시장실이 있는 서울시청 6층 모습. 최은경 기자

시장실이 있는 서울시청 6층 모습. 최은경 기자

최근 박 전 시장 사건 이후 '펜스룰'이 소환됐습니다. 혹시 모를 성 비위를 원천 차단하겠다며 비서를 아예 남자로만 뽑자는 식의 논의입니다. 전북 김제시가 2년 전부터 시장 비서실을 모두 남성 직원으로 꾸리고 있는데요. 박준배 시장은 언론에 "오랜 기간 여직원과 관련된 사건을 종종 봤기 때문에 비서실에 아예 여직원을 배치하지 않았다"고 말하더군요.

이런 '펜스룰'에 비서들은 그다지 동의하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직장 내 성 비위를 예방하겠다며 특정 성별을 배제하는 건 또 하나의 사회적 차별에 불과하다는 거죠. A씨는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보지 말라고 이야기하면서 성범죄 위험성 때문에 여성을 배제해야 한다는 말은 자기 모순적"이라고 꼬집더군요. 펜스룰을 두고 남성을 계속 '잠재적 가해자'로 두는 행위란 비판도 나옵니다.

"비서·간호사·승무원… 특정 직군 향한 편견·차별 근절해야"

김재련 변호사(왼쪽)가 16일 올린 페이스북 게시글. 연합뉴스·페이스북 캡처

김재련 변호사(왼쪽)가 16일 올린 페이스북 게시글. 연합뉴스·페이스북 캡처

"제가 (박 전 시장 사건의 피해자와 같은) 일을 겪었어도 쉽게 먼저 말하지 못했겠죠. '누구든 다 겪는 일이야'라고 말할 것 같은 생각에 오히려 동료에겐 말 못했을 것 같아요."(B씨)

인터뷰에 응한 비서들은 박 전 시장 사건의 피해자를 응원하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나아가 비서를 포함해 간호사·승무원 등 특정 직군에 대한 성적 편견과 차별도 사라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비서들은 기대와 우려가 뒤섞인 듯했습니다. B씨는 "이번 사건이 비슷한 일을 하는 여러 사람에게 큰 용기가 될 수 있다고 본다"고 하더군요. 동시에 "점점 피해자의 목소리는 묻히고, 인식을 바꿀 상황이 멀어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도 했습니다.

박 전 시장 사건을 ‘고위공직자 vs 여성 비서’만의 이야기로 생각해선 안된다는 말도 합니다. C씨는 “사회생활을 겪어본 이라면 누구든 피해자의 상황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며 “직장 내 성추행은 비서가 아닌 누구에게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끝까지 노력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죠.

12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 마련된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조문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12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 마련된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조문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4년간 20여명. 박 전 시장 사건의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를 호소했다는 서울시 관계자들의 수입니다. 하지만 이들 중 피해자의 호소를 귀담아듣거나 제대로 도운 이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밀실팀의 인터뷰에 응한 비서들이 박 전 시장 사건을 개인의 일탈으로 넘겨선 안 된다고 말합니다. 성차별적 편견과 사고가 만연하고 수직적인 위계 질서가 강한 조직·집단이라면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권력형 성범죄'라는 거죠.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밀실은 '중앙일보 레니얼 험실'의 줄임말로 중앙일보의 20대 기자들이 도있는 착취재를 하는 공간입니다.

최연수·박건·윤상언 기자 choi.yeonsu1@joongang.co.kr
영상= 백경민·정유진·이지수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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