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없다는데...'아베 마스크' 더 뿌린다는 日정부의 고집

중앙일보

입력 2020.07.28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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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긴급 지원을 위해 제작한 천 마스크, 일명 '아베노마스크'를 8천만장 더 배포하기로 했다. 보육권이나 요양시설 등에 나눠줄 계획이지만, 현장에서는 "필요 없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고 아사히 신문이 28일 전했다. 
 

최근까지도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던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일부터 마스크를 쓰기 시작했다. 사진은 일본 참의원(상원) 결산위원회에 참석해 의사 진행을 지켜보는 아베 총리의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아베노마스크' 사업은 코로나19 유행 초기 마스크 부족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주도해 시작한 천 마스크 배포 정책을 말한다. 466억엔(약 5200억원)의 예산을 들여 각 가정에 2장씩의 천 마스크를 배포했으나, '사이즈가 작다' '귀가 아프다'는 불만이 잇따랐다. 심지어 곰팡이나 벌레가 발견돼 일부 회수되는 소동이 일며 거액의 예산만 낭비한 실패작이란 비판을 받았다. 

5700억원 예산들여 보육원, 요양시설 등에 배포
현장에선 "쓰지도 못하니 보내지 말라" 손사래
가정에 보낸 마스크도 '찬밥' 기부 물품으로 쌓여

아사히에 따르면 그러나 일본 정부는 이 마스크와 모양과 소재가 똑같은 마스크를 보육원이나 요양원, 방과후 학생 모임 등에 나눠주는 사업을 이미 시작했다. 예산은 504억엔(약 5700억원). 3월 말부터 현재까지 약 6000만장이 이미 배포됐고 8000만장을 추가로 나눠줄 계획이다. 정부는 6월 중순, 아직 제작 전인 천 마스크 5800만 장의 발주를 이미 마쳤다.   
 

(‘1세대에 2매의 마스크’)은 실효성이 의문시되는 아베 정부의 마스크 배포 정책을 비판하는 SNS 패러디물. [SNS 캡처]

현장에서는 곤혹스러워하는 기색이다. 도카이(東海) 지역 보육원 원장은 아사히에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비축해놓고는 있지만, 지금까지 사용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기타큐슈(北九州)시의 한 간호사도 "정부의 천 마스크는 얼굴에 밀착되지 않아 의료용으로는 쓸 수 없다. 앞으로 더 도착한다 해도 사용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이제 시중에서 쉽게 살 수 있게 된 마스크 대신, 환기를 위한 공기청정기나 선풍기 등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일본의 마스크 수급은 이미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돌아간 상황이다. 가격비교사이트 재고속보닷컴(zaikosokuho.com)에 따르면 일회용 마스크 1장당 최저가는 4월 24~25일에 57엔(약 645원)으로 최고치에 달한 후 하락이 이어져 6월 10일에는 10엔(약 113원)까지 떨어졌다.   
 

"생각 없이 만들어진 즉흥적 정책" 비판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긴급사태가 일본 전국으로 확대된 가운데 17일 오전 일본 도쿄도 주오구에서 마스크를 쓴 직장인들이 출근하고 있다.

가정이나 시설에 배포된 '아베노마스크'는 기부 물품으로 인기다. 나고야(名古屋)시의 도리 치즈코(鳥居千鶴子)씨와 마에다 아키코(前田明子)씨는 필리핀에서 자선활동을 하는 지인에게 보내기 위해 천 마스크를 기부해달라는 게시물을 페이스북에 올렸다가 깜짝 놀랐다. 수백장 정도를 예상했지만 한 달 만에 전국에서 3만장이 넘는 천 마스크가 도착한 것. 두 사람은 6월 12일까지 모인 6만장의 마스크를 필리핀 자선단체에 기부했다.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 홋카이도(北海道) 지부도 5월부터 도내 20개 곳에 회수함을 만들어 마스크 기증을 받았는데, 1개월 반 동안 모인 마스크 12만 1000장 중 약 9만 1000장이 정부 배포 천 마스크였다. 
 
아사히 신문이 6월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각 가정에 배포된 '아베노마스크'에 대해 "도움이 됐다"고 답한 사람은 15%, "만족스럽지 않았다"는 답변이 81%였다. 예산낭비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나카노 마사시(中野雅至) 고베학원대교수(행정학)는 아사히에 "코로나19 비상사태에 대응하기 위한 재정 지출은 어쩔 수 없지만, 비용 대비 효율을 착실히 따지지 않은 생각 없이 만들어진 즉흥적인 정책이 많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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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