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무당 믿다가 다리 절단…그아이 다리된 '로봇다리'

중앙일보

입력 2020.06.2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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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허호의 꿈을 찍는 사진관(17) 

2009년 6월, KT아트홀에서 열린 컴패션 사진전에 로봇다리 세진이로 유명해진 김세진 군과 어머니 양정숙 씨가 방문했다. 후원을 결심한 세진 군은 자신과 비슷한 장애가 있는 아이로 연결해달라고 컴패션에 요청하였고, 인도네시아의 새로운 동생 넬디를 만났다. [사진 허호]

 
컴패션 사진전은 2006년부터 컴패션 후원자가 의기투합해 재능기부로  시작해 2013년에 종료된 행사였습니다. 자발적 모임이라 주축이 된 사람도 즐겁고, 방문자도 특유의 열기에 전염되곤 했습니다. 낮이면 누구나 들러 사진을 볼 수 있었고, 저녁이면 지인과 행사도 하며 많은 어린이가 후원자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2009년 사진전에, 그해 런던 세계장애인수영선수권 대회 3관왕을 차지하며 그 사연이 방송을 타 유명해진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당시 초등학교 6학년 로봇다리 세진 군으로 어머니 양정숙 씨와 함께였습니다. 방송에서 인연을 맺은 배우 신애라 씨의 초대였습니다. 두 다리와 한쪽 손이 없이 태어나 보육원에서 자란 세진이는 양정숙 씨에게 입양되어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되었죠. 세진이는 사진 설명을 들으며 장애인으로서 지금까지 도움을 받아왔고 어려운 형편에 있지만, 후원을 해야겠다고 했습니다. 대신 ‘아픈 아이였으면 좋겠어요’라고 한 가지 단서를 달았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두 사람은 결연된 아이 사진을 받아보고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아픈 아이라는 것 외에 다른 조건을 달지 않았는데, 사고로 한쪽 다리가 잘린 여덟 살 어린 소년 넬디라는 아이가 목발을 짚고 선 사진이 배달된 것입니다.
 
3개월 후 세진이는 넬디를 만나러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에서 배를 타고 숨바 섬의 주도 와잉가푸로 갔습니다. 넬디를 기다리며 세진이가 설레면서도 긴장한 모습으로 서성였습니다. 하지만 작디 작은 아이 넬디가 수줍게 나타난 순간 세진이는 마치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동생처럼 살갑게 대해 주었습니다. 만나는 동안 세진이는 다섯 살 많아서인지 형처럼 넬디를 잘 챙겨 주었습니다. 신기하게도 두 사람은 말이 전혀 통하지 않았는데도 그전부터 알아왔던 형제처럼 보기만 해도 웃고 같이 놀며 바닷가에 가서 연도 날렸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컴패션 선생님으로부터 넬디의 다리가 잘린 기가 막힌 사연을 듣게 되었습니다. 원래 건강한 두 다리를 갖고 잘 뛰어다니던 넬디는 1년 전 어느 날 오토바이가 치고 지나가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돈이 없던 넬디의 아버지는 병원에 넬디를 데려가지 않고 그 동네 사람이 대개 그러하듯 무당을 찾아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무당이 넬디가 악귀가 씌었으니 집안에 가둬 두어야 한다고 했고, 바나나 잎으로 사고가 난 다리를 감싼 채 아이를 한 달 이상 방치해 결국 다리가 썩어 절단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수술을 제대로 받지 못해 절단면이 깔끔하지 않아 보였습니다. 넬디도 종종 다리의 고통을 호소했습니다. 손으로 만든 것으로 보인 목발이 불편해 보였습니다. 넬디의 아버지는 일곱인가, 여덟인가 하는 식구를 먹여 살려야 했지만, 배가 없는 어부였습니다. 맨몸으로 해안가로 나가 투망질로 고기를 잡아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모든 상황에도 넬디는 심성이 참 밝고 건강한 아이였습니다.
 

잃어버린 나사를 목공용 나사로 대신한 넬디의 목발. 튀어나온나사의 뾰족한 부분이 아슬아슬해 보였다.

 
사실 넬디 사진을 보며 처음부터 세진이와 양정숙 씨는 결심한 게 있었습니다. 세진이는 선천성 기형으로 어릴 때부터 의족을 해왔는데 키가 자라면서 의족을 키에 맞춰 교체해야 했습니다. 어머니는 세진이가 걸어서 다니는 세상을 경험시켜 주고자 집을 팔아 독일에서 정교하게 만들어진 의족을 제작했던 것이지요.
 
두 사람은 집에 있던 의족을 넬디에게 주면 어떨까 해, 그 먼 곳 인도네시아까지 넬디를 방문했던 것입니다. 세진이의 의족이 맞을지 넬디를 데리고 인도네시아의 큰 병원에 갔습니다. 살짝 겁에 질린 넬디를 세진이가 안아주며 안심시켜 주는 모습이 정말 의젓했고 넬디는 세진이의 위로에 마음을 놓는 모습이었습니다. 병원 검진 결과 의족을 넬디에게 주어도 좋다는 결과를 이야기해주었고, 넬디는 세진이의 다리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루 만에 정이 많이 든 듯 계속 웃으면서 세진을 대하던 넬디는 헤어지는  순간, 목발마저 놓고 종종걸음으로 따라와 눈물을 쏟고 말았습니다. 그 모습에 차에 탔던 그 밝은 세진이도 울음을 삼켰죠.
 

2013년 다시 만난 세진이와넬디. 그 사이 유대감이 쌓인 듯 한결 가까워진 모습을 볼 수 있었다.

 
2013년도 저는 다시 넬디와 세진이가 만나는 것을 사진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그 사이 세진이와 넬디가 새로운 다리로 교체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넬디의 집은 여전히 어려웠습니다. 그 사이 넬디의 동생이 태어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넬디는 밝았고 공부도 열심히 해 여자아이들에게 인기도 좋았습니다.
 
둘을 시내에 데리고 가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2009년에 만날 때도  사이가 좋아 보였지만, 그사이 수많은 편지와 서로를 향한 격려로 마지막 남은 낯선 느낌까지 날아간 듯 보였습니다. 나에겐 넬디는 그냥 얼굴만 보고 있어도 기분 좋은 아이였습니다. 넬디가 후원자 세진이를 잘 만난 게 사실이지만, 세진이도 참 넬디를 잘 만났다 싶었습니다.
 

2013년 서로의 다리가 되어 함께 걷는 세진 군과 넬디. 넬디의한쪽 다리는 세진으로부터 받은 의족이다.

 
보통 사진은 빛이 앞에서 비추는 순광으로 찍습니다. 옆에서 오면 측광, 뒤에서 오면 역광이라고 하죠. 기술발달이 지금과 달랐던 필름 카메라 시대에는 그야말로 순광으로 찍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카메라가 워낙 좋아져 역광 사진도 잘 나옵니다. 빛의 방향에 구애받지 않아도 될 정도로 광학적으로나 소프트웨어적으로 기술이 발달한 거지요. 세진이와 넬디 중요 장면은 2009년, 2013년 모두 역광으로 찍었습니다.
 
역광 사진은 강렬합니다. 무게감을 가진 사진이 되지요. 둘 다 장애를 가진 아이인데, 디테일을 안 보여주고 실루엣만 갖고도 다리의 윤곽이 드러났습니다. 마침 해질녘이었거든요. 이것도 중요합니다. 빛의 방향이 해가 사람 몸으로 가리기 때문에 렌즈가 태양을 바라보면서도 사진 전체가 뿌옇게 안 변하고 강한 대비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둘의 관계가 그대로 보였습니다. 4년여를 지나며 순수하게 서로를 좋아하고 인간적인 유대감이 드러났죠. 그 이야기가 역광 사진에 담겼습니다. 1 대 1후원으로 단발성이 아니라 연속적인 관계를 가지니까 관계의 성장을 볼 수 있었고 그만큼 더 돈독해져 있었습니다. 두 사람 손 붙잡고 가는 뒷모습만 봐도 뭉클했습니다. 잊지 못할 장면입니다.
 
사진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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