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코로나 대변혁이 온다 ③ 한국식 공공성 실험
마스크·고글에 깊게 파인 얼굴이 상징이 된 의료진은 ‘K-방역’의 주역이다. 지난 2월 대규모 유행이 몰려온 대구·경북 지역은 이들 덕분에 버텨낼 수 있었다. 한때 수백 명씩 쏟아졌던 대구·경북의 일일 확진자는 ‘0명’ 가까이로 떨어졌다.
코로나 터지자 민간에서 공공역할
개인·기업도 자발적 기부 동참
단순한 선의에만 계속 기댄다면
제2 유행 왔을 때 극복 장담 못 해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을 계기로 공공(公共)의 역할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방역과 보건, 경제 등 영역을 가리지 않는다. 정부가 코로나19 방역,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등에 나섰지만 민간 영역의 자발적 참여가 없었다면 큰 혼란을 막지 못했다. 전국에서 발 벗고 나선 의료진 자원봉사, 기업과 개인을 가리지 않는 기부 행렬이 대표적이다.
코로나 직격탄을 맞은 경제 지표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실직과 폐업이 쏟아진다. 이렇게 경기에 찬바람이 불었어도 다행히 시민 각자의 온정의 손길은 줄지 않았다. 정부 주도의 긴급재난지원금 기부와 달리 민간 영역의 자발적 기부는 활발하게 이뤄졌다.
그러나 ‘한국식 공공성’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 민간에서 맡은 공공 역할이 체계적인 보상 시스템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단순한 선의에만 기댄다면 제2의 유행이 찾아왔을 때 극복을 장담할 수 없다.
의료진에게 감사를 전하는 ‘덕분에 챌린지’ 캠페인이 확산됐지만, 의료계 지원을 둘러싼 엇박자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대구동산병원은 지난달 말까지 70억원 정도의 손실이 발생했다. 코로나와 싸운 병원들의 손실이 커지면서 직원 월급 주기 쉽지 않은 곳도 나온다. 확진자를 돌본 대구 간호사에 대한 별도 수당 지급도 감감무소식이다.
오성훈 간호사는 “의료진 자원봉사만 보더라도 체계적인 인력 관리 시스템과 보상·정보 제공 등이 필수적으로 이뤄져야 하지만 코로나 상황에서 많이 미흡했다”고 말했다.
반면에 ‘지자체 역할 확대=돈 퍼주기’로 굳어지는 걸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긴급지원 경쟁이 자칫 재정 악화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직 사회의 ‘모럴 해저드’도 장애물이다. 대구에선 공무원, 교직원 등 3928명이 긴급생계자금 25억원가량을 부당 수령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을 빚었다.
공공성이 가장 절실한 교육·돌봄의 한계는 뚜렷했다. 온라인 원격수업과 생활 방역 등을 준비 못 한 각급 학교들은 상당 기간 혼란을 겪었다. 설익은 언택트(비대면) 교육에 입시까지 흔들리는 모양새다. 맞벌이 가구 등은 긴급보육 제도, 재택·유연 근무 확대에도 불구하고 몇 달째 육아에 힘겨워하고 있다.
정부 역할 확대에 따른 ‘공익성’과 ‘사생활’의 충돌도 고민해야 할 과제다. 확진자 동선 공개에 따른 신상 노출 논란이 끊이질 않는다. 최근엔 노래방·클럽 등 다중이용업소에 대한 전자출입명부(QR코드)까지 도입됐다. 다수의 안전을 지키려면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빅 브러더’의 본격적인 등장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달 24일 브리핑에서 “(QR코드는) 역학조사에 필요한 최소한의 개인정보만 암호화해 수집하고, 정보 수집 주체도 분리해서 개인정보를 철저히 보호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에 참여연대는 “행정의 편의성이 프라이버시 보호를 압도해선 안 된다. 코로나19 이후 IT 기반의 통제 시스템을 일상에서 용인하는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중앙일보·정책기획위 공동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