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 정도 증거 확보…피의자 책임 유무 재판서 결정해야"
원 부장판사는 “기본적 사실관계는 소명됐고, 검찰은 그간의 수사를 통해 이미 상당 정도의 증거를 확보했다고 보인다"며 "그러나 불구속재판의 원칙에 반해 피의자들을 구속할 필요성 및 상당성에 관해서는 소명이 부족하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이어 "이 사건의 중요성에 비춰 피의자들의 책임 유무와 그 정도는 재판 과정에서 충분한 공방과 심리를 거쳐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덧붙였다.
이 부회장과 함께 심사를 받은 최지성(69)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부회장)과 김종중(64)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전략팀장(사장)의 구속영장도 기각됐다.
이 부회장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의 불법 행위와 제일모직의 자회사였던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행위에 관여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1년 8개월 넘게 진행 중인 검찰 수사에는 삼성 경영진 30여명이 100차례 이상 소환됐다.
굳은 표정으로 '묵묵부답'이었던 이재용, 기각 결정에 귀가
서울구치소에 대기 중이던 이 부회장은 이날 오전 2시께 영장 기각 결정이 내려지고 43분 뒤 차를 타고 귀가했다. 원 부장판사가 15시간 30분에 걸쳐 '마라톤 검토'를 한 끝에 내려진 결론이었다. 귀가하는 이 부회장에게 기자들이 "한 말씀 해달라", "불법 합병를 보고받은 사실 있나"라고 묻자 "늦게까지 고생 많으셨다"는 말만 전했다.
"방어권 무력화 위한 무리한 영장 청구" 비판받을 듯
검찰은 이날 이 부회장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사안의 중대성’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과정에서 일어난 삼성 측의 부정 거래와 시세조종으로 이 부회장이 수조 원 규모의 부당이득을 챙긴 사상 최대의 금융범죄"라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수사팀은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작성된 삼성의 비공개 프로젝트인 이른바 '프로젝트G'에 대해 이 부회장이 관련 내용을 보고받고, 점검한 정황이 담긴 자료를 제시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수사팀은 확보한 물증과 주변인 진술로 이 부회장의 개입 정황을 밝히는 데 자신감을 내비쳤지만, 결과적으로 영장심사 단계에서 이 부회장이 직접 개입했다는 혐의를 소명하는 데 실패했다.
검 "향후 수사에 만전"… 삼성 "범죄 혐의 소명 안됐다는 의미"
이 부회장 변호인단도 기각 결정 직후 "법원의 기각사유는 '기본적 사실관계 외에 피의자들의 책임 유무 등 범죄혐의가 소명되지 않았고, 구속 필요성도 없다'는 취지"라며 "향후 검찰 수사 심의 절차에서 엄정한 심의를 거쳐 수사 계속과 기소 여부가 결정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영장은 기각됐지만 이 부회장 등은 향후 재판에서 다시 한번 혐의와 관련 없다는 것을 소명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11일 중앙지검은 검찰시민위원회를 열어 이 부회장이 신청한 검찰수사심의위원회 개최 여부를 결정한다. 개최가 결정되면 검찰은 수사심의위의 권고를 듣고 최종 기소 여부를 판단한다. 다만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한 만큼 기소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검찰이 영장을 재청구할 가능성도 있다.
강광우·이가영·이수정 기자 kang.kwangwo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