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황지혜의 방구석 맥주여행(44)
이런 트렌드가 이어지면서 책을 보면서 조용히 맥주를 마실 수 있는 카페가 속속 생겨나고 있다. 또 공유 오피스를 운영하는 글로벌 체인들은 일하면서 자유롭게 마실 수 있도록 맥주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처럼 일상 속에서 맥주를 즐기기 위해서는 평소에 마시는 맥주보다 도수가 낮은 맥주가 유용하다.
전통적으로 일하는 중에 마시는, 상대적으로 낮은 도수의 맥주들이 존재해왔다. 전 세계 맥주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맥주(4.5~5.0%)보다 1~2% 낮은 도수를 가진 맥주다. 이런 맥주는 세션(Session)‧테이블(Table)‧스몰(Small) 맥주 등으로 불린다. 세션 맥주는 노동자가 업무 도중 주어진 짧은 휴식시간(세션) 동안 마시는 맥주라는 말에서 유래됐다는 설이 있다. 또 테이블 비어는 테이블에 앉은 모든 사람이 마시는 맥주고, 스몰 비어는 중세 시대에 오염된 물 대신 아이부터 어른까지 마신 맥주를 뜻한다고 한다.
이런 저도수 맥주로는 대표적으로 벨기에 남부의 세종(Saison)이 있다. 세종은 농번기에 일하면서 마실 수 있는 ‘노동주’로, 농부가 취하지 않도록 3~4%의 도수로 만들어졌다. 오렌지‧레몬 같은 과일향과 후추 같은 스파이시함이 균형을 이루면서 탄산이 많고 단맛이 없어 상쾌하게 마무리되는 맥주다. 농가에서 만들어지던 이 맥주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상업적으로 만들어지면서 5% 이상의 제품이 등장했다.
독일 베를린에서 유래된 베를리너 바이세(Berliner Weisse) 역시 2.8~3.8%의 저도수 맥주다. 젖산으로 발효된 신맛이 특징인 베를리너 바이세는 편하게 마시는 맥주로 자리매김했다. 달콤한 시럽을 타서 음료수처럼 마시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밖에 영국의 페일 에일 중 가장 알코올 함량이 적은 오디너리 비터(Ordinary Bitter)도 낮은 도수(3.2~3.8 %)로 생활 속에서 부담 없이 함께하기 좋은 맥주로 꼽힌다.
현대에 들어와서 저알코올 맥주는 유행처럼 번졌다. 미국에서는 1970년대부터 저알코올, 저칼로리 바람이 불어 알코올 도수 2.8~4.2%의 라이트 맥주가 일상화됐다. 알코올 도수 5.0%인 버드와이저가 아니라 4.2%인 버드 라이트가 미국 판매 1위 맥주다. 밀러 라이트, 쿠어스 라이트 등 맥주 대기업은 라이트 맥주를 간판 제품으로 내놓고 있다. 독일에서도 알만한 맥주 대기업이 벡스 라이트, 비트버거 라이트 등 라이트 맥주 라인업을 갖추고 있다.
수제맥주 업계에서 저알코올 맥주가 속속 나오고 있다. 세션 IPA(인디아 페일 에일)가 대표적이다. 미국식 IPA는 대부분 7% 이상의 알코올 도수로 점심에 한잔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 세션 IPA는 IPA의 풍미를 최대한 유지하면서 도수를 확 낮춘 맥주로 4%대로도 나온다. IPA 외에도 페일 에일, 바이젠, 스타우트 등 스타일을 가리지 않고 저도수 맥주가 나온다.
아쉽게도 국내에서는 이런 다양한 저알코올 맥주를 접하기가 어렵다. 수입사도, 양조장도 이런 맥주에 대해 적극적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아직까지 우리의 술 문화는 일상 속에서 즐기기보다는 술자리에서 맥주에 소주까지 섞어 마시는 것이 주류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소매점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저알코올 맥주는 탄산이 강하고 맛과 향이 거의 없는 라이트 라거다. 카스 라이트(4%), 밀러 라이트(4.2%) 등이 마트 등에 유통되고 있다.
수제맥주 중에서도 저알코올 맥주는 비주류다. 홉 향이 돋보이는 미국식 페일 에일이나 IPA 중 알코올 도수 4% 이하 맥주는 2~3종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최근 출시된 데슈츠 브루어리의 와우자(4%), 파이어스톤워커 이지잭(4.5%) 등이 있다.
국내 수제맥주 양조장이 양조하는 도수 낮은 제품을 찾아 마시는 방법이 있다. 플레이그라운드의 더 헌치백 세션 IPA(4.0%), 엠비션 브루어리의 꽃신(3.8%) 등이 좋은 평가를 받는다.
비플랫 대표·비어포스트 객원에디터 theore_creato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