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홍콩→제3국, '수출 교두보'
홍콩은 수입액의 89%를 재수출하는 세계 중계무역 거점 중 하나다. 한국의 무역 '교두보'이기도 하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한국의 대(對) 홍콩 수출액 중 114%(하역료, 보관비용, 중개수수료 포함)가 제3국으로 재수출되며 그중 98%가 중국을 향한다. 이 때문에 한국과 홍콩의 무역 규모도 상당한 수준이다. 홍콩은 중국, 미국, 베트남에 이은 한국의 4위 수출국으로, 2019년 기준 전체 수출액의 5.9%(319억1300만달러)를 차지한다.
한국의 1위 수출품인 반도체도 상당량 홍콩을 통해 중국으로 간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홍콩으로의 반도체 수출금액은 222억8700만달러(27조5735억원)로 전체 반도체 수출금액의 17.3%에 이른다. 이중 90% 이상이 중국으로 재수출된다. 법인세율은 16.5%로 한국(22%)은 물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23.4%)보다 현저히 낮다. 여기에 이자, 배당, 양도소득이 비과세인 데다 상속세·증여세가 없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홍콩, 대중(對中) 제재 영향권 들어가면
중국이 제정하려 하는 홍콩보안법이 지난해 범죄인 송환법 반대시위 등 반(反)정부 활동을 전면 금지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홍콩의 자치권 훼손으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1일 "만약 그것(홍콩보안법 제정)이 일어난다면 우리는 그 문제를 매우 강하게 다룰 것"이라며 강경 대응을 시사했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 홍콩이 중계무역국으로서의 메리트가 없어지면 재수출 비중이 가장 큰 중국으로 직수출 전환이 불가피하다. 직수출이 전환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중소·중견 수출기업은 물류비용이 증가하고, 대체 항공편을 확보하기도 힘들어 차질이 예상된다. 특히 화장품, 농수산식품 등 품목은 중국의 통관ㆍ검역이 까다로워 홍콩을 경유할 때보다 통관 불편이 커질 수 있다.
韓 1위 수출품 반도체에 '불똥' 가능성도
홍콩이 미국의 대중 제재 영향권으로 편입하면 홍콩에 반도체를 많이 수출하는 한국으로 불똥이 튈 수도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된다. 중국산 시스템 반도체에 대한 미국의 제재가 메모리반도체까지 확대할 수 있어서다. 한국의 대홍콩 수출 중 70%가 반도체이고 그중 메모리반도체 비중은 79.5%, 시스템반도체는 18.8%다.
이 같은 환경은 가뜩이나 제동이 걸린 한국 수출에 더욱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지난해 12개월 연속 전년 대비 '마이너스'를 기록한 수출은 올해 1월 '플러스' 전환하며 반등을 노렸지만 코로나19에 발목이 잡혀 다시 3개월 연속 주저앉았다. 특히 지난달에는 99개월 만에 무역수지(수출액-수입액) 적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전망도 밝지 않다. 주요 수출국의 코로나19 회복이 더뎌지며 5월 1~20일 무역수지 역시 26억8000만달러(3조3085억원) 적자를 기록 중이다.
美·中 환율전쟁까지 '겹악재'
이 상황을 기회 요인으로 볼 여지는 있다. 무역협회는 "미·중 갈등 확대로 홍콩을 경유한 중국의 대미 수출길이 막힐 경우 우리 기업이 미국 수출에 있어 (중국보다)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며 "특히 수출 경합이 높은 석유화학, 가전, 의료ㆍ정밀 광학기기 등에서 반사이익이 기대된다”고 밝혔다. 지난해 기준 한국의 대미 수출액은 733억4400만달러(90조6238억원)로 중국에 이어 2위다. 또 한국의 국내총생산(GDP)대비 수출 비중은 44%에 이른다.
세종=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