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규 "유신 헌법을 놓고 볼때···" 판사 "진술 그만하세요"

중앙일보

입력 2020.05.26 22:00

수정 2020.05.26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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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신 체제의 중심에 있었던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 갑작스레 박정희 전 대통령을 암살한 것은 한국 현대사의 가장 큰 물음표 중 하나로 남아있다. 차지철 경호실장과의 갈등설부터 미국 CIA 배후설까지 다양한 시각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김재규 전 부장을 비롯한 사건의 당사자들이 대부분 사망했기 때문에 사건의 진상은 추론의 영역으로 남게 됐다.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은 법정 진술에서 10ㆍ26의 동기를 ‘유신체제’라고 줄곧 주장했다.  
그는 1심 재판에서 “유신체제가 출범해서 7년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 여기 계신 여러분들도 솔직한 얘기로 자유 민주주의 희망 안 한 사람이 있었냐”며 “대한민국 국민 3700만이 어른, 애 할 것 없이 자유 민주주의 갈망 안 하는 사람 하나도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1972년 10월 유신이 반포되면서 보니까 이것은 국민을 위한 헌법이 아니라 대통령 각하께서 계속해서 집권하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헌법이었다. 자유민주를 회복하는 것이 저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발굴! 그때 그 목소리, 10·26 ④

10ㆍ26 1심 재판 당시 발언 중인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사진 JTBC]

10ㆍ26 1심 재판 당시 재판정 [사진 JTBC]

 
그렇다면 하필 1979년 10월에 방아쇠를 당신 이유는 뭘까.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은 ‘부마항쟁’이었다는 것이 김재규 측의 설명이다. 부마항쟁은 1979년 10월 부산과 마산에서 시민들이 유신 독재에 반대하며 일으킨 시위다.  
김 전 부장은 “각하는 ‘이제부터 (부마)사태가 더 악화하면 내가 직접 쏘라고 발포 명령하겠다’, ‘대통령인 내가 명령하는데 누가 날 총살하겠느냐’ 이렇게 말씀하셨다. 차지철 경호실장 같은 사람들은 ‘캄보디아에서는 300만이라고 하는 것도 희생시켰는데 우리 대한민국 일이백 만 희생하면, 희생한다고 까짓것 뭐 문제 될 것 있느냐’고 했다. 소름이 끼칠 일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진술을 두고 김 전 부장 측과 재판부 간에는 실랑이도 벌어졌다.
김 전 부장이 “유신 헌법을 놓고 볼 때…”라고 언급하자 재판부는 “진술 그만하라”고 제지했다. 이에 김 전 부장의 변호인이 “이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동기”라며 항의하자 재판부에서는 “법정 질서에 도전하냐”며 응수했다. 또 재판부는 “부산마산 사태에서 희생자가 있냐”고 추궁했고, 김 전 부장은 “죽은 사람은 없다”고 답했다.  
 
한편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생전에 중앙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김재규 전 부장의 주장을 반박했다.  
김 전 총리는 “(김 전 부장은) 재판정에서 자기가 무슨 한국의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처음부터 계획적인 혁명을 일으켰다고 주장했는데, 주변 사람들이 부추기는 바람에 스스로 속아 꾸민 얘기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1978년 2월 김 전 부장이 찾아와 “박정희 대통령을 종신 대통령으로 모시는 임무에 모든 기능과 자원을 집중할 것”이라며 “(박 전 대통령의 지시가 아닌) 제가 발상한 것”이라고 밝혔다는 일화를 전했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발굴! 그때 그 목소리, 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