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의 방관’, ‘넷플릭스의 무임승차’를 바로 잡겠다는 법안에 네이버·카카오가 반대하고 나섰다. ‘국내외 인터넷사업자의 책임’을 묻겠다는데 국내 기업들은 ‘우리만 잡고, 해외 기업은 못 잡을 것'이라고 반발한다.
무슨 일이야?
· 지난달 28일 인터넷기업협회(인기협)는 “성범죄물 발견·삭제 의무를 인터넷사업자에 부과하는 것은 과하다”, “텔레그램은 이 법으로 안 잡힌다”고 주장했다. 인기협 회장사는 네이버고, 카카오·넥슨·엔씨소프트 등이 소속됐다.
· 4일 코리아스타트업포럼과 벤처기업협회, 인기협은 “망 품질 유지 의무를 콘텐트사(CP)에 지우는 법 개정을 중단하라”는 공동 성명을 냈다.
어떤 법이길래
· ‘망 품질 유지 의무법’은 ‘넷플릭스 무임승차’ 논란으로 나온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김경진·유민봉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했다. 인터넷 품질을 유지할 의무가 KT·SK브로드밴드·LG유플러스 같은 통신망 제공업체(ISP)뿐 아니라, 네이버·카카오·페이스북·넷플릭스·유튜브 같은 콘텐트업체(CP)에도 있다는 내용이다.
이게 왜 중요해?
· ‘n번방 방지법’은 텔레그램 같은 해외 사업자도 국내 대리인을 둬 디지털 성범죄물 확산을 막아야 한다고 규정했다. 그러나 실효성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높다. 김현경 서울과기대 IT정책전문대학원 교수는 “서버와 본사 위치도 모르는 텔레그램에게 삭제 요구를 한다는 게 말이 되냐”며 “대규모 디지털 성범죄는 해외서비스에서 발생하는데, 정작 이들에겐 (법안의)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 ‘망 품질 유지 의무법’이 통과되면, SK브로드밴드 가입자가 넷플릭스 ‘킹덤2’를 보는 데 장애가 없도록 넷플릭스도 설비를 구매하는 등의 조치를 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의무는 네이버·카카오·왓챠 같은 국내 업체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이 “국내 IT 기업과 스타트업에게 전용 회선을 강제 구매하게 하는 법안”이라고 반발한 이유다.
누가 누구랑 대립하나
② 국내 ISP vs 해외 CP : 국내에 통신망을 깔고 사용료를 받는 KTㆍSKBㆍLGU+ 등 ISP와 인터넷 콘텐트를 제공하는 넷플릭스ㆍ유튜브 같은 해외 CP의 이해관계가 갈린다. 망사용료를 내라는 SKB와 못내겠다는 넷플릭스가 이 문제로 갈등하다 소송 중이다. (관련기사)
③ 국내 ISP vs 국내 CP : 국내 CP들도 망 사용료에 불만이다. 네이버ㆍ왓챠 등은 “국내 ISP 망 사용료가 해외보다 비싸고, 정산도 투명하지 않다”고 호소한다. 법이 개정되면 통신사와 계약 조건은 더 불리해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해외에선 어때?
· 2018년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는 ‘망 중립성’ 원칙을 폐기했다. 통신사업자(ISP)가 특정 콘텐트 업체의 인터넷 트래픽을 우선 처리하거나 차단해도 합법이다. 아짓 파이 FCC 위원장은 통신사 버라이즌 출신이다.
· 넷플릭스는 컴캐스트 같은 미국 통신사와 이용 계약을 맺고 있다. 이에 대해 넷플릭스 측은 “양사의 포괄적 파트너십이며 계약 내용을 공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나랑 무슨 상관?
· '망 품질 유지법'은 소비자가 내는 통신요금 또는 콘텐트 이용료와 직결된다. 내가 보는 인터넷 동영상의 서비스 품질 문제를 통신사에 따질 것인가, 콘텐트제공 업체에 따질 것인가의 문제다. 어느쪽이든 망 품질 유지 의무를 지는 쪽은 요금 인상의 근거로 활용할 수 있다.
그 전엔 어떤 일이
· 2019년 국회 국정감사 때 ‘망 사용료’가 논란이 됐다. 한성숙 네이버 대표, 박태훈 왓챠 대표 등이 출석해 ISP 망 사용료의 국내 기업 역차별과 불투명성 문제를 호소했다.
· 지난 2018년 헌법재판소는 온라인 서비스 제공자에게 아동음란물 유통 및 확산을 막을 의무가 있다고 규정한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17조 1항에 대해 전원일치 합헌 결정했다.
· 최근 검찰·경찰의 n번방 사건 수사에 텔레그램은 협조하지 않았다.
심서현·김정민 기자 shsh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