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박소윤 기자 park.soyoon@joongang.co.kr, 사진=임익순·이승연(오픈스튜디오), 동행취재=강규리(경기도 푸른솔초 6) 학생기자
‘하루 한 번 꼭 안고 사랑한다 말하기’, 작은 행동으로 화목한 우리 집 열어볼까요
심리 검사는 크게 자가보고 검사와 투사적 검사로 나뉩니다. 자가보고 검사는 설문지를 통해 피검자가 느끼는 심리 상태를 분석하죠. 최근 유행하며 온라인으로 쉽게 접할 수 있는 성격 유형 검사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가 대표적이에요. 스위스의 정신의학자 융(Jung)의 성격 유형 이론을 근거로 한 MBTI는 E(외향)-I(내향), S(감각)-N(직관), T(사고)-F(감정), J(판단)-P(인식) 중 개인이 속하는 네 가지 지표를 알파벳으로 표시합니다. 심리 내적 영역을 다차원적으로 평가하는 ‘MMPI(Minnesota Multiphasic Personality Inventory)’도 있어요.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는 환자들을 효율적으로 진단하기 위해 개발됐지만, 오늘날에는 일반 피검자의 성격 특성, 정서적 적응 수준, 검사에 임하는 태도 등을 측정하는 목적으로도 쓰이죠. 이와 달리 투사적 검사는 구체적인 장면을 제시하고 피검자의 반응을 관찰하는데요. 정신과 의사 헤르만 로르샤흐(Herman Rorschach)는 좌우 대칭 이미지가 있는 10장의 카드를 통해 무의식과 심리를 파악하는 ‘로르샤흐 검사’를 개발했어요. 10개의 표준화된 잉크 반점 카드가 무엇으로 보이는지 자유롭게 대답하는 방식입니다. 로르샤흐 검사와 유사한 방식의 'BGT(Bender-Gestalt Test)'는 기하학적 도형 카드를 이용해 심리적 특성을 분석하는데요.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없거나 능력은 있더라도 표현할 의사가 없는 피검자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다르죠. 자가보고 검사와 투사적 검사를 함께하면 보다 정확하게 심리 상태를 분석할 수 있습니다.
심리 검사를 적절히 활용한다면 소중한 가족의 속마음을 알아보고 건강한 관계를 형성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겠죠. 가족 관계 진단을 위해 강규리 학생기자가 아동·청소년 상담센터로 출동했습니다. 엄마 손을 꼭 잡고 센터 문을 열자 권윤정 맘모스 아동청소년 상담센터 원장이 환한 미소로 규리 학생기자를 반겼어요. “상담센터는 여러분이 가족·친구·공부 등으로 고민이 있거나 심리적인 문제가 발생할 경우 방문하는 곳이에요. 꼭 심각한 문제가 아니어도 괜찮아요. '책만 펴면 졸려요' '친구랑 싸웠는데 다시 친하게 지내고 싶어요' 등 작은 고민거리를 안고 오는 친구들도 많죠. 다친 마음을 치유하고 심리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답니다.” 규리 학생기자도 큰 고민이나 가족과의 갈등은 없지만, 엄마·아빠와 더 사이좋게 지내고 싶다는 생각을 내비쳤어요.
센터에는 놀이터처럼 아기자기한 방들이 여럿 있었죠. 규리 학생기자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반짝이는 모래판으로 꾸며진 모래놀이방이었습니다. 부드러운 모래 위에 이름도 쓰고 그림도 그려봤죠. “모래를 활용해 이야기를 펼치는 공간이에요. 자신만의 방식으로 내면의 어려움을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감각을 활용하는 상담이기 때문에 어린아이부터 성인까지 모두 참여할 수 있죠.”
“이 방은 뭐죠? 구조가 독특해요.” 옆방엔 인형·미끄럼틀·책 등 다양한 장난감이 가득했고, 한쪽 벽을 커다란 거울이 차지하고 있었어요. “거울처럼 보이지만, 사실 유리랍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경찰이 용의자 또는 피의자를 조사할 때 이런 거울 방을 이용하죠. 단방향 투과성 거울, 또는 매직미러라고 불러요. 아동과 보호자가 놀이방에서 노는 모습을 상담자가 유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어요.” 보호자는 인이어 이어폰을 착용하고 상담자에게 실시간으로 아이와 상호작용에 대한 피드백을 받습니다. 놀이 시간을 갖고 숙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적절한 상호작용방식을 습득할 수 있죠. 단, 매직미러를 의식하지 않고 놀이로 관계 맺기가 가능한 초등 저학년 이하 아동을 대상으로 합니다.
심리 검사실을 둘러본 규리 학생기자는 기본 상태를 파악하는 스크리닝 검사, 자가보고 검사에 속하는 TCI(Temperament and Character Inventory), 투사적 검사의 일종인 미술 검사를 복합적으로 시행하기로 했어요. 한층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죠. 스크리닝은 모든 검사의 기본이 되는 사전 검사고요. TCI는 유전적으로 타고나는 성향이 어떻게 성격으로 발현되는지 살펴볼 수 있는 기질 및 성격 검사예요. 부모와 아이가 함께 TCI를 실시할 경우 기질 비교를 통해 서로를 심도 있게 이해할 수 있다고 합니다. 검사 시간은 약 30분으로, 성인은 직접, 만 11세 이하 아동의 경우 보호자가 대신 검사지에 체크하죠. 미술 검사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요. 집-나무-사람 검사(HTP·House-Tree-Person Test)는 종이에 집·나무·사람을 각각 그리는 투사적 그림 검사고요. 가족과 함께하는 모습을 그리는 KFD(Kinetic Family Drawing) 검사, 학교생활을 그려보는 KSD(Kinetic School Drawing) 검사 등이 있습니다. 통제된 환경에서 그림을 그리는 내담자의 반응을 분석해서 내면의 사고, 정서 상태, 욕구 및 충동, 성격 특성 등을 파악할 수 있죠.
우선 규리 학생기자가 엄마와 함께 스크리닝 검사를 했어요. ‘나는 다른 사람 앞에서 수줍다’ ‘쉽게 속상해진다’ ‘화가 났을 때 쉽게 풀어진다’ ‘아무도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등 피검자의 기본 상태를 묻는 항목들이 있었죠. 사전 검사를 마친 후 규리 학생기자는 미술 검사실로, 규리 학생기자의 어머니는 TCI 검사실로 이동했어요. 만 11세 6개월인 규리 학생기자의 TCI 검사지는 어머니가 대신 체크하기로 했답니다.
권 원장이 종이를 내밀며 “머릿속에 집·나무·사람을 그려볼까요? 사람은 여성과 남성을 따로 그려주세요”라고 말했어요. “학교에서 해본 적 있어요!” 들뜬 목소리로 답한 규리 학생기자의 손이 연필을 잡고 거침없이 도화지를 누볐죠. 가족부터 학교에서 생활하는 모습까지 총 6장의 그림이 탄생했습니다. 두 사람은 완성된 그림을 보며 대화를 나눴어요. 집을 이렇게 그린 이유가 무엇인지, 나무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은지 등 여러 이야기가 오갔죠.
모든 검사를 마친 후 권 원장, 규리 학생기자와 어머니가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검사 결과를 듣고 바람직한 가족 관계에 대한 조언을 얻기 위해서였죠. “규리 학생기자의 스크리닝 검사 결과, 내면적으로 약간의 스트레스가 있는 것으로 감지됐어요. TCI 결과와 연관 지어 생각할 수 있는데요. TCI에서 위험 회피 기질과 성취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거든요. 외부 변화에 민감하고 새로운 상황에 익숙해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잘해내고 싶은 욕구가 큰 타입이죠. 그렇다 보니 불안감과 스트레스가 생길 수밖에 없어요. 물론 약간의 스트레스는 일상생활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에요.”
이어서 스트레스로부터 마음을 지키는 방법을 배웠어요. 첫 번째는 복식호흡이에요. 숨 쉬는 행위와 마음·정서·감정이 연결돼 있기 때문이죠. 속상하고 억울한 일이 있을 때 호흡이 가빠지는 경험, 소중 친구들도 있을 거예요. 그럴 땐 호흡만 잘해도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죠. 눈을 감고 배 안에 풍선이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풍선을 크게 만들기 위해서는 숨을 크게 들이마셔야겠죠. 배 속의 풍선이 빵빵해졌다면 이제 바람을 뺄 차례입니다. 한 번에 빼지 말고 4~5번에 걸쳐 짧게 숨을 내쉬면 돼요. ‘후, 후!’ 크게 소리를 내도 좋죠. 두 번째는 물감 놀이, 장난감 던지기, 산책, 달리기 등 긴장을 이완하고 에너지를 발산하는 활동을 하는 거예요. 책 보기, 그림 그리기와 같은 정적인 활동은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약간의 긴장을 유발한다고 해요. 긴장을 이완하는 활동과 정적인 활동을 번갈아 하면 스트레스 해소에 큰 도움이 되죠.
“기질은 좋고 나쁘다고 평가할 수 없는 자신만의 특성이에요. 다만 반대되는 기질을 가진 사람이 만났을 경우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갈등을 겪겠죠. 가족 관계에서 종종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데요. 다행히 규리 학생기자와 어머니는 서로 신뢰가 커서 심하게 다투거나 대화가 단절되는 일은 없었을 거예요. 하지만 더욱 바람직한 상호작용을 위해서는 서로가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음을 인정하고 자신의 방식을 강요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규리 학생기자가 강하게 의견을 주장할 경우 엄마는 상처받을 수 있어요. 관계를 중요시하는 기질이기 때문이죠. ‘엄마, 사실 제 마음은 이래요’라고 속마음을 표현해주면 서로 상처받지 않고 대화할 수 있습니다. 어머니는 규리 학생기자가 독립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이해해주셔야 해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니?’라고 먼저 물어보는 것도 중요하고요.”
규리 학생기자 가족은 권 원장의 조언에 맞춰 앞으로의 다짐을 적어봤습니다. 규리 학생기자의 아버지도 퇴근 후 합류했죠. “엄마·아빠랑 사이좋게 지낼 거예요. 힘들 땐 짜증 내는 대신 좋은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풀 거고요. 자신감을 잃지 않고 나답게 행동할래요.” 규리 학생기자가 말했어요. 어머니는 ‘일주일에 한 번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활동 하기, 하루에 한 번 꼭 안고 사랑한다고 말하기, 서로 다른 점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라고 적었고요. 아버지는 ‘규리랑 안 싸울래, 친구 할래, 사랑할래’라며 귀여운 다짐을 되새겼죠. 한층 단단해진 가족 유대감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세 사람은 각자 다짐을 열심히 실천하고 한 달 뒤 중간점검을 할 예정이에요.
코미디언 정종철이 말하는 화목한 가족 만들기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으로서 바쁘게 사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했어요. 돈만 많이 벌면 되는 줄 알았죠. 아내가 산후우울증을 겪고 있는 줄도 모르고요. 어느 날 외출했는데 아내가 가방에 넣어놓은 편지 한장을 발견했어요. 눈물로 범벅이 된 유서였죠. 이 정도로 힘들어하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어요. 아내에게 얼마나 무심했는지 알게 되니 정말 미안하더라고요. 펑펑 울다가 스케줄을 취소하고 집으로 갔어요.”
일반적으로 ‘아빠는 바깥 일 하는 사람, 엄마는 집안일 하는 사람’이라는 편견이 있지만, 정종철 아저씨네 집에서는 통하지 않는대요. 소중 친구들 또래인 14살 시후군, 12살 시현·11살 시아양 모두 ‘옥주부’인 아빠를 당연하게 여긴다고요. “저도 처음에는 가부장적인 아빠였어요. 아내가 '당신은 가족을 내팽개치고 있다'고 말할 정도였으니까요. 밖에서 일만 하다 보니 자연히 아이들과도 멀어졌죠. 마음이 아팠어요. 제가 바뀌지 않으면 사랑하는 우리 가족을 영영 잃겠더라고요. 이제 우리 집에서는 제가 살림하는 게 일상적인 그림이에요. 아이들은 요리하는 절 보고도 별 반응이 없죠. 하하. ‘어떤 아빠’로 보이려고 노력하지 않아요. 권위 있는 아빠, 멋진 아빠보다는 언제나 가족 곁에 머무르는 '그냥 아빠'가 되고 싶어요. 대신 아이들에게 한 가지는 확실히 말해요. 가족은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존재라고요.”
“저도 어릴 때 소년중앙을 읽으며 자랐어요. 이렇게 글로나마 소중 친구들과 만나게 돼 영광이고 기쁘네요. 여러분, 행복은 만들어가는 거래요. 내 마음가짐과 행동이 행복을 만들 수도, 불행을 생산할 수도 있는 거예요. ‘왜 안 돼?’ ‘왜 내 마음을 몰라주지?’ 다그치기보다는 가족, 상대방에게 기회를 줘보세요. 타인에게 기회를 주면 분명 나에게도 기회가 돌아온답니다. 늘 행복 만드는 소중 친구들 되길 바랄게요.”
권윤정 맘모스 아동청소년 상담센터 원장 미니 인터뷰
- 우리 가족은 대화가 없어요. 식사 시간에도 TV만 보는데요.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 부모-자녀 사이 대화가 없는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먼저 상대방의 관심사부터 알아가는 것이 좋아요. 특정 TV 프로그램, 게임 등을 좋아한다면 함께하는 거죠. ‘TV를 많이 보면 눈에 안 좋다’ ‘그 게임은 재미없어’라고 평가하고 판단하지 마세요. 우리 가족이 어떤 활동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생각하는 게 우선이에요. 대화를 시작할 때는 “00이가(혹은 엄마·아빠가) 책 보고 있구나? 그게 뭐니?” 질문하기보다 “그 책을 집중해서 보고 있구나. 참 재미있나 보네”라고 말해보세요. 질문을 받게 되면 상대방의 의도를 생각한 뒤 답변해야 하죠. 반면 의도와 감정에 공감하며 대화를 시작하면 쉽게 마음이 열린답니다.
- 중학교 1학년 학생입니다. 사춘기라 그런지 엄마·아빠와 대화하기 싫고 마주치기만 하면 싸우죠. 부모님 말씀이 모두 잔소리로 들려요.
- 엄마·아빠의 특정한 행동 때문에 자꾸 화가 나고 다툼이 생기는군요. 부모님이 학생에 대한 걱정이 많고, 도움을 주고 싶으신가 봐요. 하지만 행동 하나하나를 교정하고 가르치고 싶어 하는 행위는 큰 부담으로 다가오곤 하죠. 우선 차분히 자리에 앉아 부모님을 떠올려 보세요. ‘엄마·아빠가 이것만은 하지 않았으면’ 싶은 행동 몇 가지를 종이에 적어보는 겁니다. 나의 속상한 마음을 잘 담아서요. 다 적었으면 예쁘게 봉투에 넣어 부모님께 편지를 부쳐 보세요. 때로는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하는 것보다 글로 표현할 때 내 마음을 더 잘 전달할 수 있어요.
- 가족 간 정서적 교감을 높이고 화목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 집에서 일상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활동에는 무엇이 있나요.
-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활동이면 뭐든 괜찮습니다. 함께 장보기, 산책하기, 보드게임 하기 등이 있죠. 단순히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몇 가지 규칙을 정하면 좋아요. 첫째, 다른 사람을 비난하지 않기. 둘째, 5분에 한 번씩 서로 칭찬하기. 셋째, 상대의 마음이 어떤지 물어보기 등입니다. 작은 규칙을 지키며 함께 활동하면 가족 관계가 더욱 돈독해질 수 있겠죠.
- 상담센터는 겉으로 크게 문제가 드러나는 사람·가족만 가는 곳이라는 편견이 있어요.
- 현재 특별한 문제가 있지 않더라도 더 좋은 관계를 만들고 싶은 이들에게 상담은 더 효과적입니다. ‘굳이 상담까지 받아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가족 구성원 간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기면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답니다.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가족만큼 나에게 중요하고 위안이 되는 것은 없죠. 소중한 가족을 잘 가꾸기 위한 방법을 배운다고 생각해 보세요. 상담센터에서 서로에 대해 이해하는 과정 자체만으로도 값지게 느껴질 거예요.
학생기자 취재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