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왜 왔어? 미성년자가 보호자 없이 왜 여기서 상담을 받고 있어?”
한 엄마는 중학생 아들이 자신 몰래 정신과에서 상담받는 장면을 모습을 보고 소리를 지른다. 그러자 아들은 “엄마가 그럴 때마다 숨 막힌다”며 정신과 상담실을 뛰쳐나간다.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 속 한 장면이다.
현실은 어떨까. 부모 몰래 정신과 상담을 원하는 다수 미성년자는 진료거부를 당하고 있다.
“원래 안돼”, “돈 많이 든다”며 진료거부
단 한 곳만 “보호자가 없어도 괜찮다”며 “부모님에게 숨기고 싶으면 비보험 처리를 하면 된다. 대신 진료비는 조금 더 나온다”고 설명했다.
의료진은 미성년자의 진료를 거부해선 안 된다. 의료법 제15조 제1항이 ‘의료인 또는 의료기관 개설자는 진료나 조산요청을 받으면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어서다.
신현호 의료법 전문 변호사(법률사무소 해울 대표)는 “진료 후 해당 미성년자의 극심한 약물남용 및 자해가 의심되면 부모님 동행을 요구할 수는 있다”면서도 “청소년이라는 이유만으로 진료를 봐주지 않는 건 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진료거부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부모님께 알려질 바엔 혼자 참아”
정신과뿐 아니라 학교 상담실도 청소년들이 마음껏 이야기를 터놓을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디지털성착취 피해자 B양(16)도 "가족에게 피해 사실을 차마 알릴 수가 없어 학교 위(wee)클래스나 신고를 하는 건 꿈도 못 꾼다"고 했다. C군(18)은 "교내 상담센터인 위클래스에서 학교 폭력 건을 상담했는데, 집에 가보니 부모님이 이 사실을 알고 있어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이처럼 청소년들이 상담할 곳은 부족하지만 우울감을 느끼는 청소년은 매년 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가 지난해 발표한 ‘청소년의 우울감 경험률 추이(2007~2018년)’를 보면 우울감을 느끼는 청소년은 2015년 23.6%에서 2018년 27.1%로 늘었다. 10명 중 4명꼴이다.
“청소년 고민 절반은 가정에서 시작”
장 활동가는 “부모에게 알릴수록 정신적 문제를 숨기는 청소년들이 늘어나기 때문에 의료진들이 청소년들의 가정환경 현실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종익 강원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청소년 상담을 받는 이들의 원인을 살펴보면 절반 정도가 가정문제에서 기인한 것이라 이런 경우엔 부모에게 말하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지금도 지역 센터 및 학교 등 미성년자들이 상담할 수 있는 창구가 없는 건 아니지만, 상담이 형식적으로만 이뤄져 청소년들의 만족도 상당히 낮다”며 “제 발로 정신과에 찾아가기 전 이들이 편히 상담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확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지아 기자 kim.jia@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