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청와대 청원이 올라왔는데, 시국씨가 동의를 눌러 달라고 링크를 단톡방에 올렸다. ‘문재인 대통령님 COVID-19 확산에 따른 한국 의류 벤더 섬유산업을 살려주세요’라는 청원이다(이달 말이 기한인 이 청원은 동의가 16일 현재 1만여 명을 조금 넘었다). 그때 그가 휴직 중이며 회사가 어렵다는 걸 알게 됐다. 정부가 진짜 할 일을 놔두고 엉뚱한 데 돈을 쓴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관심 속 죽어가는 의류 벤더사
재난지원금 고맙지만 그보다는
일할 터전 망가지지 않게 해달라
하루가 다르게 상황이 나빠졌다. 회사의 주력인 영업1부 미주팀의 주문도 줄줄이 취소됐다. 한 달 900만 달러의 매출이 나와야 하는데, 올 2~3월 취소된 것만 약 140억원어치였다. 여성복을 주로 만드는 회사라 12월~3월이 극성수기다. 1년 매출의 60%가 이때 나온다. 당장 140억원이 문제가 아니었다. 6월까지 주문이 모두 끊겼다. 7월부터 주문이 재개되더라도 선적 시작은 빨라야 9~10월, 자금 결제는 대개 선적 후 3~4개월 후다. 올해 매출이 0원이 될 수도 있다. 보상 받을 곳도 없다. 미국 연방법과 독일 섹션 313은 재난에 의한 계약 위반에 책임을 묻지 않는다. 몇몇 한국 업체가 소송을 준비 중이지만 승소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한다.
시국씨는 회사의 요구대로 직원 10명과 함께 3개월 휴직 계약서를 썼다. 월 급여의 50%를 받고, 권고사직은 하지 않는 조건이다. 나머지 70명 직원의 앞날도 캄캄하다. “회사 사정 뻔히 알면서 버틸 수는 없었다. 독일 바이어의 주문이 재개되면 다시 불러주겠다고 했지만, 솔직히 기약이 없다.”
정부의 고용유지지원금은 큰 도움이 못됐다. 휴직 기간에 임금의 70%를 보전해 주면 그 70%의 90%를 국가가 보조해 준다. 하지만 절차가 까다롭고 시간이 걸려 노무사를 써야 한다. 노무사 비용이 약 10%다. 회사든 직원이든 50%를 먼저 주는 게 낫다. 회사 측은 국가 지원금을 정산한 뒤 남는 게 있으면 더 주겠다고 했다.
그는 청와대 청원자의 “살려주세요”란 외침이 남의 일 같지 않다고 했다.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원단·부자재를 납품하는 국내 협력업체도 줄줄이 돈줄이 말랐다. 오래 같이 일한 회사들이라 십시일반 버티고 있지만 시간 문제다. 그는 나라에 바라는 게 딱 하나 있다고 했다. “재난지원금도 고맙지만, 그것보다 회사가 망하지 않게 해 달라. 휴직이 몇달이 되든 일할 터전이 망가지지만 않으면 다시 열심히 일해서 세금 꼬박꼬박 내고 잘살 수 있다.”
그는 매일 일자리를 알아보러 다닌다. 뭐든 할 생각이다. 그는 권고사직당하지 않았다. 휴직 중이니, 복직을 기다리면 될 것 아니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묻지 못했다. 이미 그는 복직의 희망과 기대를 접은 듯했다. “손가락 빨고, 하늘만 보며 기다릴 수는 없는 것 아니냐.” 그의 반문이 들릴 것 같았다. 그래서 더 묻지 않았다. 아니 물을 수 없었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