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들이 ‘사마에게’를 통해 이해해주면 좋겠어요. 우리 중 누구도 시리아를 떠나 난민이 되고 싶지 않았다는 것을요.“
시리아 북부 도시 알레포에서 5년간 내전의 참상을 알려온 다큐멘터리 감독 와드 알-카팁의 말이다. 올해 스물아홉 살로, 딸 둘을 둔 엄마다. 2011년 대학생 신분으로 독재정권에 맞서 시위에 나섰고, 이후 의사인 남편 함자 알-카팁과 함께 반군지역에 남아 어린 아이, 임산부, 병자를 가리지 않는 정부군의 폭격에 카메라를 들었다.
이런 세상에 태어나게 한 엄마를 용서해줄래?
시리아 내전 다룬 다큐 '사마에게'
영국 망명한 와드 알-카팁 감독
29살 엄마가 어린 딸에 보낸 편지
칸·영국아카데미 다큐상 휩쓸어
제목의 ‘사마’는 와드 알-카팁 감독이 내전 지역에서 낳은 첫 딸의 이름. “이런 세상에 태어나게 한 엄마를 용서해 줄래?” 딸에게 편지하듯 써내려간 그의 내레이션이 전쟁 다큐 그 이상의, 어느 젊은 어머니의 심경으로 담담히 와 닿는다. 올해 아카데미 장편다큐상 후보에 올랐고, 영국 아카데미 다큐상, 칸영화제 최우수다큐상, 핫독스국제다큐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 암스테르담국제다큐영화제 관객상 등 전세계 60개 이상 영화상을 휩쓸었다.
테러리스트란 오해 풀기 위해…
“시리아 정부는 시리아에 우리가 목격한 모든 일이 없었다며 부인해왔죠. 사람들, 미디어, 국가를 통한 잘못된 정보 때문에 우린 테러리스트라는 오해를 받았고 또 어떤 이들은 우리를 자유민주주의 투사라고 해요. 외부 오해로 인한 혼란 때문에라도 우리의 촬영이 중요했습니다.”
중앙일보 e-메일 질문에 그가 14일 음성으로 보내온 답변에서 밝힌 이야기다. “영화를 만드는 것은 알레포에서 한 해를 보내는 것만큼 힘겨웠다. 나는 모든 것을 계속해서 다시 체험했다”고 그는 말했다.
그가 바랴스 알 아사드 대통령의 시리아 독재정권에 맞서 처음 “혁명에 나선 게” 스물한 살 때. 2011년 3월 학교 담벼락에 민주화 요구 낙서를 적은 10대들이 체포, 고문당한 사건을 도화선으로 알 아사드 정권 퇴진 요구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됐고 정부는 무력진압을 가했다.
시리아 정부, 시위대 고문·사살
와드 알-카팁 감독은 “알 아사드 정권과 정부군은 계속해서 사람들을 죽였다. 직접 사살했다. 납치해서 죽을 때까지 고문했다”면서 그럼에도 “시리아 정부는 이런 모든 일을 부인했기에 우리가 모든 것을 녹화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처음 촬영할 땐 영화가 될 줄은 몰랐다. 시리아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바깥에 알려야 한다는 데 온정신이 쏠렸다”면서 “주변에 전쟁범죄가 벌어져도 사람들은 잘 느낄 수 없다. 그러므로 반드시 기록돼야 한다. 우리가 아니면 아무도 하지 않을 것이었다”고 돌이켰다.
IS 폭력, 알 아사드 정권·러시아 때문
- 다큐가 어떻게 다가가길 바랐나.
- 투쟁이 이토록 오래 지속되리라 예상했나.
남성은 모르는 여성·아이 눈에 비친 내전
2016년 2월 7일. 첫 아이 사마가 태어났다. ‘사마’는 하늘이란 뜻. “저희가 사랑하고 원하는 하늘, 공군도 공습도 없는 깨끗한 하늘요. 태양과 구름이 떠있고 새가 지저귀는 하늘요.” 딸의 이름에 희망을 담았다. 카메라를 들 땐 저널리스트지만, 평소엔 그도 ‘딸바보’ 엄마였다.
- -전쟁통에 어린 사마를 데리고 다녔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고 했는데.
다큐에서 그는 “이 투쟁이 더 이상 자신들만의 것이 아니라 딸의 미래를 위한 것”임을 깨닫는다.
부상당한 산모 뱃속 태아 살려낸 장면
- 부상당한 산모의 배에서 꺼낸 태아를 의료진이 살리려 노력한 장면을 잊을 수 없다.
유튜브 채널4 뉴스 계정에서 ‘Inside Aleppo: A new life in a deadly city’라 검색하면 볼 수 있는 이 영상은 2016년 게재돼 지금껏 124만번 조회됐다.
- 폭격으로 인한 참담한 죽음을 담으며 어디까지 촬영해야 할지도 고민됐을 텐데.
자식 잃고 "왜 촬영하냐"던 여인 나중엔
“촬영하며 죽음에 더 가까이 다가갔어요. 한참이 지나고 깨닫기 시작했죠. 생사를 오가는 전투와 고통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들을 떠날 수 없단 것을요. 내일이 오면 죽는 사람이 나나 내 딸, 남편이 될 수 있었어요. 말 그대로 살아남을 거라고 예상하지 않았기 때문에 죽음에 그토록 가까이서 촬영할 수 있었던 거예요.”
폭탄 터져도 울지 않던 한 살박이
지난해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그는 “사마는 (내전 중) 모든 것을 이해했다. 폭탄 공세에 그애를 찾아보니 매우 고요하게 잠들어있었다”며 “둘째 타이마는 우유 한 병이 떨어져도 우는데, 사마는 높은 침대에서 떨어졌을 때도 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종종 그애가 무서워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고 아픈 속내를 털어놨다.
여전히 시리아엔 300만명 공포 떨죠
“사람들이 ‘사마에게’를 보고 ‘이 일은 (지나간) 역사다’라고 생각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만약 누구든 이 영화를 볼 수만 있다면 나는 지금 (시리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한 진실을 이해하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인간으로서, 나는 그 희망을 붙잡을 수밖에 없습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