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을 차지한 9일(현지 시간), 북미 배급사 네온은 트위터에 쏟아진 이런 감탄들을 발 빠르게 공유하며 분위기를 띄웠다. ‘기생충’의 기네스 등극 소식도 흥분하며 전했다. 이날 ‘기생충’은 비영어 영화 역대 최다 아카데미 수상 공동기록 보유자로 세계기네스협회에 인증됐다. 1984년 스웨덴 잉마르 베리만 감독의 ‘화니와 알렉산더’, 2001년 대만 이안 감독의 ‘와호장룡’과 함께다. 비영어 영화가 아카데미 작품상을 거머쥔 것도 아카데미 92년 역사에서 ‘기생충’이 처음이다.
할리우드 골리앗 제친 ‘기생충’ 전략
오스카 수상 뒤엔 북미 배급사 네온
‘괴물’로 봉준호 덕후 된 톰 퀸 대표
극장 3곳 먼저 올려 매진, 관심 증폭
제시카송 등 미국 젊은층 파고들어
‘기생충’의 이런 쾌거에는 배급사 네온의 영리한 홍보 전략이 한몫했다. 시상식 직후 LA타임스는 “뉴욕 인디 영화의 선두주자 네온은 이번 작품상 부문에서 골리앗들 틈의 다윗이었다”며 “2년 반 전 설립된 직원 28명 규모의 이 배급사는 소니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유니버설 픽쳐스의 ‘1917’, 넷플릭스의 ‘아이리시맨’ 등 자본이 넉넉한 거인들을 쳐부쉈다”고 보도했다.
① 매진 이끈 초소규모 개봉
이는 인디 배급 업계 오랜 베테랑인 퀸 대표의 경험에 따른 것이다. 2017년 네온을 팀 리그와 공동 창립한 바로 그해 그는 ‘아이, 토냐’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배출했다. 2월 시상식에 최대한 가깝게 개봉하려는 여느 경쟁작들과 달리 ‘기생충’은 캠페인 시즌 초반인 10월을 택해 주목도를 높였다. 황금종려상의 열기가 아직 남아있던 시기였다. 또 뉴욕과 LA 단 3개 극장에 개봉한 전략은 매진사례로 이어졌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올해 작품상 부문에 ‘아이리시맨’ ‘결혼 이야기’를 후보에 올린 넷플릭스가 오스카 캠페인에만 60여 명 전담팀과 천문학적 홍보비를 쓴 데 비해 네온은 규모로는 절대적인 열세였다. 하지만 오히려 이를 역이용했다. NYT는 “네온은 대형 스튜디오들과 달리 언론에 문을 활짝 열어젖혀 취재진까지 ‘기생충’의 전도사로 만들었다”고 전했다.
② 놀이같은 SNS 홍보
현지 매체 ‘버라이어티’는 이런 전략이 “Z세대, 밀레니얼 등 젊은 관객층을 사로잡았다”며 “아카데미 후보작이 통상 높은 연령층에 지지받는 것과 다르다”고 보도했다. LA타임스 기사에서 퀸 대표는 “‘기생충’은 외국영화를 본 적 없는 관객에게 다가가고 있다”면서 “부모들은 아이들이 ‘기생충’을 보고 싶다고 해서 따라가서 보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했다.
③ 봉준호가 브랜드다
최근엔 ‘봉준호가 하나의 장르(@genreofone)’란 슬로건을 내세운 인스타그램 계정을 열고 ‘괴물’ ‘마더’ ‘옥자’ 등 전작들의 아트 포스터와 함께 각 영화 관련 스토리텔링도 풀어냈다. ‘기생충’의 배급사가 아니라 봉준호란 브랜드를 관리하는 할리우드 에이전시 같은 역할을 한 것이다.
이런 전략의 배경엔 봉 감독에 대한 퀸 대표의 각별한 애정이 있다. 그는 해외 농구 코치였던 아버지를 따라 14살까지 유럽에서 살았다. 대학시절 비디오가게에서 일하며 벨기에 컬트 범죄 코미디 ‘개를 문 사나이’(1992) 등 개성 강한 영화에 심취했던 그가 봉 감독에게 끌린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2006년 칸 영화제 감독주간에서 처음 본 ‘괴물’에 매료된 이후 와인스타인컴퍼니 산하 인디 배급사 등을 거치며 봉 감독의 장편영화 7편 중 5편을 북미에 소개했다.
"‘기생충’ 대본을 보자마자 이 영화가 봉 감독의 최고 성취가 될 거란 사실에 사로잡혔다”는 그는 아카데미 시상식 다음 날 미국 잡지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어젯밤에 모든 역경을 이겨냈다”고 말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