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거울에 비친 방 안 풍경은 작은 놀라움을 준다. 누군가가 있었던 것이다. 붉은 담요를 덮고 거실 의자에 앉아 있는, 리준평의 아내 선화. 놀랍게도 그 역을 맡은 배우는 전도연이다. “죽기 전에 못 볼 줄 알았시요”라며 힘겹게 말하는 선화는 마약에 절어 있는 상태. 이후 준평은 자신을 밀고한 사람이 선화라는 걸 확인하고 분노하며, 선화는 “잊었습네까? 가족은 당신이 버린 겁니다”라며 차갑게 대응한다.
선화는 더 큰 의미로 영화를 감싼다. 이 신에서 전도연이 만들어내는 표정은 ‘폐허 그 자체’이며, 거대한 재난 앞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자의 그것이다. “지옥에서 만나자”는 말을 남기고 떠나는 준평과, 눈물 고인 눈을 파르르 떨며 감는 선화. 이 영화의 가장 압도적인 스펙터클은 그녀의 존재감일지도 모르겠다.
김형석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