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서울 모처에서 열린 이 모임에는 삼성·현대자동차·SK·LG·롯데 등 국내 5대 그룹 핵심 임원들이 참가했다. 이들을 불러모은 실력자는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었다. 모임은 지난해 11월 말 김 실장이 각 기업에 요청한 ‘공동사업화’ 과제를 주문하면서 시작됐다. 언뜻 보면 취지가 그럴듯하다. “제2 반도체가 될 만한 신사업을 5대 그룹이 함께 찾고, 공동 연구개발 및 투자에 나서면 정부도 이를 국책사업으로 삼아 총 수십조원의 예산을 지원하겠다”는 제안이었다.
기업 미래 전략 간섭은 직권남용 다름없어
청와대가 시급히 해야 할 일은 노동·규제 개혁
더구나 청와대 정책실장이 기업을 수시로 불러모아 회사 사장이 부하직원들에게 지시를 내리듯 사업 아이디어를 내라고 하는 것 자체가 매우 적절치 않다. 공동사업 계획을 가져오면 정부 돈을 퍼주겠다는 발상은 더욱 납득하기 어렵다. 국내 대기업들은 지금 돈이 없어 신사업에 나서지 못하는 게 아니다. 정부가 주도해야 할 노동개혁에는 뒷짐을 지고, 중국에도 뒤처진 4차 산업혁명을 위해 혁신이 필요하지만 낡은 규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니 기업의 투자 의욕이 솟아날 리 없다. 설상가상으로 국민연금의 기업 경영 개입을 강화하고 사외이사 임기를 단축하는 ‘공정경쟁 3법’이 국무회의를 통과하면서 기업들은 투자보다는 경영권 방어에 급급해졌다.
이래서는 저성장 탈출도 난망이다. 지난해 성장률이 2%에 머무른 것도 민간투자가 침체했기 때문이란 걸 모르는가. 움츠린 민간경제를 되살리려면 정부가 할 일은 노동과 규제 개혁이다. 김 실장은 기업을 권력의 것인 양 여기는 직권남용의 담장에서 내려와 시장경제에 충실한 대통령 비서의 본업에만 충실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