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명 소설가
마음 한구석에서는 우리도 광화문 앞에서 이런 집회를 열자고 외치고픈 충동이 인다. 올드미디어건 뉴미디어건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만 가득해 보여서, 제정신인 사람이 아직 남아 있음을 그렇게라도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 제정신인 사람들이 모여서 ‘우리가 제정신인 게 맞다’고 서로 위로하고 제정신을 잃지 말자고 다짐하고 싶다. 어지간한 강단 없이는 제정신을 유지하기 어려운 세상이 오는 것 같기에.
정치 리더십이 사라지는 시대
증오의 선동 더 강해질 텐데
광기에 휩쓸리지 않을 방법은
애초에 제정신과 집회라는 두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다. 유튜브에서 2010년 당시 집회 영상을 찾아봐도 어딘지 열기가 부족해 보인다. 제정신이 있으면 차분해지니까 당연한 일이다. 괴벨스가 했다는 말처럼 대중을 열광시키는 힘은 분노와 증오에서 온다. 지금 제정신은 힘이 없고, 대중의 분노는 실체가 있다. 세계화와 기술 발전으로 선진국에서 괜찮은 중산층 일자리가 사라진다. 기성세대는 벼랑 끝에 몰린 심정이며, 그 일자리를 만져볼 기회조차 차단된 청년세대는 자기 인생이 처음부터 잘못됐다고 느낀다.
여기에 좌우 양쪽에서 분노와 증오를 증폭하는 선동가들이 활개를 친다. 지난 10년 사이에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는 현실에 영향을 끼치는 선을 넘어, 본격적으로 현실을 재구성했다. 그 기술의 발명가들은 참여자가 많아질수록 민주주의도, 저널리즘도 정비례로 발전한다고 순진하게 믿었다. 그렇게 무책임한 아마추어 정치와 유사 언론이 파괴적인 영향력을 얻었다. 물론 대개 결과는 안 좋다. 그들이 주장하는 세상은 편한 대로 재구성한 가상현실이기에 진단도, 대책도 진짜 현실에 들어맞지 않는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이들의 실패는 경험과 반성이 아니라, 더 터무니없는 음모론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이런 퇴행이, 어떤 폭력적 파국을 거치지 않고 저절로 멈출 수 있을까? 불길한 전망에 사로잡히기 전에 일단 나부터 제정신을 유지할 방법을 강구해야겠다. 어쩌면 우리는 제정신의 확산이 아니라 그 생존을 걱정해야 할 단계에 이미 접어들었는지도 모른다. 지난 몇 년간 주변에서 제정신을 잃은 지인들을 너무 많이 봤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 사태 때에는 사람들이 우르르 휩쓸려 나갔다.
나는 우선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 속에 있지 않으려 한다. 동조심리는 괴물처럼 이성을 집어삼킨다. 옆에 앉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오답을 말하면 길고 짧은 선분 알아맞히기처럼 쉬운 문제도 풀지 못한다. 우리는 그렇게 쉽게 제정신을 잃는다. 여러 심리학 실험들이 증명한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니 동창회고, 인터넷 커뮤니티고 제정신이 아닌 인간들이 점령했다 싶으면 도망쳐야 한다.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과 실시간 논쟁도 피하려 한다. 제정신이 아닌 이들은 불리하면 링에 망치를 들고 올라와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논쟁에는 자신 있다고 큰소리치다가 망치에 한 대 얻어맞고는 제정신을 잃고 길길이 뛰는 사람도 여럿 봤다. 그런 이들 상당수는 그대로 질 수 없다며 자기 망치에 손을 뻗었다. 이런 광기는 인플루엔자 같다. A형 바이러스를 물리치고 B형에 걸릴 수 있다. 애초에 감염자와 침방울이 닿지 않을 정도로 거리를 유지하는 게 좋다.
다행히 우리는 중증 감염자를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사이비종교 교도를 가려내는 일과 기본적으로 같다. 그들은 무오류를 확신하며, 선민사상과 피해의식에 동시에 빠져 있고, 공허한 구호를 기침처럼 콜록콜록 뱉는다. 지식정보시대에 참으로 아이러니한 역병이다.
장강명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