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 ‘갑질’을 풍자하는 ‘삼우실’(@3woosil‧팔로 21만), 동물에 관한 사랑스런 일화를 그리는 ‘러브둥둥’(@love_doong.doong‧22만) 등 최근 독자 사연을 인스타그램 만화로 그려 인기 끌고 있는 일상만화 작가 중에도 단연 독보적이다.
인스타그램서 37만 팔로 인기 키크니
독자 댓글 달면 그려주는 주문제작 만화
가족·갑질·다이어트·반려동물 소재 다양
작가가 직접 겪은 어려운 환경,
번아웃 경험, 공감하는 힘 길러줘
해결책보단 '훗' 웃을 수 있는 공감대
지난해 11월 서울 동선동 독립서점 부비프에서 새 에세이집 『일상, 다~ 반사』(샘터) 북토크로 만난 키크니의 말이다.
자신을 “표준 성인보다 미달”이라 소개한 그는 “내가 (사연자의 고민을) 해결해줄 거란 생각보단 최대한 불편하지 않게, 출퇴근길에 '훗' 웃을 수 있을 만큼 좋은 방향으로 그려보잔 생각으로 임하고 있다”고 했다.
“주위에서 알게 되면 솔직하게 그릴 수 없을 것 같다”며 가족에게도 자신의 정체를 알리지 않고 익명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다. 발상의 전환에 웃음‧공감을 버무린 만화엔 바로 그 자신이 마음의 병을 앓은 경험이 자양분이 됐다.
“그림은 아주 어릴 적부터 그렸어요. 가정환경도 그렇게 썩 좋지 않고 (대학 시절) 부모님 몸이 편찮으셔서 돈을 벌어야 했죠. 일이 많지 않을 땐 기업체에 다양한 그림체로 어필해서 일을 따냈어요. 7~8년을 하루 2~3시간씩 자며 그림을 막일하듯 기계처럼 그렸죠.”
기계처럼 그림 그리다 공황장애 왔었죠
“잠을 못 잤고 밥도 먹을 수 없었어요. 2주 만에 체중이 7~8㎏ 빠졌죠. 약 먹을 병에 걸렸단 게 무서웠어요.”
산책이 좋다는 얘기에, 친구 열네 명을 단체 대화방에 초대했다. “각자 2주에 한 번 나를 산책시켜 달라”고 부탁했다. 본명 대신 대학 선배와 ‘코크니키크니’(선배는 코가, 그는 키가 큰 데서 따왔다)란 필명을 지어, 마음 가는 대로 낙서처럼 솔직하게 올린 일상만화가 인스타그램에서 차츰 호응을 얻었다.
우리집 냉장고·강아지 속내 그려주세요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인스타그램에 달린 주문 댓글을 일일이 출력해 고심해서 골랐다. “다이어트 중인데 너무 배고파요. 한밤중에 냉장고 뒤지는 그림 그려주세요” “7년 넘게 함께해온 강아지가 오늘 암 진단을 받았는데 몇 시간째 펑펑 우는 저를 보며 우리 집 강아지가 무슨 생각하는지 그려주세요”…. 다이어트부터 직장생활, 친구와 가족, 반려동물까지 소재는 무궁무진했다.
“아이디어가 좋다고 말씀해주시는데, 저는 진짜 생각날 때까지 컴퓨터에서 (독자) 댓글만 계속 보거든요. 일러스트레이터 일할 때도 특별히 그림을 잘 그리기보단 남들보다 엉덩이가 무겁다는 자부심은 있어요. DM(인스타그램 메시지)이나 댓글로 (독자가) 감사하다고 말해주면 뭔가 해낸 것처럼 일주일이 신나죠.” ‘무엇이든…’은 이번 에세이집에 앞서 단행본으로도 출간됐다.
제2의 자아 키크니와 실제 싱크로율?
이번 에세이집엔 그의 실제 삶의 이야기도 많이 담겼다. 대학 때 등록금을 벌기 위해 두 달여 막노동 했던 기억, “재미로 그리던 그림이 일이 되고 생계가 되면서” 생긴 힘겨움, “비정규직이라는 불안함”도 털어놨다. 대학시절 같이 그림을 그리던 선후배의 8할은 지금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그 자신은 후회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어릴 적 낙서로 시작했던 그림이, 이젠 누군가에게 작은 재미와 감동으로 다가간다는 게 참 좋”아서다.
아픈 가족사, 단단한 가족애로 승화
추석 때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 레시피로 형이 떡국, 자신은 육회, 아버지는 반찬을 준비해 세 부자가 경연을 벌인 일화, 군대 가던 자신을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 옥상에서 끝까지 지켜봤던 할머니를 향한 그의 애틋한 기억이, 읽는 이의 가슴까지 후끈하게 덥힌다.
동네선 키 큰 백수로 오해도 받죠
키크니 캐릭터를 활용한 기업‧관공서 광고 의뢰가 메일을 다 확인하기 힘들 만큼 많이 오면서, 1년여 전부턴 본업인 일러스트레이터를 만화가 일이 앞질렀단다. 생전 처음 기부도 해봤다. “들쑥날쑥 인기에 휘둘리고 싶지 않아” TV 출연 제안은 거절했다. 지하철에서 자신의 만화를 보는 사람이 있다는 게 지금도 그저 신기하다는 그다. 인스타그램에 광고성 만화를 올려도, 기존 독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삼행시 경품 이벤트 등을 반드시 병행한다. 이런 독자 이벤트를 안 하겠단 기업 광고는 아예 거절한다. 힘겨웠던 시절, 호응과 응원 댓글로 자신을 우울의 구렁텅이에서 건져내 준 독자들에 지키는 그만의 의리다.
일단 해보겠습니다. 안 되면 안 해보겠습니다
“그때 쉬면서 처음으로 저에 대해 돌아보게 됐어요. 순리대로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고꾸라지고 나니까 내가 나를 돌봐야지, 생각하게 됐죠. 엄청 가벼웠던 사람인데 우스갯소리를 해도 한 사람이라도 기분 나쁘게 하면 안 되겠단 법칙이 생겼고요. 제가 엎어져 보고 알게 된 소중함을 간과하지 말자고 다짐했죠.”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