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서 줄서서 사는 상품권…4000억 완판, 2000억 더 판다

중앙일보

입력 2020.01.08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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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부터 매년 1월 경북 포항 시내 몇몇 은행 앞에 가보면 길게 줄 선 시민들을 볼 수 있다. 금리 좋은 예금 가입을 위한 줄이 아니라, ‘포항사랑상품권(이하 포항상품권)’을 구매하기 위한 줄이다. 포항상품권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지자체가 조례를 만들어 발행하는 자체 상품권이다. 현금 역외 유출 방지를 위해 경남 거제 등 전국 50여개 지자체가 비슷한 자체 상품권을 발행하고 있다.
 
하지만 지역 안에서만 쓸 수 있는 자체 상품권을 사려고 포항처럼 긴 줄을 서는 경우는 보기 어렵다. 포항상품권은 지난해 1700억 원어치를 발행해 완판했다. 17년엔 1300억 원어치, 18년엔 1000억 원어치를 발행해 모두 팔았다.

상시 5%, 최대 10% 할인 판매
동네 문방구 등 가맹점 1만3000곳
시, 인쇄·할인률 보전 등 184억 지원
세금 들어간 할인 판매라는 지적도

포항시는 오는 13일 2020년 상품권 판매를 시작한다. 올해 예정 발행액은 사상 최대 금액인 2000억 원어치다. 포항시 측은 7일 “첫 판매 시작인 1월에 긴 줄을 만들면서 한 번에 다 팔려나가면 안 되기 때문에 400억 원어치만 우선 끊어 판매할 방침이다”라고 밝혔다.
 
포항시가 판매를 자신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포항상품권에는 성공 공식이 있다. 최대 10% 할인이라는 어느 지역에서도 볼 수 없는 높은 할인 판매다. 1만원권·5000원권 두 가지로 발행하는 포항상품권은 상시 5% 할인해 판매한다. 그러다 1월이나 6월·7월·9월·12월 등 포항시가 정한 특별한 때엔 8% 할인, 최대 10% 할인해 판매한다. 1만 원짜리 상품권을 9000원에 구매할 수 있다는 의미다. 오는 13일 새해 첫 상품권 판매 때도 포항시는 8% 할인을 적용해 판매한다. 포항시가 벌써 긴 줄을 예상하는 배경이다.
 
많은 가맹점도 성공 요인으로 꼽힌다. 포항의 전체 상점은 2만5000곳 정도. 이 중 1만3000여곳이 포항상품권 가맹점이다. 시민 권모(32·여)씨는 “죽도시장에서 건어물을 사고, 동네 문방구에서 연필을 살 때도 포항상품권을 현금처럼 쓸 수 있다. 헬스장도 끊을 수 있다”며 “물건값의 70% 이상만 치르면, 남은 30%에 해당하는 금액만큼은 현금으로 거스름돈을 받을 수 있어 백화점 상품권보다 더 좋은 것 같다고도 한다”고 했다.


이런 포항상품권을 두고, 할인 판매로 만든 ‘완판 상품권’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중화 제주연구원 박사는 “지역 상품권을 할인 판매하는 게 정상적인 것이라고만 볼순 없다. 할인 판매보다 포인트 혜택 같은 것을 앞세워 지역 내에서 빠르게 상품권이 회전하도록 하는 게 맞다”고 했다. 그는 “하지만 포인트 만으론 회전이 제대로 안되다 보니, 할인 판매를 할 수 밖에 없는 구조인데, 장기적으론 할인 방식의 상품권 판매는 개선이 필요한 부분 같다”고 덧붙였다.
 
포항시는 올해 국비 80억원, 시비 80억원 등 모두 184억원을 포항상품권 관련 예산으로 정했다. 지난해에도 시비 75억원 등 150억원 정도를 상품권 예산으로 썼다. 이 돈으로 상품권을 인쇄하고, 시중 은행에 판매 수수료(0.8%), 환전 수수료(0.9%)를 지급한다. 시민에게 팔려나간 상품권 할인 금액만큼을 보전한다. 가맹점 업주들은 상품권을 받아 물건을 판매한 뒤 은행에서 현금으로 환전할 때 별도 수수료를 부담하지 않는다. 즉, 할인 상품권이 많이 팔려나가 은행에 되돌아올수록 그만큼 세금이 들어가는 구조인 셈이다.
 
이에 대해 손창호 포항시 포항상품권 담당은 “세금이 들어가는 할인 판매를 하는 건 맞지만, 지역 경제 활성화, 현금 역외 유출 방지라는 지역 상품권 발행 기능은 100% 충족되고 있다”며 “지난해 중순 안동대 산학협력단이 포항사랑상품권 발행 효과에 대해 분석한 결과, 직·간접적 경제 유발 효과는 1조5000억원 이상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김윤호 기자 youknow@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