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행장의 낙하산 논란에는 10년 전 자리 잡은 관행이 배경으로 작용했다. 기업은행은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 취임한 조준희 행장에 이어, 권선주‧김도진 행장까지 3대 연속 내부 출신 행장을 배출했다. 조직 생리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내부 출신 행장이 잇따라 임명되면서, 기업은행은 2018년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하는 등 성장세를 이어갔다. 행시(27회) 출신으로 기획재정부를 거쳐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전통 관료 출신 윤 행장의 취임이 이례적이었던 이유다.
사실 관행을 만든 건 현 정권이다. “정부는 좋은 관치도 있고 나쁜 관치도 있을 수 있다고 강변하겠지만, 관치는 독극물이고 발암물질 같은 것이다.” 7년 전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당시 박근혜 정부가 허경욱 전 기재부 차관을 기업은행장에 임명하려 하자 이런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낙하산 인사가 계속되면 금융산업 발전은 요원해질 것”이라 했고, “능력 있는 내부출신 인사를 내치고 ‘모피아(옛 재무부 출신 관료)’를 보내서 얻을 건 없다”고도 했다. 허 전 차관 대신 권선주 당시 부행장이 기업은행의 두 번째 내부 출신 행장이 된 배경이었다.
4년 전 민주당이 발의한 ‘낙하산 방지법’에 비춰 봐도 윤 행장 임명은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 당시 민주당은 산업은행‧수출입은행‧중소기업은행 등 국책은행에 대해 “▲5년 이상 금융회사 근무경력 ▲금융 관련분야 교수 ▲변호사나 공인회계사 ▲금융 관련 공공기관 7년 이상 근무경력 등의 요건을 못 갖추면 임원이 될 수 없다”는 내용의 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기업은행 노조 관계자는 “윤 전 수석이 과거에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을 지내기는 했지만 (은행장을 맡을 만큼) 금융경력이 충분하다고 볼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정의당 추혜선 의원은 지난 달 31일 기자회견에서 “금융에 대한 식견이나 능력, 기업은행 업무와 비전 이해도에 대해 누구나 수긍할 만한 평가를 받은 인물이 행장이 돼야 한다”며 윤 행장 임명을 반대했다.
그러나 윤 행장 취임에는 씁쓸한 면이 있다. 현 정권이 과거 강하게 비판했던 ‘소통도 설득도 없는 관치금융’의 모습을 답습했단 점에서다. 노조는 “정부는 애초부터 내부 출신 행장을 검토조차 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윤 행장 이전에 하마평에 올랐던 반장식 전 청와대 일자리수석이 금융 관련 경력이 전무한 인물이란 점에 비춰보면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김형선 기업은행 노조위원장은 “결국 청와대 수석 일자리 만들어주기 인사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금융노조는 청와대가 윤 행장 임명을 고수할 경우, 민주당과 맺은 정책협약을 취소하는 것도 검토한다고 한다. 김 위원장은 “청와대와 노동계의 전면전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돌이켜보면 기업은행만 겪은 논란은 아니다. 바른미래당 정책위원회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공공기관 임원의 5명 중 1명꼴로 ‘낙하산 인사’라고 한다. ‘국정철학에 대한 이해도’를 들며 변명하기엔 7년 전 민주당이 내놓은 답이 무색하다. “정부는 좋은 관치도, 나쁜 관치도 있다고 하겠지만….”
성지원 기자 sung.jiw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