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일오끼 - 경남 통영
통영 음식은 하나같이 굴을 닮았다. 딱딱하고 볼품없어 보이지만, 속은 보드랍고 향긋하다. 억척스러운 삶의 흔적이 음식마다 배어 있다. 애초 충무김밥과 시락국은 새벽 일 나서는 뱃사람과 시장 상인을 위해 태어난 음식이었다. 통영이 자랑하는 술 문화 ‘다찌’에서도 항구 사람 특유의 활기와 정이 묻어난다. 통영에서 맛본 모든 것이 거칠고 투박했다. 되레 맛은 뭉클하고 진했다.
통영 굴 1~2월 지금이 제철
온갖 해산물 오르는 다찌집
추우면 시락국, 해장엔 우짜
당연히 이맘때 통영에는 굴 요리가 흔하다. 생으로 먹고, 밥으로 먹고, 무쳐 먹고, 전으로도 부쳐 먹고, 온갖 요리에 굴이 들어간다. 굴 전문점도 흔하다. 통영 굴 수협에서 추천한 집은 통영세관 옆 ‘통영미가’. 굴 요리 코스(2인 5만원)를 주문했다. 굴을 담뿍 넣은 미역국과 굴밥에 생굴·굴무침·굴전·굴탕수육 등이 딸려 나왔다. 묵은 백김치에 싸 먹은 생굴이 유독 향긋했다.
가장 화려한 술판
‘서서 마신다’는 뜻의 일본어 ‘다치노미(立飮)’에서 유래했다지만, 지금의 ‘다찌집’ 문화를 만든 건 통영 사람이다. 뱃일 마친 어부를 상대하던 통영 술집의 남다른 영업 전략이 술 문화로 자리 잡은 게다. 술을 시킬 때마다 새 안주가 딸려 나왔으니, 술꾼 입장에선 천국이었을 터. 호기롭게 “한 병 더”를 외칠 때마다 술상은 더 화려해졌다.
통영의 다찌집은 이제 술꾼보다 관광객이 더 많이 찾는다. 술상에도 변화가 생겼다. 예전엔 술 단위로 주문을 받았지만, 이젠 마산의 ‘통술집’처럼 인원 수에 맞춘 한 상 차림으로 나오는 집이 더 많다. 술보다 안주가 더 궁금한 관광객이 많아지면서 운영방식이 바뀌었다. 덕분에 가격이 껑충 뛰었다. 안주 포함 소주 3병에 3만원꼴 하던 기본상이, 이제는 9만원(2~3인)꼴이다. 안주의 가짓수와 양이 확실히 늘었지만, 가격 부담이 적지 않다.
통영의 소울푸드
‘국물이 끓어 넘쳐도 모르는 시락국 집 눈먼 솥이 왁자하였다/ 시락국을 훌훌 떠먹는 오목한 입들이 왁자하였다’
-안도현 ‘통영 서호시장 시락국’ 중
서호시장은 통영에서 가장 먼저 하루가 시작되는 곳이다. 새벽 시장에 나선 상인의 아침을 책임지는 음식이 시락국이다. 시장통에 시락국을 내는 집이 네댓 개 있는데 모두 오전 4~5시면 문을 연다.
충무김밥의 추억
팔도 어디에나 널린 게 김밥집이지만, 김밥거리는 통영에만 있다. 강구안과 중앙시장 사이 통영해안로가 충무김밥거리인데, ‘원조’ ‘할매’ ‘3대’ 등의 문구를 내건 김밥집 17개가 줄줄이 늘어서 있다.
김밥과 반찬을 따로 내는 충무김밥은 81년 5월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열린 ‘국풍81’ 행사 때 널리 알려졌다. 강구안에서 밥장사를 하던 어두리 할머니가 행사에서 통영식 김밥을 선보인 뒤 인기가 급부상했다. 당시 통영의 지명이 충무였기에 자연히 ‘충무김밥’으로 세상에 각인됐다.
충무김밥의 역사는 사실 더 뿌리 깊다. 40년대부터 부산~여수를 오가는 승객을 상대로 통영 할매들이 뱃머리에서 팔던 음식이다. 처음엔 김밥 안에 속을 넣어 말았는데 밥이 빨리 상해 버려 김밥 따로 반찬 따로 팔기 시작했단다. 여러 시행착오 끝에 매콤한 양념의 주꾸미(또는 오징어) 무침과, 무섞박지가 김밥의 짝으로 자리 잡았다. 삶은 계란과 사이다가 기차 여행의 필수였듯, 바다로 나설 땐 충무김밥이 먼저였다.
꿀빵에는 꿀이 없다
강구안 앞은 한 집 걸러 김밥집 아니면 꿀빵집이다.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요즘은 맛 연구도 활발하다. 팥앙금만 넣는 것이 전통 방식이지만, 요즘은 고구마·치즈·딸기·호박 등 첨가물이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항남동의 ‘오미사꿀빵’이 통영식 꿀빵의 원조로 통한다. 63년 길가에 탁자 두 개를 놓고 빵을 팔았던 게 시작이다. 당연히 간판도 없었다. 한참 뒤 단골이 부르던 대로 ‘오미사꿀빵’이 정식 이름이 됐단다. “빵집 옆에 ‘오미사’라는 세탁소가 있어서 모두들 그렇게 불렀다”고 정숙남(60) 대표가 회상했다.
오미사꿀빵은 다른 집 꿀빵에 비해 더 바삭하고 고소한 편이다. “일일이 손으로 반죽하고, 두 번 기름에 튀기는 게 단순하지만 중요한 비법”이라고 했다. 오미사꿀빵은 ‘당일 생산 전량 소비’가 원칙이다. 오전 8시 빵을 만들기 시작해, 보통 오후 4시면 빵이 동난다. 주말엔 좀 더 서둘러야 꿀빵을 맛볼 수 있다. 10개들이 1팩 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