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독일의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1815~1898)가 남긴 이 말을 지난 23일 국회 본회의에서 실감했다는 이들이 많다. 국회법 해석을 총동원해 여야는 ‘묘수’와 ‘꼼수’를 오갔다. 이날 문희상 국회의장은 물론 여야가 아전인수(我田引水)격으로 활용한 ‘국회의 기술’은 다음과 같다.
지난 23일 국회 본회의에서 '공직선거법 개정안'의 상정 순서를 변경하기 위해 더불어민주당이 제출한 '의사일정 변경동의안'을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항의하고 있는 가운데 문희상 국회의장이 가결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법 77조에 따르면 의장은 의원 20명 이상의 연서에 의한 동의(動議·회의 중에 토의할 안건을 제안)로 본회의 의결이 있을 때 안건을 추가하거나 순서를 변경할 수 있다. 4+1 소속 156명 의원은 서명을 통해 ‘의사일정 변경 동의의 건’을 제출했다. (※민주당은 소속 의원들의 혼선을 방지하기 위해 이날 본회의를 통과한 모든 수정 안건의 대표발의자로 원내 입법부대표인 윤후덕 의원을 내세웠다.)
이들은 “특정 정당이 국민적 여망을 무시하고,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정당 간 대화와 협상을 일체 거부한 채 맹목적 반대와 철회 주장만을 일삼고 있다”며 “여야 정당과 정치그룹들이 오랜 논의를 거쳐 합의한 선거제도 개혁안 처리를 더는 미룰 수 없는 현실”이라고 주장했다. 한국당은 토론 기회도 가질 수 없었다. 국회법 같은 조항에 ‘의원의 동의에 대해서는 토론 없이 표결한다’고 규정돼 있어서다. 의사일정 변경 동의의 건은 한국당의 반발 속, 재석 156인 중 153인의 찬성으로 가결됐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지난 23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증권거래세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에 대한 수정안을 가결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당 원내 관계자는 “한국당이 저렇게 나오는데 우리라고 가만히 있었겠느냐”고 했다. 의안 접수를 담당하는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의안과 앞에서 기다렸다. 마지막 순간에 수정안을 제출하기 위해서였다. 민주당 안(案)이 가장 먼저 표결될 수 있게 한 계책(計策)이었다.
문 의장은 수정안 제안 설명을 각 의석에 설치된 단말기에 띄우는 것으로 대체하고는 토론 종결을 선언했다. 곧바로 마지막에 제출된 민주당 안에 대한 표결에 들어갔다. 민주당의 전술을 뒤늦게 간파한 한국당은 4번째 안건 주세법부터는 이미 제출한 수정안을 철회하고 다시 제출하려고 했지만, 선거법이 끼어들면서 수정안을 둘러싼 ‘눈치싸움’도 종료됐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지난 23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회기결정의 건에 대한 필리버스터를 인정해달라는 자유한국당 주호영 의원에게 하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반대토론을 신청한 주호영 한국당 의원은 정해진 토론 시간인 5분을 넘겨 필리버스터(filibuster·무제한 토론)를 시도했지만, 마이크가 꺼지면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한국당은 예산안과 예산부수법안에 대해서만 필리버스터를 제한한 국회법 106조의 2(무제한 토론의 실시 등)를 들며 회기결정의 건에 대한 필리버스터를 주장했지만, 문 의장은 “이건 필리버스터가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같은 국회법 조항을 두고 양측은 해석이 달랐다. 한국당은 필리버스터 대상을 ‘본회의에 부의된 안건’으로 규정한 대목에 주목했지만, 문 의장과 민주당은 ‘무제한 토론을 실시하는 중에 해당 회기가 끝나는 경우’라는 규정을 들어 “필리버스터는 회기 성립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문 의장 등의 해석대로 ‘회기 결정의 건’에 대한 필리버스터 없이 표결이 진행돼 재석 157인 중 150인의 찬성으로 회기결정이 국회 문턱을 넘었다. 민주당 ‘쪼개기 국회’도 첫발을 뗐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