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별세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평소 이렇게 강조했다고 한다. 대우세계경영연구회 최윤권 위원이 전한 김 전 회장의 평소 모습이다. 김 전 회장은 세계를 누빈 경영인답게 삶의 마지막도 구질구질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최 위원은 “2005년 회장님이 베트남에서 귀국한 후 ‘사람이 태어나서 세상에 이름 석 자를 남기고, 흔적을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최 위원은 흔적을 ‘족적’이라고 설명했다.
[신성식의 레츠 고 9988]
가족들이 평소 뜻 존중해 서명
인공호흡기·심폐소생술 안해
병원 사망자 24%가 존엄사 선택
“한국의 죽음 문화 바뀌기 시작”
연명의료란 심폐소생술·혈액투석·체외생명유지술(에크모)·수혈,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혈압상승제 투여 등의 7가지 의료 행위를 말한다. 담당 의사가 환자의 최선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할 필요가 있다고 의학적으로 판단하는 시술도 해당한다. 임종 단계에 접어든 환자에게 죽음의 시기를 연장하는 불필요한 행위를 하지 말자는 것이다. 김 전 회장은 상태가 악화했을 때 인공호흡기를 부착하거나 마지막 순간에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 눈을 감았다. 연명의료를 아예 시작하지 않은 ‘연명의료 유보’에 해당한다.
매달 5000명 증가, 지난달 7만5333명
의사가 김 전 회장이 임종 단계에 접어든 사실을 확인하고(임종 과정에 있다는 판단), 가족 합의를 확인한 뒤 연명의료를 유보했다. 이 모든 절차가 법대로 진행됐다. 지난해 2월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된 덕분에 별다른 논란이 일지 않았다. 김명희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원장 직무대리는 “본인이 원하면 연명의료를 할 수 있는 경제적 여건을 갖췄는데도 그리하지 않았다. 자기 삶을 자기 의지대로 살고 간 것”이라며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의무)를 실천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전 회장처럼 연명의료를 거부하고 존엄사를 택하는 사람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2월 제도를 시행한 뒤 다음달 1380명이 됐고, 그 해 7월 1만명을 넘었다. 매달 4000~5000명 증가해 지난달 7만5333명으로 늘었다. 지난달 기준으로 남자가 4만5243명, 여자가 3만90명이다. 70세 이상이 59%를 차지한다. 젊은 환자도 적지 않다. 29세 이하 876명, 30대 1101명이다. 연명의료 중단 유형 중 환자 가족의 전원 합의가 34%로 가장 많다. 연명의료에 대해 환자의 평소 생각이 뭔지 잘 몰라서 자식과 배우자가 전원 합의해서 결정한 것이다. 아직 부모와 임종 관련 대화를 나누기 불편한 한국적 상황을 반영한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연명의료계획서를 활용하는 사람이 꾸준히 늘고 있는 점이다. 환자가 의료진의 설명을 충분히 듣고 의사가 작성한 연명의료계획서에 서명하는 제도다. 지난달 기준으로 존엄사 이행자의 33%를 차지한다.
“암 아닌 환자는 아직 포기 쉽지 않은듯”
허대석 교수는 “연명의료 중단 제도를 시행한 지 2년이 채 안 됐는데, 병원 사망자의 4분의 1 정도가 연명의료를 거부한 것은 매우 의미가 있다”면서 “김 전 회장의 선택에서 보듯 한국의 죽음 문화가 바뀌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특히 연명의료 거부의 10% 정도가 인공호흡기를 달았다가 뗀 경우인데, 우리 임종 문화를 고려할 때 호흡기 제거는 대단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허 교수는 “암 환자의 연명의료 유보나 중단은 어느 정도 정착돼 가는 것 같다. 암이 아닌 질환을 가진 임종환자가 연명의료를 포기하기는 아직 쉽지 않은 것 같다. 이런 부분으로 논의를 넓힐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