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 만능주의 그만 <하>
정부는 내년 예산안에서 ‘저소득층 마스크 보급’에 574억원을 책정했다. 올해 추경 예산(194억원)보다 380억원 늘렸다. 저소득층 246만 명에게 1인당 연간 50매씩 돌아간다.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은 “도움이 필요한 계층에 미세먼지 마스크를 나눠주는 데 동의한다”면서도 “제대로 따져보지 않고 늘린 포퓰리즘 예산이 불요불급한 데 쓰이면서 현장 곳곳에서 ‘재정 소화불량’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로당 등에 넘치는데 380억 증액
“국민 이해 얻기 쉬워 대폭 늘렸다”
야당 “저소득층 돕는 건 좋지만
제대로 수요 안 따지고 재정 남발”
2배 넘게 늘어난 ‘소부장’ 예산
새로운 곳보다는 주던 곳 재탕
일자리 예산도 실업 지원이 많아
‘재정 파수꾼’ 역할을 맡은 국회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8개 상임위원회가 제출한 예산안 예비심사 보고서를 보면 기획재정위원회를 제외한 7개 상임위에서 지출 요구액이 정부 안보다 되레 늘었다. 국토교통위원회가 2조3192억원,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가 3조4374억원을 늘리는 등 8개 상임위가 요구한 지출 증감액 총합계가 8조2858억원에 달한다.
예산 들여 경유차 폐차 지원했는데 60% 넘게 다시 샀다
미세먼지 예산의 핵심은 노후 경유차 조기 폐차 관련 예산(2896억원)이다. 미세먼지를 많이 배출하는 낡은 경유차를 줄이자는 취지다. 하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환경부가 올 4월 노후 경유차 폐차 보조금을 받은 461명을 설문한 결과 폐차 후 새 차를 산 61.5%, 중고차를 산 62.3%가 다시 경유차를 샀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폐차 보조금이 오히려 경유차 구매비를 보조하는 식으로 예산이 새고 있다”고 말했다.
집행 실적도 낮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노후 경유차 조기 폐차와 배출가스저감장치(DPF) 부착, 건설기계 엔진 교체 등 배출가스저감사업은 올 8월 말 기준 실적 달성률이 모두 50% 미만으로 나타났다. 제철소·화학 공장이 밀집한 인천시 서구 공업지대에 자리 잡은 한 ‘1급 종합정비소’의 이모(56) 대표는 “지난해 중순부터 DPF 부착을 해왔지만 중장비 엔진을 교체한 건 세 번뿐”이라고 털어놨다.
핵심 소재·부품·장비를 국산화하는 명목으로 편성한 일명 ‘소부장’ 예산은 ‘극일(克日)’ 여론을 등에 업고 추진했다. 지난해 8000억원에서 2조1000억원 규모로 두 배 이상 늘렸다. 이 중 1조3000억원이 연구개발(R&D) 예산이다. 그러나 새로운 내용보다 지원 규모를 늘리는 데 초점을 맞춰 ‘재탕’이 대부분이다.
정승환 예산정책처 과장은 “2016~2018년 종료한 소재부품 기술사업 241개 과제 중 실제 사업화에 성공한 과제는 17개(7.1%)에 불과했다”며 “대학 연구실에서 개발한 기술을 상용화 가능한 단계뿐 아니라 기업이 가진 기술을 양산 단계로 발전시키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내년 일자리 예산(25조7697억원) 가운데서는 실업소득 유지·지원(10조3609억원)이 가장 많다. 실직자의 임금을 보전하는 데 들어가는 돈이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일자리 예산 대부분은 사실상 복지 예산으로 ‘반짝 효과’에 그칠 수 있다”며 “민간에서 투자·고용을 유발하는 쪽으로 일자리 예산을 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김기환·허정원 기자 khk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