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검사의 응원 “총장님, 힘센 쪽 붙어 편한 길 가시지 왜…”

중앙일보

입력 2019.10.01 00:04

수정 2019.10.01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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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교수의 검찰 소환을 취재하려는 기자 들이 30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현관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총장님, 힘센 쪽에 붙어서 편한 길 가시지 그러셨습니까.”
 
30일 오전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에 “총장님, 왜 그러셨습니까!”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게시자는 평검사인 인천지검 부천지청 소속 장진영(40·사법연수원 36기) 검사다. 그는 A4 용지 4장 분량의 글을 통해 조국 법무부 장관 의혹을 수사하는 윤석열 검찰총장을 응원했다. 반어법과 풍자를 통해서다. 28일 서초동에서 검찰 수사를 규탄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린 이후 검찰 내부에서 나온 첫 반응이다.

검찰 내부망에 반어법 도발 글
“눈치껏 했으면 역적 안 됐을 것
조국은 검찰개혁 초능력 있나”
현직 검사들 “속 시원하다” 공감

장 검사는 “총장님 왜 그러셨습니까”라고 물으며 “임명권자로부터 이리 엄청난 신임을 받아 총장까지 됐는데 그 의중을 잘 헤아려 눈치껏 수사했으면 이리 역적 취급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고 썼다. 조 장관에 대해 수사를 한다는 이유로 윤 총장을 공격하는 정부·여당을 비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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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또 윤 총장에게 “지난 정권 때도 정권 눈치 살피지 않고 국정원 댓글 수사하다가 여러 고초를 겪었으면서 또 그 어려운 길을 가려는 이유가 무엇이냐”고도 했다.  
 
장 검사는 윤 총장이 야당인 자유한국당과 내통한다는 여당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윤 총장을 향해 “아무리 정치적 이해타산을 하지 않더라도 지지율도 높고 총장을 신임하는 여당과 내통하는 게 더 편하지 않겠냐”며 “세살배기도 힘센 사람 편에 서는 게 자기에게 유리하다는 것을 아는데 왜 그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냐”고 다그쳤다. 윤 총장에 대한 의혹이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그는 조 장관 자녀 입시부정과 사모펀드 투자 의혹에 대해서도 꼬집었다. 그는 “가진 인맥과 재력 및 교수 직위를 이용해 표창장 좀 위조한 게 사실이라고 해도 자녀 대학 좀 잘 보내려고 한 것인데 그리 큰 잘못이냐”며 “가난하고 인맥 없고 아무 직위 없는 사람들은 아무리 귀한 자녀라고 해도 밤낮으로 공부시키면서 자녀 혼자 애쓰게 할 수밖에 없겠지만”이라고 덧붙였다.


조 장관 일가의 사모펀드 투자 의혹에 대해 그는 “가진 돈이 많고 아는 정보가 많아 사모펀드 같은 곳에 투자해서 쉽게 돈 불리면 어떠냐”고 비꼬았다. 그는 “투자할 돈도 없고 사모펀드가 뭔지도 모르고 아는 정보가 없는 사람들은 밤낮 힘들게 일만 하면서 얼마 되지도 않는 월급으로 자녀들 교육비·생활비·집세 등으로 간신히 빚만 지지 않으면 다행이겠다”고 했다.
 
장 검사는 “직접 수사를 겪고 나서야 특수수사의 축소 내지 폐지를 주장하고 장관이라고 밝히며 수사 검사에게 전화하는 등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실현 불가능성을 제대로 보여주는데도 검찰 개혁의 가장 적임자라고 한다”며 “윤 총장이 모르는 검찰 개혁을 위한 특별한 초능력을 가졌을 수 있는데 그리 엄정하게 수사를 하느냐”고 물었다. 조 장관이 검찰 개혁의 적임자라는 일각의 주장을 풍자한 것이다. 장 검사는 글의 말미에 “후배 검사들은 살아 있는 정권 관련 수사는 절대 엄정하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신속한 수사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많은 인원을 필요로 하더라도 적당한 인원으로 제한하고 압수수색 장소도 적당히 구색 맞추어 몇 군데만 해야 하는 것을 절실히 배웠다”고 썼다.
 
이 글이 공개되면서 “속 시원하다”는 등 현직 검사들의 공감한다는 반응이 뒤따르고 있다. 조 장관 관련 수사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공개적으로 수사를 지지하는 글을 검사가 올린 건 처음이기 때문이다. 장 검사는 지난 5월 검찰 내부망을 통해 검경 수사권 조정안의 문제를 지적하며 문무일 당시 검찰총장에게 답변을 요구하기도 했다.  
 
정진호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