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초반 대학 캠퍼스는 엄혹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된 79년 10·26 사태 직후 불어온 ‘서울의 봄’은 80년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5·17 비상계엄 확대 조치로 싸늘히 식었다. 교정에는 전투경찰이 상주했고 페퍼포그(pepper fog, 시위진압용 가스차)와 철장을 두른 속칭 ‘닭장차’(경찰버스)가 수시로 출몰했다. 하지만 전두환 정권을 향한 대학생들의 저항은 더욱 거세졌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참상을 접한 80년대 학번들은 유신체제에 항거했던 70년대 학번들에 비해 질과 양적인 측면에 크게 발전했다. 대학마다 지하 이념 써클이 생겼고『러시아 혁명사』『세계철학사』『전환시대의 논리』『해방전후사의 인식』 등의 책을 읽으면서 사상 무장에 나섰다. 80년대 초반 ‘독재 타도’ ‘민주주의 쟁취’에 머물던 시위 구호는 80년대 중반부터 ‘반미·반파쇼·자주통일’로 확대됐다.
청년기에 민주화 이끈 ‘승리의 세대’
역사적 경험 공유하며 동질감 형성
다른 세대서 찾기 힘든 고유 특성 있어
선악의 이분법적 사고 경향 강해
공적 책임감 강하지만 과잉정치화
권위주의 독재 정부에 맞서 부분적으로나마 승리를 쟁취한 80년대 학번, 60년대생들이 30대 나이가 됐을 때 이들에겐 ‘386세대’라는 칭호가 붙었다. 많은 학자는 “386세대는 다른 세대에서는 일반화하기 힘든 그들만의 집단적 사고방식, 세대적 특성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386세대를 분석한 책 『중년의 사회학』 저자인 정성호 강원대 사회학과 교수는 “386세대는 시대적 산물”이라며 “다른 세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고유한 특성을 많이 지니고 있다”고 분석했다. 서울대 73학번인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전 민노당 정책위의장)는 “당시 대학을 다니지 않은 60년대생들도 대학에 다니며 경험했던 사람들의 사고방식, 세계관 등을 공유하는 것 같다”며 “내 연배나 지금 청년 세대들이 보기에 매우 특이하다”고 말했다. 386세대가 공유하는 사고방식, 고유한 특성은 무엇일까.
①“우리가 독재를 끝냈다” … 낙관적 진보주의
하지만 ‘승리의 경험’은 약이자 독이 됐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성균관대 90학번, 총학생회장 출신)은 “승리의 경험은 386세대, 특히 386 운동권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이라며 “독재 정권을 끝냈다는 특출한 경험 때문에 계속해서 자기 집단화되고 자기 최면에 걸렸다”고 지적했다.
②“우리가 대학 다닐 때는 말이야”…집단주의와 선민의식
『386의 꿈, 그 성찰의 이유』를 쓴 최홍재 신문명연대 대표는 “386세대 사이에는 자신들이 독재를 무너뜨렸다는 동질감이 작용하고 있다”며 “이런 동질감이 민주화 이후에도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는 집단주의 이데올로기를 형성했다”고 말했다. 주대환 대표는 “특히 정치권 386은 누구든 데려와서 ‘택군(擇君 : 군주를 선택)’ 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진 집단”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정치를 고사했던 문재인 대통령을 끌어낼 수 있었던 것도 바로 민주당 내 386의 집단적 힘”이라고 말했다.
선민의식 역시 이런 역사적 경험에서 비롯됐다. 정치컨설팅 회사인 폴리컴의 박동원 대표는 “운동권 출신 386들은 민주화된 세상을 우리가 만들었다, 우리 아니면 국가를 이끌어가지 못한다는 선민의식이 지나치게 강하다”며 “국회건, 청와대건 정치 상층부를 돌아가며 장악하는 것도 인력 풀(pool)은 좁은데 선민의식으로 똘똘 뭉쳐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③“우리는 선, 너희는 악”…진영 논리와 이분법적 사고
강원택 교수도 “386세대는 모든 것을 선악 구조로 나눠 이분법적 사고를 하는 특징이 있다”며 “하지만 현대사회, 현대정치에서는 이념의 차이가 있는 것이지 선과 악이 있는 게 아니다. 이런 이분법적 사고가 386세대의 한계”라고 지적했다.
④“반미, 반제, 자주”…감성적 민족주의
386세대의 이 같은 민족주의적 특성은 지금까지도 강하게 남아있다. 문재인 정부의 유화적 대북정책과 대일 강경외교도 여권 386그룹의 민족주의 성향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홍세화 전 진보신당 대표는 “정부는 한·일 관계의 위기 대응에 소홀했던 과오를 인정하고 관계 복원을 위해 노력하는 대신 관제 민족주의를 동원해 맞서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진성준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전북대 85학번, 부총학생회장 출신)은 “배타적 국수주의로 흘러가는 것은 경계해야겠지만, 386세대에는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과 똑같은 비중으로 민족주의가 자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⑤탈 인습적 가치관
탐사보도팀=김태윤·최현주·현일훈·손국희·정진우·문현경 기자 pin2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