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일본의 대(對) 한국 수출 규제를 총괄하는 스가와라잇슈(菅原一秀) 신임 경제산업성 장관은 이날 임명 직후 “수출 규제가 WTO 위반이란 한국 측 주장은 전혀 맞지 않다”고 맞섰다. 지난 7월 4일 일본의 선공(先攻)으로 시작해 두 달 넘게 주고받은 공방이 국제 무역전으로 본격화하는 모양새다. 일본에 맞설 한국의 전략과 전망을 전문가를 통해 들어봤다.
먼저 주목할 건 싸움의 무대가 WTO란 점이다.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자유 무역을 옹호하고 불공정한 세계 무역질서를 바로잡는 게 WTO 설립 근거지만 무조건 취지에 따르는 건 아니다”며 “WTO는 최근 들어 환경 보호라든지, 안보 문제 같은 국가별 ‘정책 주권’을 균형 있게 고려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원칙론만 들이민다고 해서 반드시 먹히는 건 아니란 얘기다.
하지만 한국은 일본에 유독 강한 면모를 보여왔다. 이번 분쟁에서 한국 정부가 승소를 자신하는 이유도 지금까지 WTO에서 쌓은 승전 경험이 있어서다. 한국이 2004년 일본의 김 수입 쿼터제 철폐를 요구하며 WTO에 제소한 사건은 일본이 2006년 한국산 김 수입을 대폭 늘리기로 하면서 제소를 취하했다. 일본이 하이닉스 반도체에 27.2% 관세를 부과하면서 불거진 분쟁은 2009년 WTO가 한국 손을 들어주면서 일본이 관세를 철폐했다. 지난 4월에는 후쿠시마 주변 수산물 수입을 금지한 한국 조치에 대해 WTO 상소 기구가 한국 손을 들어줬다. 일본이 승소한 1심 판정을 뒤엎은 쾌거였다.
지난 10일엔 한국이 일본산 공기압 밸브에 매긴 반덤핑 관세에 대해 일본이 제소한 건에서 상소 기구가 9개 쟁점 중 8개에 대해 한국 승소 판정을 내렸다. 이 건에 대해 일본 정부는 부분 승소를 부각해 “일본이 승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후쿠시마 수산물 관련 분쟁을 총괄한 김승호 산업통상자원부 신통상질서전략실장은 “일본은 굉장히 성실하고 꼼꼼하게 준비하지만, 예상외 시나리오에 대한 반격에 허술한 면도 있다”며 “한국은 상대적으로 순발력과 유연성이 강한 강점이 있다”고 말했다.
이번 WTO 한ㆍ일전에서 정부가 ‘급소’로 공략해야 할 규정은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ㆍWTO의 전신) 11조다. 회원국을 대상으로 수출입 수량의 제한을 금지하는 내용이다. WTO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한 법률가는 “아르헨티나가 드러내놓고 한국 자동차 수출을 제한하지 않는 대신 자국 농산물을 사도록 하는 계약을 맺은 데 대해 수출을 제한한 효과가 있다고 WTO가 판단한 사례가 있다”며 “현재 일본도 수출을 당장 금지하거나 대놓고 제한하는 건 아니라서 이번 분쟁에서 중요한 참고 선례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단판 승부’가 될 가능성도 있어 1심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WTO 분쟁 해결은 1ㆍ2심 구조인데 상소심을 맡은 상소 위원 3명 중 2명이 올해 12월 퇴임하는 ‘변수’가 생겼다. WTO 사정에 정통한 한 로스쿨 교수는 “미국이 상소 위원 선임을 거부하고 있어 2심 자체가 구성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며 “1심 결과에 한ㆍ일 양국이 승복할 경우, 한쪽이 거부하더라도 1심 판결이 그대로 확정될 경우, 상소 기구를 대체할 임시 기구가 2심을 맡는 경우를 예상할 수 있어 1심이 더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