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맥 힙합 덫에 빠진 ‘쇼미8’…이제 그만할 때가 된 걸까

중앙일보

입력 2019.09.1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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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미더머니8’에서 디스 배틀을 벌이고 있는 윤비와 영비. [사진 Mnet]

한국 힙합은 ‘쇼미더머니’(쇼미)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2년 Mnet에서 정통 힙합 서바이벌을 표방한 ‘쇼미’가 시작된 이후 힙합은 더이상 마니아층만 찾아 듣는 장르가 아닌 전 연령대가 함께 소비하는 대중음악이 됐기 때문이다. 가사 속 비속어와 혐오 발언이 난무하는 탓에 모든 사람에게 환영받진 못했지만 허세 돋는 ‘스웨그(swag)’는 비단 힙합뿐 아니라 대중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키워드가 됐다.
 
하지만 지난 7월 시작한 ‘쇼미더머니8’은 영 맥을 못 추고 있다. 2015년 시즌 4에서 최고 시청률 3.5%(닐슨코리아 기준)를 기록한 이후 줄곧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는 시청률(1.6%)은 차치하더라도 영향력도 예전만 못하다. 굿데이터코퍼레이션 화제성 조사 결과에서 1, 2위를 다툰다 해도 ‘인맥 힙합’을 비판하는 부정적 여론이 대다수다.

시청률도, 화제성도 예전 시즌만 못해
차트 줄세우기는 옛말…진입도 어려워
가사 틀려도 합격…편파 심사 논란도

새로운 음원이 출시됐다 하면 차트 줄 세우기를 하던 것도 모두 옛날얘기가 됐다. 지난 시즌 음원 미션을 통해 공개된 ‘굿 데이’가 첫날 차트 정상을 차지하고, 시즌 6에서는 ‘N분의 1’ ‘요즘것들’이 1위 경쟁을 하던 것과 달리 올해는 ‘쇼미’ 음원을 찾아보기 힘들다. 우디고차일드ㆍ최엘비ㆍ서동현ㆍ영비ㆍ칠린호미가 함께 부른 ‘바다’가 40위권에 올라 체면치레를 했을 뿐이다.
 

역대 최다 지원자? 새 얼굴 찾기 힘들어

‘쇼미더머니8’에 프로듀서로 출연 중인 스윙스. 인맥 힙합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사진 Mnet]

이번 시즌의 흥행 실패는 예견된 결과이기도 하다. 2009년 시작한 ‘슈퍼스타K’ 역시 ‘슈퍼스타K 2016’으로 마무리했던 것처럼 여덟 번째 시즌은 오디션 프로그램이 넘어서기 힘든 ‘마의 구간’이기 때문이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아는 Mnet은 지난해 ‘쇼미더머니777(트리플세븐)’으로 명명하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마치 마지막 시즌이 될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기며 나플라ㆍ루피 등 그간 한 번도 ‘쇼미’에 참가하지 않았던 래퍼들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올해는 재출연자들이 대거 올라오면서 타쿠와ㆍ서동현 등 처음 보는 얼굴이 더 드물 정도. 1만 6000명이 지원해 역대 최다 참가 인원을 경신했음에도 인맥 힙합에 대한 비난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특히 시즌 2 참가자로 시작해 세 시즌(3, 7, 8)째 프로듀서로 출연하고 있는 스윙스는 그 중심에 있는 인물이다. 


그가 수장으로 있는 레이블 인디고뮤직·저스트뮤직·위더플럭 소속 가수들이 대거 출연한 것. 인디고뮤직 소속 키드밀리는 스윙스와 같은 팀 프로듀서로, 저스트뮤직 소속 기리보이는 상대 팀 프로듀서로 나와 팀별 정체성이 모호하다. 통상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이들이 팀을 이뤄 프로듀서로 출연한 것과도 대조적이다. 시즌3부터 5년간 고수해온 4팀 체제에서 2팀 체제로 돌아간 것을 두고 “프로듀서 섭외에 실패한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쇼미더머니8’에 참가한 윤훼이. 두 차례나 가사 실수를 했지만 합격해 논란이 일었다. [사진 Mnet]

게다가 이번 시즌에서 논쟁을 불러일으킨 참가자들은 모두 스윙스와 직간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인디고뮤직 소속 영비는 ‘고등래퍼1’에서 우승을 차지한 실력파지만 학교 폭력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 잇단 가사 실수에도 합격한 윤훼이, 일대일 경연에서 패했지만 패자부활전으로 돌아온 릴타치도 위더플럭 소속이다. 여기에 기리보이가 이끄는 우주비행의 김승민과 최엘비까지 살아남았으니 편파성 논란이 제기될 수밖에. 각종 논란에 대해 스윙스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절대 인맥 때문에 합격한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이는 결국 고스란히 디스전의 소재가 됐다. 윤비는 선도부 옷을 입고 나와 영비를 향해 “네가 괴롭히던 애가 아냐”라고 공격했고, 펀치넬로는 파란색 가발을 쓰고 나와 “한 번만 다시 가볼게요”라며 윤훼이의 가사 실수를 흉내 냈다. 김윤하 음악평론가는 “시즌제 프로그램 특성상 시즌 5의 비와이 같은 새로운 스타가 탄생하지 않으면 주목을 끌기 힘들다”며 “‘쇼미’는 다른 오디션과 달리 힙합신을 조명할 수 있는 것이 강점이었는데 출연자가 계속 반복되면서 완벽하게 고인 물이 되어버렸다”고 지적했다.
 

인맥 앞세워도 잡음 없는 ‘사인히어’ 주목

지난달 시작한 힙합 오디션 ‘사인히어’의 박재범. 우승자는 AOMG와 3년간 계약한다. [사진 MBN]

이런 상황에서 지난달 시작한 MBN ‘사인히어’가 되려 주목받고 있다. 박재범ㆍ사이먼 도미닉ㆍ그레이ㆍ코드 쿤스트 등 프로듀서로 출연하거나 시즌6에서 3위를 한 우원재 등 ‘쇼미’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을 가진 이들이지만 우승 특전으로 AOMG 입사를 내걸면서 차별화를 꾀했다. ‘건반 위의 하이에나’에 출연한 로꼬를 통해 AOMG와 인연을 맺은 남성현 PD가 MBN 자회사인 스페이스 래빗으로 이적 후 처음 선보이는 프로그램이다.  
 
심사위원 5명이 전부 한 회사 소속으로 인맥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오히려 잡음은 없는 편이다. 랩ㆍ보컬은 물론 프로듀싱까지 가능한 사람을 뽑다 보니 소금ㆍ니화 등 다른 힙합 프로그램이면 절대 찾아보기 힘들 출연자들이 대거 등장한다. 무대 도중 사인을 누르는 것 외에도 거미ㆍ양동근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는 특별 심사위원 9인을 섭외해 개별 점수를 매기고 최종 합산한 점수에 따라 승패를 결정한 것도 공정성을 높이는 데 한몫했다.    
 

‘사인히어’ 2라운드에서 팀을 이룬 마독스와 니화. ‘쇼미’와는 결이 다른 무대를 선보인다. [사진 MBN]

IT 회사 콘텐츠 마케터로 재직 중인 안승배씨는 “‘쇼미’가 현역 래퍼들이 겨루는 각축장으로서 경쟁적 요소를 부각하기 위해 악마의 편집을 서슴지 않는다면, ‘사인히어’는 AOMG에 필요한 사람을 뽑는 동시에 대중을 설득해야 하므로 개별 아티스트를 최대한 보여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힙합 레이블로서는 첫 시도여서 시청률은 다소 낮지만 랩 이외에도 힙합이 가진 다양한 매력을 보여줌으로써 장르 팬을 확대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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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