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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적 영국사회 BTS에 깜짝 놀라…‘대안적 남성상’ 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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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지난 6월 1일 영국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공연하고 있는 방탄소년단. [사진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지난 6월 1일 영국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공연하고 있는 방탄소년단. [사진 빅히트엔터테인먼트]

공부하는 ‘덕후’들이 모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26~28일 서울 삼성동 슈피겐홀에서 열리는 ‘BTS 인사이트 포럼’은 그 해답을 엿볼 수 있는 자리다. 사흘간 무대에 오르는 연사 30여명의 면면도 다양하다. 이탈리아에서 온 20대 유튜버 안젤라부터 70대인 진영선 고려대 디자인조형학부 명예교수까지 방탄소년단(BTS)을 좋아하는 ‘아미’라는 것을 제외하면 전혀 공통분모가 없는 독특한 조합이다. 다루는 분야 역시 인문학ㆍ미디어ㆍ마케팅ㆍ디자인 등 광범위하게 퍼져 나간다.

영국 킹스턴대 콜레트 발메인 교수 #‘BTS 인사이트 포럼’ 연사로 첫 방한 #“인문학·마케팅 등 다각도 연구 흥미” #내년 1월 런던서 ‘BTS 콘퍼런스’ 준비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영국 킹스턴대 영화·미디어학부의 콜레트 발메인(57) 교수. 2008년 『일본 호러 영화 입문서』를 시작으로 『월드 시네마 디렉터리: 한국 편』(2013), 『한국 스크린 컬처』(2016) 등 저서 4권과 공저 6권 등을 쓴 한국영화 전문가이자 내년 1월 4~5일 영국에서 열리는 ‘BTS 콘퍼런스’를 준비 중인 학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10년 넘게 한국 대중문화를 연구했는데 이제야 처음 와보게 됐다”며 “인천공항에 입국할 때부터 BTS 면세점 광고가 맞아줘서 반가웠다. 영화에서 많이 봐서 그런지 거리도 친근한 느낌”이라며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남자는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 타파

영국 킹스턴대 콜레트 발메인 교수. 26~28일 서울에서 열리는 ‘BTS 인사이트 포럼’에 연사로 참석한다. 내년 1월 런던에서 BTS 콘퍼런스를 준비 중이다. 우상조 기자

영국 킹스턴대 콜레트 발메인 교수. 26~28일 서울에서 열리는 ‘BTS 인사이트 포럼’에 연사로 참석한다. 내년 1월 런던에서 BTS 콘퍼런스를 준비 중이다. 우상조 기자

포럼엔 어떻게 참가하게 됐나.  
“지난 6월 영국 웸블리 공연에서 『BTS 예술혁명』의 저자 이지영씨 소개로 기획자 김영미씨를 만났다. 음악뿐만 아니라 다양한 관점을 통해 BTS 현상을 분석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내년 1월 런던서 열리는 콘퍼런스에도 이들을 비롯한 다양한 학자를 초청하기 위해 논문을 수집 중이다. 좀 더 학술적인 행사가 되겠지만, BTS가 지역과 언어뿐 아니라 여러 종류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젠더 문제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고.  
“BTS의 남성성은 K팝 내에서도 매우 독특하게 발현되고 있다. ‘마초적 남성성’이 아닌 ‘사내아이 감수성’에 가깝다. 그들은 모두 20대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소년기에 머무르는 콘셉트를 종종 차용한다. 앞서 서양에서 주목받은 한국 가수 비, 싸이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그것이 지니는 의미는.  
“‘대안적 남성성’을 통해 긍정적 롤모델을 제시할 수 있다. 문화권에 따라 전통적 성 역할을 강요받기 마련인데 정답이 없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것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팬들과 활발하게 소통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남자는 감정을 드러내면 안 된다는 선입견을 깨는 것이다. ‘미투 운동’ 이후 유해한 남성성에 대한 대안으로서도 시의적절하다.”

“‘게이팝’ 비난은 문화적 오해서 비롯”

방탄소년단 콘서트를 앞두고 런던 피카딜리 서커스 전광판 앞에 모인 팬들의 모습. [사진 트위터]

방탄소년단 콘서트를 앞두고 런던 피카딜리 서커스 전광판 앞에 모인 팬들의 모습. [사진 트위터]

발메인은 “영국은 어떤 측면에서는 한국보다 보수적인 사회”라고 밝혔다. 서양이 동양보다 개방적일 것이라는 통념과 달리 전통적 가치에 반하는 것에 대한 차별의 벽이 공고하단 얘기다. “유치원 때부터 성소수자(LGBT)에 대해서 가르치지만 실제 그들의 삶은 녹록지 않다. 인종ㆍ계급 등 모든 소수자가 마찬가지”라며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젊은이들에게 BTS의 ‘자신을 사랑하라(Love Yourself)’는 메시지는 소구력이 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일부에서는 예쁘장한 외모와 옷차림으로 무장한 K팝 보이그룹을 ‘게이팝’이라고 조롱하기도 한다. 멤버들 사이의 거리낌 없는 스킨십도 공격 대상이 됐다. 그는 “그것이야말로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생겨나는 오해”이자 “대중문화에서 더 많은 롤모델이 필요한 이유”라고 강조했다. “음악은 항상 앞장서서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역할을 해 왔잖아요. 현실을 반영해야 하는 영화나 드라마보다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고, 젊은 청중들과 만나 소통하다 보니 더 자유롭고 유연하죠.”

한국형 스릴러 영화의 매력을 해외에 전파한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 [사진 CJ엔터테인먼트]

한국형 스릴러 영화의 매력을 해외에 전파한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 [사진 CJ엔터테인먼트]

그의 관심사가 영화에서 음악으로 옮겨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리니치대에서 이탈리아 호러 영화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링’(1998) ‘오디션’(1999) 등을 접하며 일본 호러 영화에 매료됐고, ‘살인의 추억’ ‘올드보이’(2003) 등을 보며 한국식 스릴러에 빠져들었다. 2016년 10월 미디어 기호학 수업을 위해 유튜브에서 자료를 찾던 중 ‘보이 미츠 이블(Boy Meets Evil)’ ‘피 땀 눈물’ 등 뮤직비디오를 보고 BTS에 ‘입덕’했다.

“장르 간 경계 허물어져 한류 더 확대될 것”

“미디어 속에 등장하는 텍스트를 해석하고 가르치는 입장에서 뮤직비디오는 훌륭한 학습 자료예요. 5분 안팎의 분량으로 짧지만 많은 것들이 내포돼 있으니까요. 문학적으로는『데미안』에서 모티브를 얻었지만, 초능력이나 호러 영화의 영상 문법도 혼용돼 있습니다. 한국 콘텐트에는 서브 텍스트가 많이 깔려 있기 때문에 표면만 봐서는 제대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제 경우엔 일본 문화에 대한 선행 연구가 큰 도움이 됐죠.”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제작된 드라마 ‘킹덤’. 한국형 좀비물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 [사진 넷플릭스]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제작된 드라마 ‘킹덤’. 한국형 좀비물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 [사진 넷플릭스]

그는 “장르 간 경계가 허무는 크로스오버가 한류 확대에 기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2006년 런던 한국영화제가 처음 시작됐을 때 한국 대중문화의 영향력이 이렇게 빨리 커질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어요. 일본은 애니메이션ㆍ게임 등 다양한 분야로 관심이 확산돼 가고 있었지만 한국은 영화밖에 없었거든요. 2011년 샤이니가 런던한국영화제에서 공연 할 때 몰려든 관중을 보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한국 영화 팬층과는 전혀 달랐으니까요.”

아이돌 출신 배우들이 늘어나고, 영화와 드라마 간 협업이 활발해지면서 한류 소비층의 외연도 확장됐다는 분석이다. “이제 기존 한국 영화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넷플릭스의 ‘킹덤’을 보고, 한국 음악을 들어본 적 없던 사람들도 BTS를 이야기해요.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고.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들은 다른 언어를 배울 필요성이 없었는데 원어로 콘텐트를 즐기는 데 관심을 갖게 된 거죠. 지금의 현상이 어떻게 발전돼 나갈지 한국 문화의 오랜 팬이자 학자로서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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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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