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사태, 윤석열이 먼저 움직였다

중앙일보

입력 2019.08.28 00:07

수정 2019.08.28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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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27일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와 관련한 각종 의혹과 관련해 고려대와 단국대, 공주대, 부산대 등을 전격 압수수색하며 강제수사에 돌입 했다. 이날 오후 윤석열 검찰총장(오른쪽)이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구내식당에서 점심식사를 마친 뒤 집무실로 돌아가고 있다. [연합뉴스]

짧게는 추석 민심, 길게는 내년 총선의 향배까지도 가를지 모르는 이른바 ‘조국 국면’에 윤석열 변수가 등장했다. 청와대는 “검찰 수사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 것이 관례”라고 했고, 더불어민주당은 “인사청문회를 앞둔 시점에 압수수색이 진행돼 유감”, 자유한국당은 “조국 후보자에 대한 사법적 단죄가 시작됐다”며 각각 공식 입장을 내놨지만, 향후 어디로 튈지 쉽게 내다볼 수 없는 안갯속 국면이 시작됐다.
 
그만큼 27일 단행한 검찰의 압수수색은 급작스러웠다. 조 후보자와 관련돼 의혹이 제기됐던 서울대와 부산대·고려대·금융감독원 등 20여 곳을 동시다발로 들이닥쳤다. 검찰이 인사청문회도 하지 않은 공직 후보자, 특히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 수사하는 초유의 일이다. 후보자 또는 그의 가족을 혐의 인정이 유력해 보이는 피의자로 검찰이 판단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대검찰청 검찰개혁위원 출신인 김종민 변호사는 27일 페이스북에 “압수수색은 피의자로 입건돼야 하고, 조국이나 조국 가족이 피의자로 입건됐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적었다. 야권에선 당장 “법무부에 소속된 검사들이 법률자문을 하고 방어 논리를 개발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김경진 무소속 의원)는 주장이 나온다. 법무부의 인사청문회 준비단의 활동을 문제삼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가운데 조 후보자의 5촌 조카 등 사모펀드 의혹과 관련한 핵심 인사 3명이 최근 해외로 출국했다고 검찰 관계자가 이날 밝혔다.

검찰, 서울대 등 20여 곳 압수수색
법무장관 청문회 전 이례적 수사
윤석열 변수 돌출 ‘안갯속 정국’
조국 “수사로 의혹 밝혀지길 희망”
조국 5촌 조카 등 셋 돌연 출국

검찰은 압수수색을 시작한 뒤에야 법무부에 관련 사실을 알렸다. 정치권에선 여야 할 것 없이 “뉴스를 보고 알았다”고 하는데, 여당에는 “이해찬 대표도 몰랐던 것 같다”는 말이 공공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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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의 반응도 대체로 “전혀 몰랐다. 당혹스럽다”는 쪽이다. 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검찰 ‘핫라인’을 끊었다는 게 청와대의 공식 입장이다. 현 정부 첫 정무수석이던 전병헌 전 의원에 대한 검찰 수사 때도 당시 조국 민정수석은 “뉴스를 보고 알았다”고 했었다. 이날도 압수수색 소식이 전해진 후 하루 종일 대책회의를 해야 했다는 전언이 있다. 하지만 일각에선 ‘윤석열의 사람’으로 불리는 민정수석 산하 박형철 반부패비서관은 사전에 알았을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보고라인인 김조원 민정수석이나 노영민 비서실장도 인지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더라도 청와대가 개입했을 가능성은 작다. 현 청와대 민정 라인에 검찰 출신 인사는 박 비서관이 유일하다.
 
‘검찰의 개입’으로 2일과 3일 이틀간의 청문회로 승부를 보려던 여권의 구상은 흐트러졌다. 일각에선 지난해 정치권을 달궜던 김기식 전 금감원장 때와 ‘데칼코마니’라는 얘기도 나온다.  
 
법조계 “압수수색, 조국·가족 피의자 의미” 야권 “법무부 검사가 조국 방어는 부적절” 


지난해 3월 문 대통령은 참여연대 출신의 김기식 전 의원을 금융감독원장에 임명했다. 청문회가 필요 없는 자리지만 취임 직후부터 5000만원 셀프 후원, 피감기관 외유 출장 논란이 불거졌다. 이때 청와대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위법하다고 판단을 내리면 사퇴시키겠다”는 일종의 승부수를 던졌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여권 관계자는 “당시 청와대는 내심 ‘문제없다’는 결론을 예상했지만, 인적 구성이 우호적이지 않던 선관위가 ‘셀프 후원은 위법’이라는 예상 밖 판단을 내렸다”고 전했다.
 
이번엔 청와대가 의도했다고 보이진 않는다. 그러기엔 “검찰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양날의 칼”(정치권 인사)이기 때문이다. 여기엔 검찰총장인 ‘윤석열’이란 캐릭터도 중요하다. 윤 총장을 대중의 뇌리에 각인시킨 것은 2013년 10월 국회 국정감사 때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고 했던 말이다. 이런 그를 향해 여권에선 “야당에서 ‘코드 인사’라지만 우리도 두렵다. 우리 말도 잘 안 듣는 진짜 원칙주의자”(민주당 우상호 의원)라고 평가한다. 조 후보자도 서울대 교수로 ‘자연인’이던 2013년 10월 21일, 자신의 트위터에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윤석열 검사의 오늘 발언, 두고두고 내 마음속에 남을 것 같다”고 썼다.
 
검찰은 이날 압수수색 배경에 대해 “자료 확보가 늦어지면 객관적 사실관계를 확인하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원칙적인 언급이지만, 검찰 안팎에선 압수수색 주체가 서울 중앙지검 특수2부라는 점에 주목한다. 애초 중앙지검 형사1부에 배당됐던 게 재배당됐다. 고형곤 특수2부장은 윤 총장이 총대를 멨던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수사 때, 이화여대 부정입학 의혹을 받던 정유라씨 관련 사건을 처리하며 주목을 받았던 인물이다.
 
‘일단 청문회는 넘기고 보자’던 여권은 수사에 착수했단 사실만으로도 마뜩잖아 하는 분위기다. 통상 수개월이 걸리는 수사의 특성상 조 후보자가 법무부 장관 신분으로 포토라인에 서는 장면이 연출될 수도 있다. 친문 핵심으로 분류되는 한 의원은 “인사를 검찰이 하려고 하는 것 아닌가. 당장은 어쩔 수 없지만 검찰 개혁에 저항하려는 듯한 움직임이 없는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무혐의 처분이 나오더라도 뒷말이 쏟아질 게 뻔하다.
 
한편 조 후보자는 이날 오후 인사청문회준비팀 사무실에 출근하며 “검찰 수사를 통해 모든 의혹이 밝혀지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또 “진실이 아닌 의혹만으로 법무·검찰 개혁에 차질이 있어선 안 된다. 끝까지 청문회 준비를 성실히 하겠다”고도 했다.
 
권호·유성운 기자 gnom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