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 폭행이 체벌이라고? '사랑의 매' 때리는 자의 논리

중앙일보

입력 2019.08.0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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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전새벽의 시집읽기(40)

반려견을 폭행하는 방송을 해 논란이 된 유튜버. 거센 비난이 일자 그는 '학대가 아니라 체벌'이었다고 해명했다. [사진 pixabay]

 
최근에 한 유튜버가 자신의 채널을 통해 공개사과를 했다. 그는 방송에서 반려견을 학대하고 폭행했다는 이유로 거센 비난을 받아온 사람이다. 그러나 사과에서 진정성을 느낀 네티즌은 많지 않아 보인다. 그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학대가 아니라 체벌’이었다며 오히려 악플을 단 네티즌들을 고소하겠다는 입장을 취했기 때문일 것이다.
 
학대가 아니라 체벌이라니, 그 둘은 무엇이 다를까. 아동 인권 연구가이자 문체부의 차관보인 김희경에 따르면 둘 사이엔 차이가 없다. 그녀는 저서 『이상한 정상가족(동아시아, 2017)』을 통해 소위 ‘사랑의 매’라는 것은 때리는 사람의 논리이지, 맞는 사람의 논리가 아니라며 체벌이란 이름의 폭력을 강도 높게 비판한 바 있다.
 

동물학대자의 동물 입양, 법적으로 못 막아 

한편 이번 사건을 놓고 화제가 되는 것은 현행 동물보호법에 관한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현행법으로는 동물학대자의 동물 소유권 박탈 또는 제한을 할 수가 없다.
 
이번에 사과한 유튜버는 반려견 소유포기 각서를 썼고 해당 반려견은 보호단체에 의해 구조됐지만, 앞으로 그가 다시 동물을 입양한다고 하면 법적으로 제재가 불가능하다. 동물보호를 어떻게, 어디까지 하면 좋을지 생각이 필요한 시점이다.


인권과 동물의 권리엔 어떤 차등을 두어야 할까. 만일 두 개를 똑같이 중요한 문제로 봐야 한다면, 거기에는 어떤 근거가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하다 보니 떠오르는 시가 있다.
 

인간과 동물의 권리는 어떻게 보아야할까. 시인은 염소와의 교감을 통해 살아있는 것들은 모두 하나라는 진리를 본다. [중앙포토]

더 맛있어 보이는 풀을 들고
풀을 뜯고 있는 염소를 꼬신다
그저 그놈을 만져보고 싶고
그놈의 눈을 들여다보고 싶어서.
그 살가죽의 촉감, 그 눈을 통해 나는
나의 자연으로 돌아간다.
무슨 充溢이 논둑을 넘어 흐른다.
동물들은 그렇게 한없이
나를 끌어당긴다.
저절로 끌려간다
나의 자연으로.
무슨 충일이 논둑을 넘어 흐른다
-정현종,「나의 자연으로」 전문. 시집『한 꽃송이(문학과지성사, 1991)』에 수록.
 

염소 어루만지며 느끼는 자연과의 합일 

시인이 염소에게 다가가는 이유는 하나다. 교감하고 싶어서다. 살가죽을 만지고 눈을 들여다보는 것을 통해 그는 염소와 교감한다. 그 교감을 통해 그는 개체의 개별성과 독립성을 넘어 살아 있는 것들은 모두 하나라는 진리를 본다.
 
이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발견이기도 하다. 그것을 발견한 자의 마음은 기쁨과 환희로 흘러넘친다. 그가 말하는 충일(充溢,) 즉 가득 차 흘러넘침이란 바로 그러한 기쁨의 홍수를 일컫는 것일 게다. 자신이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깨달은 시인, 그는 이제 자연을 함부로 대하는 일이 없으리라.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로 시작하는 시 ‘방문객’으로 널리 알려진 시인 정현종은 1939년에 태어나 연세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했고, 1965년에 시인이 되었다. 그는 유년시절을 보냈던 경기도의 화전에서 자연과 친해졌고, 자연은 그의 시 세계의 근간이 된다. 그가 말하는 자연이란 이런 것이다.
 

온기를 머금은 새 생명을 손에 쥔 시인. 달걀 하나 쥐고 자연을 만난다. [중앙포토]



하산하면서 들르는 냉면집
총각이 방금 낳았다면서
달걀을 하나 내게 쥐어준다 햇빛 속에서

이런 선물을 받다니-

따뜻한 달걀,
마음은 찰랑대는데
그걸 손에 쥐고 내려온다
새로 낳은 달걀,
따뜻한 온기
생명의 이 신성감,
우주를 손에 쥔 나는
거룩하구나
지금처럼 내 발걸음을 땅이
떠받든 때도 없거니!
-정현종,「새로 낳은 달걀」 전문. 시집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문학과지성사, 2018)』에 수록.
 
온기를 머금은 새 생명을 손에 쥔 시인, 가히 우주와 합일의 경지에 이른다. 달걀 하나 쥐고 거룩 운운하다니, 지나친 호들갑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폭력이 너무 많은 이 세상에는 꼭 필요한 호들갑일 것이다.
 
전새벽 회사원·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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