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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요하지 않고 홀린다, 신형철의 남다른 문학 추천법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전새벽의 시집읽기(37)

최근 고깃집에서 돼지의 목숨은 돼지 것이라며 시위한 사람이 화제였다. 그에게 여러 비판이 쏟아졌는데, 그의 시위를 일종의 강요로 느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진은 2018년 세계 채식주의자의 날을 기념해 인도에서 채식주의자들이 '육식은 살인이다'라는 팻말을 들고 시위하는 모습. [EPA=연합뉴스]

최근 고깃집에서 돼지의 목숨은 돼지 것이라며 시위한 사람이 화제였다. 그에게 여러 비판이 쏟아졌는데, 그의 시위를 일종의 강요로 느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진은 2018년 세계 채식주의자의 날을 기념해 인도에서 채식주의자들이 '육식은 살인이다'라는 팻말을 들고 시위하는 모습. [EPA=연합뉴스]

얼마 전 트위터를 통해 공개된 한 영상이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었다. “음식이 아니라 폭력입니다”라는 팻말을 든 사람이 고깃집에 들어가 “돼지의 목숨은 돼지의 것이며 삶의 결정권은 그들에게 있습니다”라며 시위를 한 것이다. 아마 동물 보호라는 명분 아래 채식을 추천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관련 댓글 중에는 ‘동의할 수 없다’라는 의견이 많다. 다양한 비판 중에 “당신의 시위 자체가 하나의 폭력”이라는 의견이 눈에 띈다.

이 소식을 접하니 문득 얼마 전에 길에서 본 풍경이 떠오른다. 휴대용 스피커를 목에 둘러메고 “회개하라!”를 부르짖는 사람을 보며 행인들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필자도 마찬가지로 불쾌했다. 가끔 길에서 물티슈를 나눠 주며 “교회 한 번 나오세요”라고 말하는 어르신에게는 크게 반감이랄 것까진 없었다. 스피커를 메고 고성방가를 일삼는 사람 앞에서는 아무래도 짜증이 났다. 아마 전자가 ‘추천합니다’ 정도의 수준인데 반해 후자는 강요로 변질했기 때문일 거다.

2018년 미국의 영화감독 사라 코랑겔로가 연출한 영화 '나의 작은 시인에게'는 추천이 강요가 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잘 보여준다. 주인공 리사는 유치원 교사이자 시인 지망생이다. 비록 시 쓰기 재능은 형편없지만 그녀는 시를 정말 마음 깊이 사랑한다. 시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건 저급하다고 생각할 정도다.

그러던 어느 날, 리사는 자신의 학생 지미가 시 쓰기에 천재적인 재능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녀는 지미의 재능을 개발하고 싶어하지만 주변 사람의 반응은 냉랭하고, 그럴수록 그녀는 점점 지미에게 광기 어린 집착을 보인다.

영화는 “시 쓰기는 고결하고 나머지는 다 시시해”라는 사고를 가진 한 인물이 호인에서 ‘미저리’가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럼으로써 우리가 옳다고 믿는 것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의 위험성을 지적한다. 앞서 언급한 시위사건이나 스피커맨을 보며 이 영화가 떠오른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영화 '나의 작은 시인에게'는 시에 집착하는 유치원 교사와 시 쓰기에 재능 있는 어린 제자에 대한 내용이다. 이 영화는 추천이 강요로 변질될 때의 위험성을 보여준다. [사진 네이버 영화]

영화 '나의 작은 시인에게'는 시에 집착하는 유치원 교사와 시 쓰기에 재능 있는 어린 제자에 대한 내용이다. 이 영화는 추천이 강요로 변질될 때의 위험성을 보여준다. [사진 네이버 영화]

이쯤에서 필자도 고개 숙여 반성할 것이 있다. 바로 과거 본 코너에 게재한 한 무례한 원고에 대해서다. ‘골프 타령 그만하고 시나 좀 읽으세요, 골프는 남는 거 없으니까’라는 요지의 기가 막힌 글은 당연히 독자들의 뭇매를 맞았다.

그 중 ‘네 시선을 일반화하지 마라’는 식의 댓글이 오래 가슴에 남았다. 지당하신 말씀이다. 어찌하여 그렇게 대책 없는 글을 썼던 것인지, 오늘 다시 반성해 본다. 해당 글을 읽으며 불쾌감을 느끼셨을 독자 여러분께 이 기회를 빌려 사과드린다.

강요는 금물이라고 비로소 결심했으나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문이 있다. 대관절 추천이란 어떻게 하는 게 좋은가? 안 하면 그만이지 않느냐고 하실 분도 계실 것 같다. 하지만 좋은 것 알게 되면 주변에 알려주고 싶은 게 또 우리의 마음 아니던가. 그래서 오늘은 한 편의 시를 추천하는 대신, 추천이라는 걸 정말 잘하는 한 평론가의 이야기를 가져왔다. 그의 글을 통해 짐작건대, 그는 ‘어떻게 추천할 것인가’라는 고민에 대한 답을 잘 내린 것으로 보인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1976년에 태어나 2005년부터 평론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그는 지금 ‘스타 평론가’라고 불린다. 그만큼 그의 글을 읽은 사람은 그에게 열광한다. 그 비결이 뭔지 살펴보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말을 빌려왔다.

『씨네21』의 김혜리 기자는 신형철을 가리켜 “하나의 작품이 왜 좋은지와 어떻게 좋은지를 두루 알고 싶어하는 독자의 요구에 화답한다”고 말한다. 『한겨레』의 최재봉 문학전문 기자는 “단순히 꾸미는 문장이 아니라 핵심에 들어가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평했다. 이러한 찬사를 부르는 그의 글은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까? 백문이 불여일견. 직접 읽어 보자.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글을 읽으면 그가 다룬 작품에 호기심이 생긴다. 대놓고 추천하지 않는데, 이것이 오히려 묘하게 끌리고 관심 갖게 한다. [중앙포토]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글을 읽으면 그가 다룬 작품에 호기심이 생긴다. 대놓고 추천하지 않는데, 이것이 오히려 묘하게 끌리고 관심 갖게 한다. [중앙포토]

몰인정의 시대의 그의 시는 갸륵하다. 그의 다정(多情) 때문이다. 이조년은 “다정도 병인 양하여”라 했다. 병 맞다. 이를 다정증이라 부르려 한다. 문태준은 우리 시대의 가장 탁월한 다정증 환자다. (…) 언제 그 맥이 끊어질지 모를 이 소중한 환후(患候)를 우리는 아껴 기린다. 그는 낫지 마라. 그래야 우리가 산다.
-문태준 시인에 대한 글 중 (평론집 『느낌의 공동체』에 수록)

시가 다정하다, 그래서 읽는 사람이 위로를 받는다. 그런 얘기를 신형철은 이렇게 한다. 덕분에 마음이 푸근해졌다고 말하는 대신 ‘낫지 마라’고 말한다. 이건 계산된 호들갑이다. 호들갑을 떨지 않고는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좋다는 얘기다. 이쯤 되면 그토록 다정한 시를 쓰는 문태준이 누군지 궁금해질 법도 하다.

아니다…뭐랄까, 그는 그냥 ‘문학’이다.
-이장욱 시인에 대한 글 중 (같은 책에 수록)

신형철은 평론가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대책 없어 보이는 이러한 문장도 쓴다. ‘그냥 문학’이라니, 분석과 설명을 포기한 말투다. 하지만 이런 포기가 읽는 사람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대체 어느 정도로 굉장한 문학가이길래 평론가가 설명을 포기했을까? 이장욱이 누구길래? 이런 의문이 들었다면 독자는 이미 신형철의 수작에 걸려든 것이다. 그는 이런 식으로 사람을 홀린다. 그가 소설에 대해 말한 것도 살펴보자.

『느낌의 공동체』, 신형철 지음.

『느낌의 공동체』, 신형철 지음.

『소년이 온다』는 한강이 쓴 광주 이야기라면 읽는 쪽에서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겠다고 각오한 사람조차 휘청거리게 만든다.
-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에 대한 추천사 중

한강은 진지하고 무겁게 쓰는 작가다. 얼마나 진지하고 무거우냐면, 읽는 사람의 마음이 마구 힘들어질 정도다. 그런 사람이 광주민주화운동을 주제로 소설을 썼다고 하니 평소 한강의 스타일을 아는 독자라면 겁이 날 만도 하다. 읽으려면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신형철은 ‘그런 각오가 소용없을 만큼 이 책의 울림은 강하다’는 사실을 한 줄 문장에 담아낸다.

문학을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게 직업인 이 작가는 아는 것이 많다. 그의 평론집에 실린 방대한 책 이야기는 그가 뭔가를 추천하기 위해 얼마만큼 공부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잘 아는 사람이 얘기하니까 일단 신뢰가 간다. 게다가 그는 권위적이지 않다. 작가와 작품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고고한 척하는 대신 그는 누군가의 팬이 되어 버린다. “시인은 시만 생각하지 말고 기다리는 사람 생각도 해야 한다(『느낌의 공동체』)”며 팬심을 감추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다정하다. 문학도 인생도 그는 다정한 눈길로 훑는다. 김혜리 기자는 이런 그를 가리켜 “한국 문학의 사려 깊은 연인”이라고 표현했다. 신형철은 시뿐만 아니라 영화나 사회문제에 관해서도 쓴다. 그것들도 하나같이 밑줄을 치거나 무릎을 치게 한다. 밑줄 치고 무릎 친 대목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추천이 된다. 어느 작가의 어느 책이 좋다는 수준의 추천이 아니고, 우리네 인생이란 대저 어떤 지점을 향하는 게 좋겠다는 거대한 추천이 된다.

인생의 방향에 대해 논하다니,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가. 무릇 문학이나 영화나 사회문제나 모두 사람의 인생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는 그것을 세상과 이어주는 다리다. 한번 건너볼 텐가? 물론 강요는 않겠다. 결정은 고스란히 여러분의 몫이다.

전새벽 회사원·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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