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인상하면 경기 좋아진다 떠들더니…올해가 최악"
2018년 1월 18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카페에서 당시 장하성 대통령 정책실장(현 주중 대사)이 소상공인 간담회를 열고 소득주도성장(소주성)의 성공을 장담하며 했던 말이다. 당시 장 실장은 문재인 정부 들어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2018년도 16.4%, 2019년도 10.9% 인상)에 따른 부작용을 줄일 연착륙 대책으로 정부가 제시한 일자리안정 자금을 홍보하고 다니던 중이었다. 그러나 장 실장의 공언과 달리 소득 양극화는 심해지고 전반적 경제 상황도 더 나빠졌다. 단적으로 1분기 경제 성장률은 -0.4%로 추락했다.
당시 장 실장과 즉석 대화를 나눴던 분식집 아주머니는 "요즘에 장사가 안돼서 짜증 나 죽겠다. 사람들이 임금 올라간다고 좋아는 하겠지만, 장사가 잘돼야 임금이 올라도 마음이 편하다"며 밑바닥 민심을 여과 없이 토로해 화제가 됐다. 하지만 그 아주머니는 이미 분식집을 그만둔 것으로 확인됐다. 분식집 직원은 "청와대 사람들이 다녀간 직후인 지난해 3월쯤 (그 아주머니가) 식당을 그만뒀다. 그 후 어디로 갔는지는 모른다"고 말했다.
장 실장이 들렀던 생활용품 마트에도 가봤다. 비용 부담 때문에 알바를 못 쓰고 오전 8시부터 다음날 새벽 2시까지 부부가 교대로 근무하는 전형적인 생계형 골목 점포였다. 여주인은 "그 사람들 (장하성 실장 일행) 다녀간 뒤 매출이 더 빠져서 요즘 말도 못할 지경"이라며 울상을 지었다. 인근 부동산에 물어보니 "장사가 안되니 상가 권리금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했다.
장 실장이 '마이너스의 손'이어서 그가 다녀간 곳만 사정이 어려워진 것일까. 취재 과정에 만난 자영업자들은 한결같이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무제의 급격한 시행이 밑바닥 경제를 죽여놨다"고 성토했다. 이들의 불만이 줄기차게 제기됐지만, 정부가 소주성에 집착하고 정책을 수정하지 않자 소상공인(5인 이하, 제조·운수·광업은 10인 이하) 3만여명이 지난해 8월 29일 광화문으로 몰려나왔다. 장대비가 쏟아진 그 날 운집했던 3만여명은 "소상공인도 국민이다"라며 절규하듯 외쳤다. 건국 이후 생업에 바쁜 음식점과 수퍼마켓 주인, 이·미용사, 영세 기업 사장 등 소상공인들이 대규모로 길거리로 나온 것은 처음이었다.
경기 남부에서 오리구이 집을 운영하는 조병진(42) 사장도 당시 광화문 현장에 있었다. 그는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이후 직접 숯불을 피우고 매장에서 내가 직접 쟁반을 나르고 있다"고 했다. 최저임금을 단기간에 너무 많이 올리는 바람에 외국인(주로 중국 동포) 직원의 경우 먹여주고 재워주고 월 240만원을 줘도 사람 구하기 어렵다고 한다. 식당 경영 8년 차인 그는 "옛날에는 사장이 직원을 뽑았는데 요즘은 직원들이 매장을 둘러보고 사장을 고르려고 면접 보는 세상이 됐다. 요즘 구직자들은 '저를 채용해 주세요'가 아니라 '(사장이 나에게) 뭘 해줄 거냐'고 먼저 따진다. 하루 이틀 일하다 나가버려 일주일에 약 100명을 만난 적도 있다. 이제 사람에 지친다"고 토로했다.
반면 65세 이상 내국인 노인들은 "(최저임금보다 낮은) 월 200만원만 줘도 좋으니 일 좀 시켜달라"고 호소해도 최저임금법 처벌 조항(3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 때문에 쓸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한다. 최저임금법이 내국인 취약계층을 차별한다는 말이다. 조 사장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담을 줄이기 위해 영업시간을 하루 1시간(오전 30분, 오후 30분씩) 줄이기로 했다.
이들은 최저임금법과 시행령 일부 조항, 근로기준법 일부 조항이 헌법상 재산권, 직업의 자유, 계약의 자유, 기업활동의 자유, 신체의 자유, 근로의 권리, 과잉금지의 원칙을 위배했다고 주장했다. 헌재는 지난달 이 사건의 정식 심리에 착수했다.
헌법소원에 참여한 참치집 이옥미(53·경기도 안산시) 사장은 "소상공인은 생업에 바빠 세력을 모으기 어려워서 표를 중시하는 정치인들이 쉽게 보는 것 같다"며 "노동자 목소리는 잘도 들어주던데 소상공인은 보호받지 못해 소외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태훈 한변 상임대표(변호사)는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대한민국의 생활 터전을 허물고 있다. 저소득층 근로자들이 일을 더 하고 싶다는 데도 이를 가로막는 주 52시간제는 돌이키기 어려운 부작용을 낳고 있다"며 "17일 문 대통령의 헌법 위반 시정을 위한 청원서를 제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경기도에서 해산물 식당을 운영 중인 이은숙(54) 사장은 소상공인연합회를 통해 헌법소원에 참여한 경우다. 이 사장은 "주 15시간 이상 알바를 쓰면 주휴수당을 줘야 하는 실정이라 비용 부담이 크다"고 호소했다. 그에게 "지난 12일 최저임금위원회가 내년도 최저임금을 2.87% 인상하기로 결정했으니 이제 견딜만한 수준이냐"고 물어봤다. 이 사장은 "전혀 감당이 안 된다. 이미 너무 많이 오른 데다 매출로는 인건비조차 주기 어려운 때도 많다"고 항변했다. 그는 "다리가 퉁퉁 부어도 쉴 수 없다. 이러다 병나서 문 닫으면 어떡하나 겁이 난다"고 했다.
이처럼 한쪽에서는 소상공인들이 "더는 못 살겠다"며 헌법소원까지 내면서 대책을 호소하는데도 장하성·김수현의 자리를 이어받은 김상조 대통령 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소주성 정책 폐기나 포기는 없다고 못 박았다.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장은 "여론조사에 따르면 10인 이하 영세 사업장 근로자는 최저임금 동결을 원했는데도 (최저임금위원회가) 사용자의 지급능력을 이번에도 무시했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데 구조는커녕 머리를 짓누른다면 죽으라는 말 아니냐"고 반문했다.
헌법소원에 참여한 한 영세 기업인은 "이 정부는 제조업이든 자영업이든 경제 현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민주노총도 무리한 최저임금 요구를 접지 않으면 일본이 한국경제를 망하게 하기 전에 우리 스스로 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금이라도 정부의 '아마추어 정책 폭주'에 제동을 걸어야 하는 이유 아닐까.
장서윤 인턴기자가 이 기사의 디지털 영상 편집 작업에 참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