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정수현의 세상사 바둑 한판(29)
한창 일할 나이인 60세 언저리에 직장에서 은퇴하는 사람이 많다. 백세 시대에 60대 은퇴라면 근 40년을 놀고 지내야 한다. 이것은 인적자원의 낭비일 뿐만 아니라, 국가에 큰 부담을 주는 요인이기도 하다. 정부에서 노년층의 복지에 많은 예산을 투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에서는 70대 노인이 정부의 지원 아래 창업에 나선다. 인생의 경륜이 쌓인 시니어의 지혜를 활용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사회에 기여하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도 이런 모델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도 ‘은퇴하면 백수’라는 의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영원한 현역’ 바둑 기사들
이들 노년층 기사가 현역에서 은퇴하지 않는 것이 이상해 보일 수도 있다. 야구나 축구 등 스포츠 분야에서는 대부분 30대나 40대에 선수생활을 마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둑은 나이가 많아도 시합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현역 은퇴를 강요받지 않는다. 실제로 60대에 타이틀을 차지한 기사도 있다. 은퇴 연한이 없기 때문에 어떤 기사는 세상을 떠나는 날이 직장에서 은퇴하는 날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노장기사들은 80대이거나, 그 전에 은퇴를 한다.
이런 현실이 사회의 관행에 맞지 않는다고 해 기사의 은퇴 연한을 두자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극소수 의견이다. 바둑계에서는 시니어가 젊은 층의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보는 의식이 거의 없다. 시니어 기사는 바둑 행사의 단장이나 입회인, 협회 이사 등의 일을 하며, 시니어만의 프로기전에 참여하기도 한다. 조훈현, 서봉수 9단 등 추억이 떠올려지는 올드 스타가 있는 바둑계는 뭔가 풍성하고 푸근해 보인다.
일반 직장인은 프로기사처럼 평생 현역으로 살기가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그와 비슷한 삶을 살 수도 있다. 경제 분야에서 일하다가 은퇴를 하고 나서 현역처럼 사는 K씨가 있다. K 씨는 강연회, 독서클럽 등에 열심히 다닌다. 또한 SNS에 자신의 활동을 알리며, 대학이나 기관에서 강의도 하고 주변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기도 한다.
은퇴해도 현역처럼 사는 이 사람
직장에서 은퇴한 시니어들이 K 씨처럼 ‘평생 현역’이라는 기분으로 살아가면 좋지 않을까. 그러면 은퇴 후 갑자기 늙어버리는 폐단을 피할 수 있고, 자신만의 노하우로 사회에 이바지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활력 있는 노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정수현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