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씨는 6일 오후 6시 35분쯤 제주동부경찰서 진술녹화실에서 조사를 마친 뒤 30m 떨어진 유치장까지 걸어갔다. 전날(5일) 제주지방경찰청 신상공개위원회가 신상을 공개하기로 결정해 고씨는 마스크나 모자를 착용하지 않은 상태였지만, 고개를 푹 숙이는 바람에 머리카락이 얼굴을 뒤덮었다.
조사 뒤 모습 드러냈으나 고개 푹 숙여
'계획적으로 범행했나' 물음에 묵묵부답
앞서 전날 제주지방경찰청 신상공개심의위원회는 고씨에 대한 신상 공개를 결정했지만, 얼굴은 공개하지 않았다. 당초 고씨가 오후 조사를 받고 유치장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언론을 통해 공개될 수 있었지만, 제주 동부경찰서는 조사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시점에서 고씨가 심경 변화를 일으키면 수사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고 판단해 얼굴 공개를 6일 오후로 미뤘다. 제주경찰청이 피의자의 신상 공개를 결정한 것은 2016년 9월 17일 제주시 연동 한 성당에서 기도 중이던 60대 여성을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살해한 중국인 천궈레이(54)에 이어 두 번째다.
당초 경찰은 "신상 공개로 피의자 인권과 가족·주변인이 입을 수 있는 2차 피해 때문에 비공개를 고려했으나, 고씨의 범죄 수법이 잔인하고, 그 결과가 중대해 공공의 이익을 고려해 신상 공개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고씨는 지난달 25일 오후 제주시 한 펜션에서 전 남편인 A씨(36)를 살해한 뒤 펜션에서 시신을 훼손하고 제주~완도 바다와 전남 등 여러 장소에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고씨는 범행 전 미리 흉기와 도구 등을 구입했다. 또 휴대전화와 컴퓨터로 '살해 도구 관련 검색어', '니코틴 치사량' 등을 검색했다.
고씨는 범행 당일 펜션에서 전 남편을 살해한 뒤 시신을 차에 싣고 27일 낮 12시쯤 펜션을 빠져나왔다. 이후 범행을 숨기려는 시도가 있었다. 27일 오후 제주시 모 호텔 근처에서 이미 숨진 남편의 휴대전화를 이용해 자신의 전화에 문자를 보냈다. 경찰은 이 행동이 전 남편이 그때까지 살아 있었다는 '가짜 증거'를 만들 목적으로 보고 있다.
고씨가 제주를 떠난 건 지난달 28일이다. 이날 오후 6시 30분쯤 제주시 한 대형마트에서 종량제 봉투 30장과 캐리어 가방을 샀다. 2시간 뒤 제주항에서 전 남편 시신을 차에 싣고 완도행 여객선에 올랐다. 배에 오른 뒤 1시간 후 고씨는 훼손된 전 남편 시신이 담긴 것으로 추정되는 봉지를 바다에 버렸다. 이 모습은 배 내부 폐쇄회로TV(CCTV) 영상에 담겼다.
살해 동기와 공범 여부 등은 여전히 미스터리다. 2년 전 이혼한 두 사람은 최근 6살 난 아들 면접 교섭을 위해 접촉했다. 유족 등에 따르면 고씨에게 살해당한 A씨는 2년간 보지 못한 아들을 만날 생각에 들떠 있었다. A씨는 그동안 고씨 반대로 못 보던 아들을 최근 면접 교섭 재판을 신청해 만날 기회를 얻었다. 유족은 "(A씨가 펜션으로 가는 길에 차량) 블랙박스를 봤는데 운전하면서 '우리 아들 보러 간다'며 노래를 부르더라"고 말했다.
김준희 기자, 제주=최충일 기자 choi.choongil@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