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전쟁의 골이 깊어지면서 중국 당국이 대대적인 대미항전을 독려하고 있지만, 중국 민간에선 불안감이 엄습하고 있다. 중국 경제매체 중신경위(中新經緯)는 국가통계국 자료를 인용해 중국 31개 성시(省市)의 과일과 채소 가격이 모두 올랐다고 보도했다.
안후이(安徽)성의 경우엔 과일값이 30.9%가 뛰었다. 근본 원인은 수요 공급이 맞지 않은 것인데 여기엔 날씨 외에 미·중 무역전쟁과 위안화 절하에 대한 염려 등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됐다. 결국 미·중 무역갈등이 중국 일반인들의 생활에도 여파를 미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중국 제조업 분야 기업들의 수익성도 악화로 돌아섰다. 중국 국가통계국의 27일 발표에 따르면 중국의 4월 공업기업 이익은 5154억 위안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7% 줄었다.
분야별로 보면 미·중 무역전쟁의 여파가 크게 미치는 컴퓨터와 통신, 기타 전자제품 제조업 분야의 이익이 지난해 같은 달보다 15.3% 감소했다. 4월 소매판매 증가율도 7.2%에 그쳐 2003년 5월(4.3%) 이후 16년 만에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27일 “중국의 중산층이 미국과의 무역전쟁으로 어떤 영향을 받을지 점점 더 혼란스러워하고 걱정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대표적인 예로 30만명의 팔로워를 거느린 온라인 작가이자 인기 블로거 쑤겅성(蘇更生)의 예를 들었다. 화장품이나 화장법 추천으로 유명한 그가 소셜미디어인 웨이보에 “무역전쟁의 영향이 나처럼 평범한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려달라”는 글을 올리자 순식간에 수천 건의 댓글과 1만여 건의 공유 표시가 달렸다.
그러자 중국 당국은 “관련 법률과 규칙을 위반했다”며 댓글을 차단했다. 통제받지 않는 댓글이 민심 악화로 이어질까 우려한 것이다. 대신 중국에선 “무역전쟁의 여파는 미미하다” “미국과 맞서 싸우자”는 관제 독려만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무역전쟁이 실제로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알기 위해 외국에 거주하는 고객과 자주 SNS를 통해 대화하고 있다”는 중국 광둥성 거주 상인의 말이 나온다. 그는 “비상시에 대비해 미 달러와 일본 엔화 등 현금을 일정량 보유하는 걸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SCMP에 털어놓았다.
SCMP에 따르면 상하이에서 광고업에 종사하는 올해 30세로 두 살짜리 딸을 가진 옌차오는 승용차 구매를 포기했다. 미·중 무역전쟁 악화로 중국 경제 상황이 불투명하기 때문이란 이유에서다.
궈수칭은 “중국 국내소비가 경제성장의 중요 동력”이라며 “미국으로 수출하던 제품이 내수에도 알맞다”고 주장했지만, 중국 소비자는 일단 지갑을 닫고 추이를 지켜보자는 계산이다.
중국 부유층은 이미 구체적인 재산 보호조치에 들어간 모양새다. SCMP는 광둥성 광저우에서 중국 부유층의 자산관리를 돕는 리전뱌오의 말을 인용해 “일부 부유층이 재산을 지키기 위해 홍콩으로 가 골드바 구매에 나서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인의 불안감은 현재 크게 두 가지에 기인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는 치솟는 물가다. 지난 4월 중국의 식료품 가격은 돼지고기와 과일 가격이 급등하며 평균 6.1% 포인트 상승했다.
두 번째는 편향된 정보다. 중국 당국은 관방 언론을 통해 “아무 문제 없다”고 하면서도 “미국과 끝까지 싸우자”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환구시보는 28일 사설을 통해 “미국이 중국의 돈뿐 아니라 목숨까지 노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중무역전쟁과 관련해 중국 당국의 일방적인 논리만 보일 뿐 학계나 언론계 어디에서든 다른 목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철저한 통제의 결과다. 그런 통제가 민심의 안정을 가져오기보다는 더 많은 소문을 양산하며 중국인의 우려를 키우고 있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you.sangchul@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