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울음 때문에 말을 끝맺지 못했다. 그의 생각을 추적해 봤다. 다음은 그가 지난해 9월 ‘오마이뉴스’에 쓴 글의 일부다. 이만큼 청년 문제를 잘 정리한 글도 드물다.
고용·삶 패러다임 바뀌었는데
정부 정책은 한 세대 전 ‘버전’
잘 모르겠으면 듣기라도 해야
요약하면, 지금 이 나라 어른들은 청년들이 취업하면 사회의 ‘건전한 일원’이 되고, 이에 따라 가정을 꾸리고 자산을 형성해 ‘정상적 삶’을 영위하게 된다고 믿으며, 그래서 청년 대책은 일자리 늘리기·만들기로 귀결되는데, 이것은 완전히 잘못된 인식이라는 주장이다. 그의 말에서 틀린 부분을 찾지 못했다. 지금의 50대 이상이 가졌던 ‘평생직장’ 개념은 20여 년 전 외환위기 때 허물어졌다. 정부가 무엇을 하든 결코 ‘안정적’ 일자리는 늘지 않을 것이다. 있는 자리도 인공지능(AI)이나 로봇으로 하나둘 대체될 판이다. 급여를 기반으로 집 장만을 할 수 있는 이는 극히 소수일 것이다.
이처럼 세상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그런데 여전히 좋은 대학 가서, 좋은 일자리 구하면, 좋은 미래 맞이할 것처럼 어른들은 말한다. 정부 정책도 이런 한 세대 전 ‘버전’ 속에 있다.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없고, 특목·자사고를 없애니 마니, 정시 확대가 옳으니 아니니를 놓고 따진다. 일자리 정책은 공무원 늘리고, 정규직 전환 독려하는 게 거의 전부다. 주거 문제, 청년들이 보기엔 ‘노답’에 가깝다. 아버지가 집 세 채 가진 고위 공무원이 아니고, 부자 고모가 조카를 끔찍이 아끼지 않는다면 각자도생 외에는 길이 없다. 지난해 가상화폐 열풍과 요즘 유튜버 바람은 이런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다.
해법 찾기 어렵다는 것, 청년들도 모를 리 없다. 백악관으로 청년들 자주 부르고, 외국에 갈 때마다 현지 청년들과 ‘타운홀 미팅’을 가졌고, 퇴임 뒤 청년 문제 해결에 뛰어든 천하의 버락 오바마도 답을 못 내놨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잃지 말자며 ‘예스, 위 캔!’을 함께 외쳤을 뿐이다.
엄씨가 말한 것처럼 청년들이 바라는 것은 당장의 해결이 아니다. 정부의 관심, 함께 고민하는 자세다. 국가도 노력하고 있다는 데서 위안을 얻을 수 있고, 대화 속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발견할 수도 있다. 최소한 뭔가를 하려 한다는 믿음이라도 준다. 임명된 지 5개월 된 청와대 사회수석비서관이 엄씨가 눈물 흘린 그 자리에서 “청년 정책을 내가 맡고 있으니 앞으로 자주 소통하자”고 했다. 전국청년정책네트워크 대표인 엄씨는 ‘청년계’에서는 널리 알려진 활동가다. 그래서 초청도 받았을 것이다. 청와대 담당 수석의 말이 정부와 청년의 단절 실상을 보여준다.
이낙연 총리는 1년 반 전에 청년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의 아버지 세대가 살던 주거보다 지금 주거가 좋다. 나는 처음 내 방을 가져본 게 제대 후다. 너무 안정만 희구하지 말라는 뜻으로 하는 말이다.” 이러니 울지 않을 수 있겠나. 인생 선배들이여, 못나게 눈물을 보였다고 나무라지 말라. 벽에 대고 얘기하는 것 같아서, 가슴에서 올라온 뜨거운 것이 목에 걸려서 울어본 적 없는가.
이상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