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한국 외교 <중>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기지는 아직도 시위대가 봉쇄하고 있다. 발전기용 연료는 물론 근무 교대자도 헬기로 실어나르고 있다. 이를 가급적 빨리 해결해 주길 바란다”는 취지로 요청했다. 정 장관은 이에 “지금은 일반환경영향평가를 마치는 게 중요하다”는 원론적 답변을 했다고 한다.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북한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관리 주체에서 유엔군사령부를 배제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문제도 직접 거론했다. 그는 “JSA는 유엔사의 기능, 권한과 관련 있어 양보할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정 장관은 역시 “(남북한·유엔사 3자가) 계속 논의 중”이라고만 했다고 한다. 정부 소식통은 “업무를 막 파악한 에이브럼스 사령관이 양국의 중요 사안을 직접 꺼내 들었지만 정 장관은 원론적 답변을 내놨다”고 말했다.
국방부 “동맹 굳건” 강조하지만
남북 9·19 군사합의 뒤 마찰음
매티스처럼 이견 좁힐 ‘가교’ 없어
주한미군 감축론으로 번질 우려
한·미 군사동맹의 마찰음은 지난해 9·19 군사합의 때 불거졌다. 한국이 미국과 사전에 충분히 협의하지 않은 채 북한과 합의한 뒤 이를 사후에 통보했다며 미국 측이 불쾌해했다. 특히 비무장지대(DMZ) 일대의 비행금지 구역 설정은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으로 떠나기 이틀 전인 지난해 9월 16일께에야 미국 측이 알았다. 당시 펜타곤(미 국방부)의 당국자는 한국 측에 “그럼 다음(the second round)은 뭐냐”고 반문했다고 한다. ‘미국이 다음으로 놀랄 일은 뭐냐’는 비아냥 섞인 표현이었다.
한·미 군사동맹은 향후가 더 걱정거리다. 공교롭게도 지난해 말 제임스 매티스 전 미 국방장관, 빈센트 브룩스 전 연합사령관과 같은 지한파가 함께 물러나면서다. 사드 배치를 둘러싼 한·미 간 물밑 이견도 이들의 노력 덕분에 큰 잡음이 나오지 않았다는 게 군 안팎의 평가다. 무엇보다 군사동맹을 중요시 않는 트럼프 대통령이 있기 때문에 한·미 군사동맹 내부의 잡음은 언제든지 주한미군 감축 또는 철수론으로 번질 수 있는 상황이다.
이철재·이유정 기자 seaja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