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영재(미강요) 作 : 청화백자운용문호 270 x 200mm [사진 광주백토사랑추진위]
광주 백토로 재현한 조선 백자
현재 남한산성 아트홀에는 ‘광주 흙으로 빚은 도자의 美’라는 주제로 운룡문 항아리를 포함해 50여점이 전시 중이다. 15명의 광주 도예인들이 최근 빚은 작품들이다. 백자병은 정갈하면서 소박하다. 목이 잘록하지 않고 몸통은 둥그스름하다. 은은한 흰 빛을 머금고 있다. 벽화 수(壽) 작품은 크기가 가로 8m x 세로 1.6m에 이른다. 네모난 90장의 도판이 이어져 전체를 이룬다. 흙색 위로 핀 흰 연꽃의 대비로 생명감을 불어 넣는다. 이번 전시는 오는 19일까지 1주일간이다.
심정섭(일송요) 作 : 백자병 210 x 370mm [사진 광주백토사랑추진위]
박상진(개천요) 作 : 벽화 수(壽) 8000 x 1600mm 중 일부작 [사진 광주백토사랑추진위]
1884년 분원 폐지 후 자취 감춘 백토
하지만 1884년 분원의 폐지 이후 한동안 조선백자의 맥이 끊겼고, 광주 백토 역시 채굴이 이뤄지지 않았다. 광주 백토는 문헌에만 존재하는 흙이었다. 현대 도예인들은 주로 수입산 백토에 의존해왔다고 한다. 양구에서 백토가 생산되기는 하지만 소량이라서다. 그러던 중 경강선 광주역 주변으로 36만3000㎡ 규모의 역세권 개발사업이 이뤄지던 2017년 우연히 하얀 흙이 발견됐다. 전 토지주 S씨를 통해서다.
경기도 광주역세권개발 현장에서 발견된 백토. [사진 광주백토사랑추진위]
백토 구성 광물인 카올린 확인
지역 도예인들은 흥분감을 감추지 못했다. 왕실 도자 본고장인 광주 흙(백토)으로 옛 명성을 재현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서다. 박상진(무형문화재) 분청사기장은 당장 시험 제작에 나섰고, 결과는 놀라웠다. 박 사기장은 “가마 안에서도 흔들림 없이 불을 견디더라”며 “은은한 빛을 내는 백자가 되는 것이다”고 말했다. 조선시대 청화백자운룡문호를 재현한 미강 노영재 선생 역시 “흙의 힘이 좋아 성형할 때 모양이 처지지 않는다”며 “수입산 백토보다 색이 밝은 점도 특징이다”고 말했다.
박상진 분청사기장이 경기도 광주 백토로 빚은 청화백자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민욱 기자
"역세권 개발부지 20만t 이상 매장 추정"
박상진 사기장은 “그동안 국내 도예인들 사이에서는 수입산 백토로 백자를 빚는 게 과연 옳으냐는 회의감이 들었던 게 사실”이라며 “광주 백토는 보물이다. 조선왕실 도자기를 우리 땅의 흙으로 재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세계를 놀라게 할 기회다”고 말했다.
경기도 광주 남한산성 아트홀에서 열린 '광주 흙으로 빚은 도자의 美' 전시회 모습. [사진 경기도 광주시]
하지만 현재 역세권 개발에 밀려 정확한 매장량 조사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백토를 처음 발견한 S씨는 “백토 생산지로 알려진 강원 양구는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여념이 없는데 광주는 개발사업으로 사토(죽은 흙)가 될 위기에 처해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경기도 광주=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