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멧돼지가? 밤이 오자 산 속 집은 무서웠다

중앙일보

입력 2019.02.05 08:00

SNS로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더,오래] 한순의 시골 반 도시 반(2)

삼십 대 초반부터 책을 만들기 시작해 편집자 생활 30여 년이 되어갈 무렵 막연히 시골로 가고 싶다는 몸과 마음의 소리를 들었다. 붓고 있던 생명보험을 해약해 경기도 양평 골짜기에 땅을 사 아틀리에를 짓고 시골 반, 도시 반 생활을 시작했다. 문을 나서면서부터 지출을 해야 하는 도시생활과 돼지고기 1근이면 푸성귀를 뜯어 풍요로운 며칠을 지낼 수 있는 시골 생활을 소개한다. 책을 만들면서 이데아와 관념이 커진 머리와 한없이 굼떠진 몸이 부딪히는 시골 생활, 활자로 구축된 세상과 이름 모르는 꽃이 깨우쳐주는 우주의 울림을 통해 삶을 통찰하는 이야기를 전한다. <편집자>

 
나는 단련되고 있는가? 회색 바탕에 파란색 줄무늬가 있는 가방을 꺼낸다. 남편 속옷 한 벌, 내 속옷 한 벌, 양말과 수건 두 장을 넣고 집에서 먹던 반찬 중 덜어갈 것이 있나 살펴본다. 매주 금요일 오전이면 벌어지는 풍경이다. 그 와중에 회사에서 걸려오는 전화와 문자 메시지, 책의 판매 수량을 헤아리며 커피까지 마시고 있다. 일상은 내가 이곳, 지금 사는 곳에 그대로 있어야 할 타당성이 담처럼 둘러싸고 있다.
 
큰아이가 중요한 시험이 있고, 마감하는 책의 마지막 과정을 한 번 더 봐주고 싶은 마음이 있고, 날씨는 춥고, 내가 좋아하는 선생님의 병문안도 가봐야 하는데 자꾸 미루어지고 있다. 남편도 나도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는 함구무언이다. 우선 짐을 꾸리고 시골집으로 가는 일이 먼저다. 우리를 잔뜩 잡아당기는 집을 나서서 차 문을 탁 닫는 순간, 관성과의 싸움에서 간신히 벗어났다는 느낌이 든다.
 

일상의 관성에서 간신히 벗어났을 때 한 걸음 물러나 나와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다. 시골집에 고요히 앉아 겨울나무 빈 가지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많은 문제들이 자명하고 단순해진다. [사진 한순]

 
어느 정도 서울을 벗어나면 집에서 싸 온 커피와 종이컵을 꺼낸다. 남편과 나는 마치 승리의 축배를 들듯 커피를 마신다. 그리고 그제야 떠나기 전까지 우리를 잡아당기던 일상의 문제들과 마음의 갈등에 관해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오른쪽 창밖으로 보이는 두물머리 푸른빛 산 능선들과 강물에 반사되는 산 그림자는 흔들리는 직사각형 데칼코마니 같다. 산의 능선을 그대로 강물에 찍고 싶은 산의 의지에 강물은 유유히 흐르며 산의 능선을 조심스럽게 흔들고 있다. 나는 흐르고 있는가.
 
시골에 집을 짓기 전에 우리는 양평 증동리 산 중턱에 월세 20만 원짜리 집을 얻어 2년 가까이 주말 시골 생활을 해보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막연히 시골로 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지, 왜 시골로 가려 하는지, 어떠한 삶을 원하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한적하고 깨끗한 시골 단독주택을 싼값에 구하는 일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웠다.


또한 우리가 시골로 들어간다 하더라도 농사지을 체력도 없고 농법도 모르고, 시골 분들이 귀하게 여기는 땅에 잡초가 무성할 것은 뻔한 사실이었다. 이러저러한 여건과 상황들을 고려하다 보니 집을 구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그런데 이런 사정을 알고 있던 ‘소통 교육 트레이닝’에서 만난 선배가 “한순 씨가 딱 좋아할 만한 집이 있다”고 알려왔다. 우리는 한달음에 차를 타고 달려갔다. 그곳은 아담한 초등학교 운동장에 오래된 느티나무가 늘어서 있는 작고 평화로운 마을 끝자락 언덕 위에 있는 집이었다. 마을 도로를 따라 평지가 끝나는 지점에서 산속 언덕으로 100미터가량 올라간 숲속에 오도카니 집 한 채가 있었다.
 
다른 때 같으면 너무 외져 무섭다고 했을 텐데, 이날은 그 집이 눈에 쏙 들어왔다. 나는 그 집을 얻겠다고 남편에게 말했다. 시골에 집을 얻기 위해 이곳저곳을 헤매던 차라 남편도 어물쩍 이끌려 그 집을 계약하였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다시 그 집을 찾아가 봤을 때는 그 집을 처음 만났던 설렘 대신 샌드위치 패널로 지은 집에 사람이 살지 않은 흔적까지 꾀죄죄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이미 배는 띄워졌고 어찌어찌 우선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짐만 챙겨 이사하게 되었다. 트럭 한 대 분량의 이삿짐을 싣고 다시 만난 그 집은 마치 수돗물로 집을 빠닥빠닥 씻어놓은 듯 반짝였다. 새로 도배를 싹 해놓고 유리창이며 지붕까지 물청소를 끝내 놓았다. 바닥도 새로 깔고 주방도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우리는 기쁘면서도 당황하여 집을 관리하는 분께 어찌 된 일인지 물어보았다. 월세 20만 원을 받으면서 이렇게 수리하는 것은 수지타산에 맞지 않는 일이었다. 그곳은 교회에서 관리하는 사택 비슷한 곳이었는데, 교회 관리부 분들이 일요일 예배를 끝내고 모두 올라오셔서 얼굴도 보지 못한 새로운 이웃을 위해 청소와 도배를 해준 것이었다.
 

관리부 분들에게 내어드린 상차림은 그곳에서 나는 호박이나 가지볶음 한 가지 정도였으니 지나치게 검소한 밥상이었다. 그래도 관리부 분들은 겸연쩍은 듯하면서도 좋아해 주셨다. [사진 pixabay]

 
도시 생활에 지쳐 쉴 곳을 찾아 헤매던 작은 새 같은 우리 부부는 가슴으로 스미는 그분들의 배려에 경직되어 있던 마음이 스르륵 풀리는 듯했다. 그래서 우리는 관리부 분들이 올라오시기만 하면 무조건 들어오시라고 해서 같이 밥을 먹었다. 상차림은 그곳에서 나는 호박이나 가지볶음 한 가지 정도였으니 지나치게 검소한 밥상이었다. 그래도 관리부 분들은 겸연쩍은 듯하면서도 좋아해 주셨다.
 
그런데도 산속에 혼자 있는 집에 사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랫집까지는 100미터가량을 내려가야 했고, 소리를 질러도 들리지 않는 거리였다. 우리는 낮에도 문을 잠그고 있었고, 밤에는 더더욱 무서웠다. 조립식 집이어서 조그만 산짐승이 지나가며 부딪히기만 해도 집이 쿵 울리곤 하였다.
 
산 중턱에 홀로 앉은 집의 밤은 작은 소리도 크게 들리고, 그 소리는 온갖 무서운 상상력의 소재가 되었다. 내가 “혹시 멧돼지가 지나간 것이 아닐까?” 하면 남편은 “응, 고라니가 지나갔을 거야” 하며 서로 무서움을 달래주곤 했다.
 
남편은 잠이 들어도 나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그래서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쇼팽의 녹턴 16번에서 21번까지 그리고 연습곡이 들어 있는 음반이었다. 나는 어두운 밤 밖에서 나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 아담 하라셰비츠의 피아노 연주를 잠이 들 때까지 듣고 또 듣곤 했다. 피아노 소리 하나하나에 귀와 마음을 주고 있으면 간신히 잠이 들곤 했다.
 
긴 밤이 지나고 다시 아침이 밝아오면 창밖의 일렁이는 연둣빛과 같이 ‘땅’ 하고 피아노 첫 음이 시작되는 지난 밤 쇼팽의 그 음반을 다시 들었다. 아마도 하루에 그 연주를 다섯 번 정도는 들은 듯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캄캄한 밤에 듣는 음악과 밝아온 새 아침에 듣는 음악이 너무도 다른 것이었다. 밤에는 피아노 한 음 한 음에 내가 절실히 매달리며 쇼팽은 어떤 마음으로 이 곡을 썼을까 하고 쇼팽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그도 인생이 슬펐구나, 때로 인생이 막막하고 외로웠구나. 그가 풀어놓는 외로움과 슬픔과 아름다움과 위로의 마음은 다른 이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있구나’ 하고 마치 쇼팽의 마음속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들어가듯 음악을 듣는다.
 
그런가 하면 아침에 듣는 쇼팽은 평화롭기까지 하다. 지난밤의 깊은 농도는 사라지고 엷고 안개 낀 듯한 슬픔과 희롱하는 듯한 피아노 소리는 아침 햇살에 빛나는 맑은 이슬이 구르는 소리 같았다.
 
‘내가 나를 보건대 같은 집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음악을 듣는데, 어떤 때는 아름답다 하고, 어떤 때는 무섭다 하고, 어떤 때는 평화롭다 하는구나. 내가 산속 깊은 밤에 깨어 있지 않았다면, 쇼팽의 같은 음악을 이렇게 반복해서 들을 수 있었을까? 나는 이제야 비로소 쇼팽의 녹턴을 좀 들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산속 언덕 집에서 일 년 반 정도의 월세살이를 마치고 짐을 싸 이사를 나오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하루에 다섯 번씩 주말마다 쇼팽의 녹턴을 들었으니 한 달이면 사십 번, 일 년이면 사백팔십 번, 일 년 반이면 칠백이십 번을 훨씬 넘게 쇼팽의 녹턴을 들었다.
 

아침 햇볕이 스며들면 간밤의 무서움과 깊은 사색은 사라지고 피아노 소리는 아침 이슬이 유희하며 구르는듯했다. [사진 한순]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 체력이 바닥날 정도로 열과 성을 다하여 만났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을 과연 나는 제대로 본 것인가? ‘이제는 사람이 힘들다, 자연 속에 홀로 쉬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쇼팽과 어두운 밤을 지내며 쇼팽과 만났던 것처럼 한 사람을 좀 알기 위해서는 칠백이십 번은 만났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나는 아직 멀었다. 사람을 좋다 싫다 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이런 생각을 가슴에 담고 시골집 언덕 산길을 내려왔다.
 
이런 시골 생활의 연습 기간을 거치고 다시 시골에 들어와 집을 지었음에도 아직 일상에서 떠나오는 일은 늘 힘겹다. 시골집에 고요히 앉아 겨울나무 빈 가지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많은 문제가 자명하고 단순해진다.
 
하지 않아야 할 일과 해야 할 일에 대한 판단은 시골집에 있을 때 훨씬 쉽게 결정된다. 반면 도시는 무엇인가 과부하의 연속이고 그 과부하는 질긴 끈처럼 사람을 당긴다. 아무도 묶은 사람은 없으나 모두 묶여 있는 듯하다. 사람들은 묵묵히 스스로 묶은 삶에 충직하다.
 
서울에서 나흘 살고, 시골에서 사흘 사는 일이 나 스스로 담금질을 선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마치 온탕과 냉탕을 오가며 신체를 단련하듯 서울과 시골을 오가며 정신과 마음을 팽팽히 당겼다 푸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미 시골에 들어와 20여 년을 산 선생님이 씩 웃으며 “시골에 들어와 나무를 제대로 보려면 한 3년은 걸려” 하던 말씀이 떠오른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가방을 싸고 있다.
 
한순 시인·도서출판 나무생각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