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온공주 집안의 책과 편지, 서예작품 등 3대가 한글로 쓴 왕실 유물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서울 용산에 자리한 국립한글박물관은 16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수집한 조선 왕실 한글 유물 68점을 문화재청으로부터 이관받아 16일 공개했다. 조선 왕실의 한글문화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귀한 자료들이다. 미국에 거주하는 덕온공주 후손들이 소장해온 것으로, 국립한글박물관과 문화재청 산하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협력해 매입한 뒤 국내로 들여왔다.
한국에 돌아온 한글유물 68점
미국 거주 유족으로부터 사들여
‘자경전기’‘ 규훈’ 처음으로 발견
편지·역사서 등 3대에 걸친 유물
한글박물관서 오는 4월에 기획전
조선왕실 한글문화 새롭게 조명
『자경전기』는 효(孝)를 중시했던 조선 왕실문화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1808년 순조가 어머니 효의왕후의 뜻을 받들어 창경궁 자경전에 관해 쓴 책이지만, 그 시작은 정조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효심이 지극했던 정조가 1777년 어머니 혜경궁홍씨를 위해 창경궁의 양화당 옆에 전각(현재는 터만 남아 있다)을 짓고, 이를 자경전이라 이름 지은 것. 자경(慈慶)은 자전(慈殿, 임금의 어머니)의 장수를 기원하는 뜻을 담고 있다.
효의왕후(정조 비)는 아들 순조에게 자경전의 유래 등을 밝힌 『자경전기』를 한문으로 짓게 했고, 순조 비였던 순원왕후(1789~1844)는 그 효심을 딸이 전해 받을 수 있게 덕온공주에게 우리말로 옮겨 직접 쓰도록 했다. 박영국 국립한글박물관장은 “이번에 환수된 68점의 한글자료는 왕실에서 사용한 아름다운 한글 궁체의 면모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예술적·학술적 가치가 높다”고 말했다. 이어 박준호 국립한글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이번에 돌아온 유물 중엔 덕온공주의 친필 자료 6점, 왕실에서 쓴 한글 편지, 윤용구 서예 작품 11점, 윤백영 한글 서예 8점 등이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다.
순원왕후가 사위 윤의선(1823~1887)에게 보낸 편지도 그중 하나다. 순원왕후는 편지에 사위의 감기와 기침을 걱정하고, 덕온공주가 궁에 들어와 있어 든든한 마음을 전하고 있다. 전 정신문화연구원 책임연구원을 지낸 국어학자 이종덕 박사는 “덕온공주와 어머니인 순원왕후의 필체는 매우 빼어나 놀라울 정도”라며 “당시엔 다른 이를 시켜 글씨를 쓰게 하는 일도 흔했지만, 문장 중에 ‘대서로 편지 쓰기에는 섭섭해 며칠 동안 쓰지 못했다’(순원왕후)는 구절 등 친필임을 보여주는 증거가 꽤 있다”고 말했다.
윤의선은 덕온공주와 1837년에 혼인했으나 자녀가 없었고, 덕온공주가 만 22세로 세상을 떠난 뒤 윤용구를 양자로 들였다. 윤용구는 이후 과거에 급제하고 예조·이조판서까지 지냈으며, 1899년 딸을 위해 『여사초략』을 남겼다. 중국 역사에서 모범적인 여인 30명의 행적을 한문으로 적고, 행간에 붉은색으로 토를 달고, 한글로 번역한 것이다. 책의 표지에 윤용구는 ‘기해년(1899) 10월에 석촌 퇴사가 딸아이에게 써서 보여준다’라고 적었다. 윤용구는 고종의 명을 받아 중국 상고시대부터 명나라 말기까지의 역사를 추려 한글을 번역해 『정사기람(正史紀覽)』도 편찬했다.
국립한글박물관은 덕온공주 집안 관련 유물을 모아 오는 4월 25일부터 ‘덕온공주 3대 한글유산’(가제) 전을 연다. 2016년부터 덕온공주가의 왕실 한글 유물을 집중적으로 수집해온 한글박물관은 순원왕후와 덕온공주의 친필을 포함해 현재 4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