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현정의 월드 베스트 호텔 & 레스토랑 - 마르틴 베라사테기
2009년 떠났던 스페인 여행에서 생애 처음 방문한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이 바로 마르틴 베라사테기였다. 오후 1시에 시작한 점심은 오후 5시가 다 돼서야 끝났고, 호텔로 돌아가자마자 피곤함에 드러누워 버렸다. 밥을 먹었을 뿐 온종일 다른 관광은 생각도 못 한 일정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이미 여행의 만족감이 가슴 가득 차올랐기 때문이었다. 이날의 경험은 생각지 못한 새로운 세상이 세계 곳곳에 있으리란 기대를 갖게 해주었고, 결국 나는 여행을 새로운 업으로 삼게 됐다.
‘미식 순례의 메카’ 마르틴 베라사테기
산세바스티안서 차로 20분 거리
셰프가 보유한 미쉐린 별만 10개
장어·푸아그라, 해산물 샐러드 …
진한 풍미 우리 입맛에도 잘 맞아
미식 순례의 메카
산세바스티안은 인구 20만 명이 사는 소도시인데, 인구 대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미쉐린 별을 가진 미식의 도시다.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이 11곳(스타 3곳, 2스타 1곳, 1스타 7곳)이나 된다. 아르작(Arzak), 무가리츠(Mugaritz) 등 미식가라면 한번 방문해보길 꿈꾸는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 여러 곳 있다. 그중에서도 마르틴 베라사테기는 미식 순례의 중심에 놓인 성스러운 사원이라 할 수 있다.
셰프가 보유한 미쉐린 별만 10개
마르틴이 자신의 이름을 딴 레스토랑을 차린 것은 1993년에 들어서다. 마르틴 베라사테기 레스토랑은 2001년 미쉐린 3스타를 처음 획득한 이래 18년째 해마다 별 3개가 빛나는 레스토랑이 됐다. 마르틴 베라사테기는 본점을 포함해 멕시코·도미니카공화국 등에서 모두 16개의 레스토랑을 운영한다. 이 중 2곳이 3스타, 1곳이 2스타, 2곳이 1스타를 받아 셰프가 보유한 미쉐린 스타는 모두 10개에 이른다.
미쉐린만 마르틴 베라사테기를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미쉐린 가이드』와 함께 미식의 중요 참고서로 꼽히는 『월드 베스트 100 레스토랑(The World’s Best 100 Restaurants)』에 2008년 이후 꾸준히 이름을 올리고 있고, 2015~2016년 여행 리뷰 사이트 ‘트립어드바이저(tripadvisor)’에서 여행자가 직접 뽑은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에 선정됐다. 마르틴 베라사테기가 미식 전문가뿐만 아니라 일반 여행객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는다는 뜻이다.
메뉴마다 탄생 연도 표기
메뉴는 세트 메뉴 ‘그레이트 테이스팅 메뉴(The Great Tasting Menu)’와 개별 요리 ‘아 라 카르트(a la carte)’로 나뉘어 있다. 그레이트 테이스팅 메뉴는 14가지 코스로 제공되고 1인 260유로(33만3000원)이다. 아 라 카르트는 에피타이저 54유로(6만9000원), 메인 디시 84유로(10만7000원), 디저트 41유로(5만2000원)로 원하는 만큼 주문해서 먹을 수 있다. 각 요리의 설명 앞에는 메뉴가 탄생한 연도가 쓰여 있다.
추천 메뉴는 1995년 탄생한 훈제장어와 푸아그라 요리다. 장어와 푸아그라의 진한 풍미가 새콤한 사과와 조화를 이룬다. 해산물 샐러드도 2001년부터 선보인 스테디 메뉴다. 화사하고 아름다운 꽃과 채소 사이사이에 신선한 갑각류가 숨어있다. 음식을 맛보고 나니 메뉴에 일일이 연도를 달아 놓은 의미를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화가가 자신의 그림에 연도와 사인을 남기듯, 요리 하나하나를 소중한 작품으로 생각하는 셰프의 자부심이 느껴졌다.
인류학 박사이자 고품격 여행사 ‘뚜르 디 메디치’ 대표. 흥미진진한 호텔과 레스토랑을 찾아 전 세계를 돌아다닌다. 품격 있는 여행 정보를 알려주는 여행사가 없어 아예 여행사를 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