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왜 아폴로 11호 달착륙을 보고 붓을 들지 못했나?

중앙일보

입력 2018.12.16 11:10

수정 2018.12.20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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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묵, '상봉' (1991, 캔버스에 아크릴, 200*300cm,개인소장).[사진 서울시립미술관]

1969년 7월 20일,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쏘아올린 유인 우주선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했다. 인류가 본격적인 과학기술의 시대로 진입한 순간이었다. 이날 TV로 이 장면을 지켜본 사람들 중엔 큰 충격을 받아 3년간 붓을 들지 못한 화가가 있었다. 프랑스 파리에서 작업하던 한인 화가 한묵(1914~2016)이다. 
 
한국에서 홍익대 미대 교수로 재직하던 그는 61년 마흔 일곱살의 나이에 프랑스로 건너가 그림에만 매달려 지내던 터였다. 후에 그는 아폴로 11호가 준 충격을 이렇게 밝혔다. ""인공위성에서 (지구 위)우리 생활을 감시할 정도로 과학이 발전했는데, 과거의 공간 개념을 답습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과학적인 공간을 탐구해 화폭에 담고 싶었다." 

서울시립미술관, '기하추상 거장' 한묵 유고전
교수직 내려놓고 1961년 프랑스로 건너가
투철한 실험정신, 평생 고학생처럼 살아
화려한 원색과 기하학적 구성으로
무한 순환하는 우주의 에너지 표현

 
'우리 곁에 이런 작가가 있었다니···.'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11일 개막한 전시 '한묵:또 하나의 시(詩)질서를 위하여'는 신선한 충격과 감동,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관람객들은 작품이 전하는 그의 치열한 작가정신에 놀라고, 깊고 풍부한 작품에도 불구하고 여태 이 작가의 존재를 잘 몰랐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놀란다. 일찌감치 우주로 사유를 확장해 삶과 세상의 본질을 탐구한 선구자를 만난 감흥에 전율이 느껴질 정도다. 
 
 

지난 11일 한묵 유고전 언론 공개회 자리에 참석한 한묵 작가의 부인 이충석(86)여사. [사진 이은주 기자]

곤궁한 삶에도 의연했다
"우리 선생님 작품이지만, 그 앞에서는 옷깃을 여미게 됩니다. 평생 작품에만 몰두하셨고, 자기 자신에게 엄격한 분이셨어요." 개막 당일, 전시장 입구에서 두 손을 모으고 선 한 여성이 조심스레 이렇게 운을 뗐다. 그는 가슴이 벅찬 듯 떨리는 목소리로 "선생님은 평생 에트랑제( Etranger, '이방인'이란 뜻)로 살았다. 저는 지금도 작품을 보면 선생님을 만난 듯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했다. 1977년 결혼해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곁을 지킨 부인 이충석(86) 씨였다. 한국에서 열리는 남편의 첫 유고전을 보기 위해 한국을 찾은 그는 개막일에 이어 이튿날에도 전시장을 찾아와 관람객을 지켜보며 떠날 줄 몰랐다. 
 
서울에서 태어나 만주와 일본에서 서양화를 배운 61년 프랑스로 건너간 후 창작에만 매달렸다. 전시는 손에 꼽을 정도로만 했고, 2005년 프랑스 정부에서 아틀리에를 마련해주기 전까지는 파리 6층 건물의 비좁은 아파트에 살며 1시간 거리에 떨어진 작업실로 출퇴근하며 작업했다. 부인 이씨는 "선생님은 새로운 변모 없이는 전시를 열지 않았다. 그를 아끼는 소수의 컬렉터가 그림을 사줬다. 그걸로 생계를 유지하며 평생 고학생처럼 살았다"고 했다. "예술가란 부유해지면 맑은 정신을 잃게 된다"는 그의 투철한 신념 때문이었다. 


시대를 앞서 살았다 

작업실의 한묵 작가. [사진 이충석 제공]

이번 전시는 '기하 추상의 거장' 한묵의 작품 세계를 총체적으로 조망하는 자리다. 2003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올해의 작가'로 선정돼 연 전시에서 90여 점을 공개하고, 2012년 갤러리현대에서 40여 점의 작품을 전시한 이후 열리는 최대 규모의 개인전이다. 국내에 처음으로 공개되는 작품 60여 점을 포함해 총 130여 점을 한자리에 모았다. 
 
백기영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부장은 "작가는 국내 미술사에 차지하는 역할에도 비해 국내에서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다"며 "시대를 앞선 작가의 감각은 지금 젊은 세대와 소통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이번 유고전이 소통의 문을 여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묵, '청과 황의 구성'(1962, 종이에 유채, 49.5*39.5cm, 개인소장). [사진 서울시립미술관]

전시는 50년대 구상 회화부터 90년대 말까지의 작업을 시기별로 5부로 나누어 작품이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전쟁 이후 '가족 이산' '가난'의 경험을 화폭에 담았다면, 유영국, 박고석, 이규상, 황염수 등과 57년 '모던아트협회'를 결성한 때부터는 추상으로 접어들었다. 파리에 도착한 61년부터 69년부터는 대상을 오로지 면과 색, 선으로만 표현하는 순수추상에 매달렸다. 
 
'미래적 공간'을 탐구했다

[사진 서울시립미술관]

한묵 작가 유고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시립미술관 전시장 전경. [사진 이은주 기자]

작가의 삶과 생애를 소개하는 1994년작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는 전시 관람객들. [사진 이은주 기자]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그의 작품세계를 완전히 바꿔놓은 결정적인 사건은 69년 아폴로 11호 달착륙이었다. 달까지 도달한 인간의 힘에 놀랐고, 그동안 '토끼와 방아', '이태백과 술' 등 낭만의 영역에 갇힌 달에서 벗어나 우주라는 무한 공간을 열어젖힌 과학의 힘에 충격을 받았다. 
 
이 시기에 그는 붓을 놓았지만 작업은 멈추지 않았다. 그림을 그리지 않는 대신 스탠리 윌리엄 헤이터(1901~1988)가 운영하는 판화공방 '아틀리에17'에서 동판화 작업에 매진했다. 이번 전시를 준비한 신성란 큐레이터는 "이 시기 작가의 판화에서 동심원과 방사선 등이 등장했다"며 "캠퍼스와 자를 사용하며 엄격하게 계산된 동적 구성으로 시간의 연속 개념을 표현하는 데 주력했다"고 말했다.  '역동적인 공간'이 등장한 것이다. 
 
실제로 작가는 73년 『공간』지에 발표한 글에서 "미래적 공간이란 조형적으로 움직이는 공간"이라고 말한 바 있다. 신 큐레이터는 "달착륙과 관계없이 작업이 변화하며 다음 장을 준비하고 있던 작가에게 '우주'라는 주제가 등장해 변화의 기폭제가 된 것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1997년 6월 '금색운의 교차'(1991) 앞에 앉아 있는 한묵.당시 83세였다.[사진 서울시립미술관]

생명력과 에너지, 공간의 울림 
판화 작업으로 독창적인 공간 표현 방식을 체득한 작가는 이를 캔버스로 옮기기 시작했다. 75년작 '푸른 나선'은 동심원과 나선의 반복적인 패턴으로 시간을 담은 공간을 표현한 대표작이다. 89년작 '십자성의 교향'은 음악적 리듬을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신 큐레이터는 남북통일을 기원하면서 작업한 91년작 '상봉'을 대표작 중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로 꼽았다. 그는 "공간의 울림과 우주적인 에너지가 같이 융합된 작품"이라며 "기하학적 선들이 먼저 보이는데 유심히 보면 서정적인 붓 터치가 보인다. 엄격하게 계산된 논리적인 세계와 작가의 감성 어우러진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오광수 미술평론가(뮤지엄 산 관장)는 "한묵 작가는 곤궁한 삶 속에서도 의연한 자세를 잃지 않고 자기 세계를 뚝심 있게 열어나간 작가였다"며 "69년의 달착륙은 작가에게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가 하나로 이루어져 있다'는 깨달음을 가져다준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신 큐레이터는 "한묵은 시공간과 생명의 근원을 성찰하며 독창적인 조형언어를 창조했다. 화려한 원색과 절제된 기하하적 구성의 절묘한 융합이 작가가 도달하고자 했던 무한한 정신세계를 보여 준다"고 했다. 그는 이어 "안타깝게도 현재까지는 이 작가에 대한 연구 논문 한 편 쓰인 것이 없다. 늦었지만 이번 전시를 계기로 한국 추상회화에서 선구자의 길을 걸은 한묵 작가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전시는 2019년 3월 24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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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