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김대영의 위스키 읽어주는 남자(10)
물론, 긴 시간 여러 번 입을 헹구면서 천천히 마시면 될 일이지만, 늘 우리의 밤은 짧다. 개인적인 위스키 경험과 국내외 위스키 마니아들로부터 들은 내용을 토대로 위스키 마시는 순서를 정리해봤다.
우선 고려할 대상은 알코올 도수
하이볼로 시작하는 것도 좋다. 위스키에 탄산수를 섞은 칵테일을 하이볼이라고 하는데, 알코올 도수는 맥주보다 조금 높은 정도다. 위스키보다 알코올 도수는 훨씬 낮으면서, 위스키의 풍미는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또 탄산수의 톡톡 튀는 촉감이 혀를 깨워, 뒤에 마실 위스키를 준비케 하는 역할도 한다.
위스키 숙성에 몇 번째로 사용된 오크통인가
퍼스트 필 오크통에서 숙성한 위스키가 세컨드 필 오크통에서 숙성한 위스키보다 오크통의 풍미가 강한 편이다. 첫 잔부터 퍼스트 필 오크통에서 숙성한 위스키를 마시면, 강한 자극을 받은 혀가 다음 위스키 맛을 느끼기 곤란해진다. 따라서 될 수 있으면 퍼스트 필 오크통 숙성 위스키는 마시는 순서를 뒤로 미루는 것이 좋다.
피트향이 있는가 없는가
만일 당신이 피트향을 좋아한다 해도 첫 잔으로 피트향 나는 위스키는 피하자. 워낙 강렬한 향이라 마신 지 꽤 지나도 입 안에 머물기 때문이다. 알게 모르게 다음 위스키를 마실 때도 피트향이 관여할 것이다.
위스키를 신나게 마시고 잠든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입에서 피트향이 풍긴 적도 있을 정도니까. 그래서 피트향이 있는 위스키는 후반부에 마시는 걸 추천한다.
꼭 이렇게 위스키를 마시란 법은 없다. 여기서 설명한 세 가지는 지금까지 위스키를 마시면서 터득한 나만의 방법일 뿐이다. 누군가는 알코올 도수가 높고, 퍼스트 필 오크통에서 숙성했으며, 피트향이 강한 위스키를 처음부터 마시는 게 더 좋을 수 있다. 중요한 건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겪으며 자신에게 맞는 순서를 찾는 것. 오늘 밤도 수많은 위스키가 당신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김대영 중앙일보 일본매체팀 대리 kim.daeyoung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