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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한번 마셔보세요' 만화 캐릭터로 유혹하는 위스키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대영의 위스키 읽어주는 남자(9)

위스키는 진입장벽이 높다. 40도 이상의 알코올 도수와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 때문이다. 또 소주나 맥주에 익숙해 위스키의 맛과 향이 거북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래서 위스키 회사는 소비층을 늘리려고 고군분투한다. 특히 요즘에는 인기 있는 콘텐트를 가져와 위스키를 홍보하는 일이 늘고 있다.

일본 게임 사가’ 시리즈 25주년 맞춰 출시

2016년 초 한 위스키가 발매된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일본에 사는 지인을 총동원해 사려고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일본의 수많은 게임 마니아가 구매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바로 1990년부터 출시된 게임 ‘사가’ 시리즈와 일본 위스키 판매상 ‘시나노야’가 함께 만든 ‘사가 25주년 기념 위스키’다.

사가 25주년 기념 위스키 3종. 왼쪽부터 쿠일라 2006 9년, 1996 17년, 부나하븐 1990 25년. 각 보틀에 게임 속 캐릭터의 오리지널 삽화를 담았다. [사진 시나노야 제공]

사가 25주년 기념 위스키 3종. 왼쪽부터 쿠일라 2006 9년, 1996 17년, 부나하븐 1990 25년. 각 보틀에 게임 속 캐릭터의 오리지널 삽화를 담았다. [사진 시나노야 제공]

이 위스키는 일본 유명 게임제작사, 스퀘어에닉스(SQUARE ENIX)의 대표 RPG 게임 ‘사가’ 시리즈 25주년을 맞이해 출시됐다. 사가 시리즈 프로듀서 이치가와 마사노리 씨는 “옛날부터 RPG 게임을 즐겨온 팬이 위스키를 즐기는 나이가 됐다”고 말했다. 어릴 적 TV 앞에서 게임을 즐기며 밤을 새우던 아이가 어느새 위스키 구매력을 가진 성인이 된 것이다. 위스키는 출시와 동시에 매진됐고, 금세 가격이 몇 배로 뛰고 말았다.

너무 좋아했던 게임이라 한 병이라도 구하고 싶었지만 일본의 모 bar에서 마시는 걸로 만족했다. [사진 김대영]

너무 좋아했던 게임이라 한 병이라도 구하고 싶었지만 일본의 모 bar에서 마시는 걸로 만족했다. [사진 김대영]

유명 만화가를 기념하는 위스키

유명 만화가를 기념하는 위스키도 있다. 일본에서 ‘만화의 왕’이라 불리는 이시노모리 쇼타로(1938~1998). ‘가면라이더’, ‘사이보그009’등의 만화로 유명한 그는 수많은 캐릭터를 창조해 만화 보기의 즐거움을 줬다. 올해 그의 탄생 80주년을 기념하는 위스키가 발매됐다.

일본의 한 위스키 판매 회사가 만든 보틀로, 라벨에는 이시노모리 쇼타로가 만들어낸 만화 속 캐릭터가 빼곡히 담겼다. 덕분에 추억 속 만화 캐릭터를 떠올리면서 한 잔의 위스키를 즐길 수 있게 됐다. 이 위스키 역시 만화 마니아의 관심 속에 금세 품절됐다. 위스키보다 팬층이 두터운 만화 팬을 공략한 위스키 업계의 전략이라 볼 수 있다.

이시노모리 쇼타로 80주년 쿠일라 2011 6년. 라벨 속 만화 캐릭터에는 많은 이의 추억이 담겨있다. [사진 김대영]

이시노모리 쇼타로 80주년 쿠일라 2011 6년. 라벨 속 만화 캐릭터에는 많은 이의 추억이 담겨있다. [사진 김대영]

영화 킹스맨 주인공 탄생 기념하는 위스키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영화 ‘킹스맨’에서는 위스키가 노골적으로 등장한다. 1편에서는 달모어 62년을 마시는 장면이 나오면서 달모어 브랜드 가치를 높였다. 2편에서는 영화 스토리에 위스키를 담았다.

주인공은 위스키병에서 ‘미국 켄터키’라는 키워드를 얻고, 미국 위스키의 고향 켄터키로 가 스테이츠맨과 만난다. 배경이 된 올드포레스터 증류소는 ‘올드포레스트 스테이츠맨’이라는 한정판 위스키를 발매했고, 영화를 본 이들은 자연스레 마케팅에 노출됐다.

또 올드포레스터 증류소를 소유하고 있는 브라운 포맨사는 산하의 스코틀랜드 증류소 글렌드로낙에서 ‘킹스맨’ 한정판 위스키를 발매한다. 주인공 에그시가 태어난 1991년에 증류한 위스키만을 블렌딩해 만든 '글렌드로낙 킹스맨 에디션'이다.

영화에서 영감을 얻은 두 위스키는 영화 팬은 물론, 위스키 팬으로부터도 큰 인기를 얻었다. ‘킹스맨’이 크게 흥행한 한국에도 출시됐다.

글렌드로낙 킹스맨 에디션. 영화 <킹스맨> 주인공 에그시가 태어난 1991년 빈티지. [사진 김대영]

글렌드로낙 킹스맨 에디션. 영화 <킹스맨> 주인공 에그시가 태어난 1991년 빈티지. [사진 김대영]

인기 드라마 ‘왕좌의 게임’ 패러디

‘Winter is Coming.’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 ‘왕좌의 게임’이 조니워커 위스키를 만드는 디아지오와 손을 잡았다. 드라마에서 매서운 겨울과 함께 찾아오는 악역 화이트 워커를 차용해 ‘화이트워커'를 출시했다.

조니워커의 상징인 스트라이딩맨도 드라마 속 화이트 워커처럼 변장하고, 병도 꽁꽁 언 얼음처럼 만들었다. 그리고 병 한쪽 면엔 ‘Winter is Here’이라는 문구를 넣어 ‘왕좌의 게임’ 하면 떠오르는 ‘Winter is Coming’을 패러디했다.

WHITE WALKER BY JOHNNIE WALKER. [사진 정성운]

WHITE WALKER BY JOHNNIE WALKER. [사진 정성운]

마시는 방법도 일반 위스키와 사뭇 다르다. 냉장고나 냉동고에 넣어 위스키의 온도가 1.5도까지 내려갔을 때 마시는 걸 권한다. 역시 겨울을 상징하는 캐릭터를 담은 위스키답다. 이런 섬세한 마케팅에 드라마와 위스키 팬은 즉각 환호했다. 미국과 유럽 등에는 이미 출시된 이 위스키는 한국에도 12월에 출시될 예정이다. 이제 왕좌의 게임 팬은 드라마를 보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한 잔의 위스키와도 만난다.

우리는 콘텐트 시대에 살고 있다. 과거에 취미가 뭐냐고 물으면 ‘영화 보기’, ‘만화책 읽기’, ‘게임 하기’ 등의 답이 돌아왔지만, 요즘은 ‘마블’, ‘원피스’, ‘롤’ 등의 답이 돌아온다. 그만큼 대중의 관심사는 세부적으로 변했다.

한 번 팬이 된 사람은 오랫동안 팬으로 머문다. 위스키가 게임, 만화, 영화, 그리고 드라마를 찾아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대영 중앙일보 일본매체팀 대리 kim.dae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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