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이 순방 기간 두 차례에 걸쳐 언급한 남아공 모델은 전세계에서 유일무이하게 '셀프 비핵화'를 한 케이스다. 남아공 비핵화는 국내외 정치 상황에 따른 최고 지도자의 결단과 ‘선 폐기, 후 검증’이라는 두 축이 핵심이었다.
문제는 ‘셀프 비핵화’의 특성상 완전한 검증이 불가능하다는데 있다. 남아공은 보유 핵무기를 스스로 밝히고, 핵물질도 민수용(통상 농축도 20% 미만의 우라늄)으로 전환한 이후에 외부 검증단을 맞았다. 이때 115차례에 걸친 IAEA 사찰 과정에서 놀이공원에 숨겨졌던 원심분리기가 발견됐던 건 유명한 핵 사찰 일화다.
이달 발간한 '북미 핵협상의 핵심 쟁점과 대응전략'에서 전봉근 국립외교원 안보통일부장은 “남아공의 사례에서 북한이 신고 절차를 뒤로 미루거나 핵심 핵 억제력을 끝까지 보유할 가능성이 있다. 4.27 판문점선언에서 ‘주동적 비핵화 조치’를 언급한 것도 이런 맥락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철저한 사후 검증을 거쳐 '공개 면죄부'를 받았지만 핵물질이 전량 제거된 것은 아니라는 점도 한계로 꼽힌다. 남아공 정부가 이른바 '다운블렌딩' 된 핵물질을 아직도 보관 중이기 때문이다. 2005년엔 “남아공이 1980년 순항미사일 ㆍ장거리포용 핵탄두 수십기를 보유했고 93년 공표한 것과 별도의 핵무기가 남아있다”는 언론의 의혹 제기까지 있었다. 미국은 북한의 핵무기 뿐 아니라 핵물질도 제거하기를 바라고 있다. 북한이 자체 개발한 핵을 쓰겠다고 위협한 유일한 국가인 탓이다.
익명을 요구한 외교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단기간에, 완전히 핵 폐기를 한 케이스로 남아공을 인용한 것인지, 자체 폐기 이후 검증을 한 모델로써 인용을 한 것인지에 따라 문제의 심각성이 달라진다"며 "후자라면 미국과 상당 부분 마찰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10월 강경화 장관도 워싱턴포스트(WP) 인터뷰를 통해 영변 핵시설 폐기와 종전선언을 맞교환 하는 '빅딜'을 제안했다. 핵무기 목록 신고ㆍ검증은 이 뒤로 미루자고 공개 제안했다.
이유정 기자 uuu@joongnag.co.kr